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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시작됐다. 누군가에겐 설레는 휴식의 시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막막하고 불안한 시기다. 특히 돌봄이 절실한 저소득층이나 맞벌이 가정 아동에게 방학은 ‘빈 시간’이자 ‘위험 시간’이 되기 쉽다.
학교 급식이 중단되고 하루 종일 혼자 집에 남겨지거나 외부 활동이 제한되는 상황이 반복된다. 복지의 사각지대는 방학이 시작될 때 가장 먼저 드러난다.
교육부에 따르면 매년 방학 기간 중 돌봄이 필요한 아동은 약 40만 명 이상이다. 그러나 지역아동센터나 방과후돌봄교실 등 공공 돌봄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원은 제한돼 있고 대기 아동은 늘어난다. 일부 센터는 인력이나 예산 부족으로 방학 중 운영 일수를 줄이거나 아예 휴원하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방학 맞춤형 돌봄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고 홍보하지만 현장의 실상을 보면 기대와 동떨어져 있다. 센터당 종사자는 대부분 1·2명으로 안전 관리와 프로그램 운영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단기 계약직으로 고용 안정성도 떨어진다. 아동의 발달을 지원해야 할 공간이 오히려 안전사고 우려가 높은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돌봄의 질도 문제다. 민간 후원이나 인적 자원에 따라 센터별 편차가 심하다. 어떤 곳에선 독서활동·체험학습·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하지만 TV 시청과 간단한 식사 제공에 그치는 곳도 있다. 실질적인 발달 자극이나 정서적 교류 없이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방학 중 아동학대나 방치 사례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23년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전체 사례 중 ‘방임’이 차지하는 비율은 30% 이상이며 방학 기간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여름철 고온 환경에 놓인 주거지, 냉방기기 없이 지내는 주거취약계층 아동의 건강도 위험 요소다. 일부 지자체가 무더위쉼터나 무료급식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보 접근성, 이동 수단 등의 제약으로 실효성은 낮다.
보이지 않는 위험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방학 중 돌봄 공백은 부모의 경제 활동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가정에서는 부모 중 한 명이 휴직을 고려하거나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일터에 나가 불안 속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이는 결국 가정의 경제적 부담과 심리적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아동의 생활환경에도 악영향을 준다. 돌봄은 복지 이전에 사회 기반의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국 곳곳의 지역아동센터·키움센터·작은 도서관 등은 부족한 예산과 인력에도 방학 기간 동안 아이들의 끼니와 활동을 책임지고 있다. 어떤 센터는 자발적으로 외부 강사를 섭외해 만들기 수업이나 음악 수업을 운영하고, 더운 날에는 선풍기 하나에 의존해 아이들과 하루를 버틴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만으로는 구조적 공백을 메울 수 없다.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말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역사회 전체가 이 돌봄 생태계에 대한 책임을 나눠야 한다.
방학이라는 계절적 특성에 맞춘 돌봄 인프라의 유연한 설계와 지자체-교육청-복지기관의 통합 협업 체계, 돌봄 종사자의 처우 개선 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 내 아동 돌봄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방학이 되면 ‘어디서 누구와 지내는지’ 확인되지 않는 아이들이 아직 너무 많다.
방학은 마땅히 아이들의 시간이어야 한다. 놀고, 쉬고, 배우고, 꿈꿀 수 있는 자유의 시기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많은 아이들에게 그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그 소중한 권리가 모든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도록 함께 살피고 보살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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