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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물가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선 월급이 통장을 스쳐지나간다는 말이 일상 용어가 됐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지수는 125.75(2020년=100 기준)로 작년 동월 대비 3.5% 상승했다.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1%)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쌀값은 7.6% 올라 1년 4개월 만에 다시 7% 상승률을 기록했고, 라면은 6.5%로 3개월 연속 6%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커피·차·코코아(13.5%), 어류·수산물(7.2%), 빵·곡물(6.6%) 등 장바구니 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여기에 대중교통 요금 등 공공서비스 물가도 오름세다. 지난 6월 수도권 지하철 기본요금이 150원 인상되면서 도시철도료 물가가 7.0% 뛰었다. 식음료와 교통비가 동시에 오르면 서민 가계의 체감 물가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가처분소득에서 식비와 교통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사랑(가명·31) 씨는 “요즘 물가가 너무 많이 오른 것 같다”면서 “작년까지만 해도 작게나마 적금을 부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적금을 못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물가상승 요인은 다양하다. 이상기온으로 인한 작황 부진, 국제 물가·곡물가 불안, 원자재·포장재·물류비 인상, 인건비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관세정책 변화 등 대외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물가가 한층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인이 다양한 만큼 해결책이 단순하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물가대책 태스크포스(TF)는 11일 식품업계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기업들에 ‘가공식품 물가 안정’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TF 위원장인 유동수 의원은 “필수재인 식료품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1.5배에 달한다”며 “국민 체감 물가를 낮추기 위해 지혜를 모아 달라”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물가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방식이다. 식품기업에 “물가를 낮춰 달라”는 당부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재료와 유통비,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이 오르는 상황에서 출고가를 동결하거나 인하하는 것은 곧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단기적 압박으로 일부 식품 가격을 낮춘다고 전체 물가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가 안정은 결국 공급망 안정, 원가 절감, 유통 효율화라는 구조적 과제가 병행돼야 한다. 예를 들어 농축산물의 경우 산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물류 체계가 여전히 비효율적이다. 생산지에서 도매시장, 중간 유통을 거쳐 소매점으로 오는 과정에서 가격이 불필요하게 상승한다. 이 구조를 정부 차원에서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정부 차원의 수입 원자재 안정적 확보와 저장·가공 인프라 확충 같은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유통마진 절감과 온라인 직거래 활성화를 통해 가격 상승 압력을 줄일 수 있다. 가격 담합이나 불공정 거래에 대한 감시도 강화해야 한다.
정치권의 물가안정 촉구는 메시지로서 의미가 있지만, 실행 가능한 정책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 오히려 기업이 장기적 투자나 가격 구조 개편을 포기하고, 정부의 눈치를 보며 단발성 가격 조정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소비자에게도 시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격 좀 낮춰 달라”는 말보다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약속이 물가안정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지금 물가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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