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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이란 말은 흔히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거나, 필요할 땐 요긴하게 쓰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린다는 뜻이니 듣기 편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나쁘고 부정적이기만 할까?
손자병법 구변편에는 ‘필잡어리해 (必雜於利害)’라는 말이 나온다. 어떤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이로움과 해로움을 함께 고려하라’는 뜻이다. 모든 일에는 유불리의 양면성이 공존한다. 또 조직이나 인간관계, 상황의 전개에서 목적이 달성되면 역할과 필요성도 바뀐다. 이런 변화의 전환점에서 기존 역할에 집착하거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과거의 공로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때 토사구팽은 하나의 선택지다.
창업 초기의 핵심 인재라 할지라도 회사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환경이나 변화에 걸맞은 역량이나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뒤처지게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기존 멤버를 배제할 수밖에 없고 외견상 배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다른 한편 당사자의 부적응의 결과나 조직의 불가피한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토사구팽의 사례는 많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설계자이자 이성계의 책사로 나라를 세웠으나 왕권이 안정되자 그의 정치 구상과 왕권이 충돌하여 결국 숙청되었다.
북한의 장성택은 김정일의 매제로서 어린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해 섭정을 하면서 군·당·정의 인사권을 행사하고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사실상 이인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집권 초기 위협 세력으로 인식되면서 2013년 12월 ‘국가전복 음모’ 혐의로 체포, 처형됐다.
비즈니스에서도 토사구팽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1976년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했으나 1985년 독선적 리더십 때문에 자신이 스카우트한 최고경영자(CEO) 존 스컬리 등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쫓겨났다가 1997년 복귀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 회장과 그를 도왔던 창업 공신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삼성물산, 제일제당 등 초창기 사업을 함께 해 온 인사 다수가 그룹이 급성장해 안정기에 접어들자 차츰 밀려나거나 계열사로 전출되었다.
창업 때는 혁신형 인물이 필요하지만 안정기에는 이들이 위험 요소로 부상한다. 사냥할 때 사냥개는 훌륭한 도구이고 회사 매출의 든든한 기반이다. 하지만 사냥이 끝나고 안정권에 들어서면 걸림돌 내지는 수구세력으로 받아들여진다.
토사구팽을 못 하면 그 대가는 치명적이다. 정치에서는 몰락의 길이 기다리고 사업에서는 지지부진하거나 망한다. 토사구팽을 ‘의리 vs 배신’이라는 단순 프레임에 가두어 두려는 자들은 언뜻 보기에 도덕적·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과거에 빨대를 꽂아 놓고 현재에 안주하려는 세력이다.
지난 정권은 검사 후배들 챙기고 개인 인연을 중시하다가 몰락했다. 며칠 전 한·미 정상회담 3시간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숙청이나 혁명이 일어난 것 같다 “는 글을 올렸다. 현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트럼프 스타일의 돌직구다. 사전 전략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 솔직한 관전평일 수도 있다.
토사구팽의 다른 말로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라’가 있다. 강은 이미 건넜다. 뗏목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메고 갈 것인가. 머물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새로 들어선 정권이 그 기로에 서 있다. 토사구팽은 상황의 전환점에서 편안한 선택지가 아니다. 사활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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