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탄소중립도시’ 선언에만 머물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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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9-26 00:02:30

지방자치단체마다 ‘탄소중립도시’를 선포하며 앞다퉈 기후 대응을 선언하고 있다. 구청장이나 단체장이 무대 위에서 ‘탄소중립’을 외치는 장면은 이제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탄소중립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왜 지금 이렇게 강조되는지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선언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탄소중립은 말 그대로 탄소배출과 흡수량을 같게 맞춰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상태를 뜻한다. 자동차·공장·발전소 등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를 줄이고 남은 배출분은 숲 조성이나 탄소 포집 기술 등으로 상쇄한다는 개념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국제사회가 공통으로 내건 최소한의 목표라 할 수 있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기 위해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일치된 경고다.

한국 사회에서 탄소중립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은 여전히 석탄발전 의존도가 높고 산업구조도 에너지 집약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권에 속한다. 여기에 폭염·폭우·가뭄 등 기후재난은 더 잦고 극심해지고 있다. 2023년 여름 한 달 동안 발생한 집중호우로 전국에서 40명 이상이 숨졌고 지난해에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3000명을 넘겼다. 기후위기가 이미 ‘재난’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된 셈이다.

문제는 지자체들의 움직임이 ‘퍼포먼스’로 흐를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탄소중립도시 선포식·기념행사·홍보영상이 넘쳐나지만 실제 온실가스를 줄이는 실질적 정책은 미비하다. 예산의 상당 부분이 행사성 사업에 쓰이고 주민 생활에 와닿는 정책은 부족하다. 일회성 행사로 사진 몇 장 남기는 것으로는 배출량 감소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생활 속 실천도 중요하다. 주민이 전기 절약이나 대중교통 이용, 재활용 같은 작은 변화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체감형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기업과 주민 역시 참여가 필수다. 지역 내 상업시설과 산업단지가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친환경 설비 교체 지원이나 세제 혜택을 통해 민간의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여기에 행정이 책임있게 뒷받침하지 않으면 주민과 기업의 노력은 금세 한계에 부딪친다.

탄소중립은 장기적 과제이기에 안정적인 재원 마련도 빼놓을 수 없다. 지방세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중앙정부와 국제기구의 협력을 통한 재원 확보가 뒤따라야 한다. 감축 실적을 주민에게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외부 평가를 거쳐야만 형식적 선언이 아닌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탄소중립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전기 사용량을 줄이는 것에서,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에서, 재활용을 생활화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자체들이 주민의 작은 실천을 묶어내는 체계를 갖추지 못한다면 지금의 ‘탄소중립 도시’ 선포는 결국 기념사진만 남긴 채 사라질 것이다.

탄소중립이 지속되려면 무엇보다 현재 배출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줄일 수 있는 구체적 계획이 필요하다. 가정·교통·건물·산업 등에서 어느 정도 배출이 이뤄지는지 수치로 확인하고 그에 맞는 감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목표를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제까지 어느 부문에서 얼마나 줄일 것인지 명확하게 제시해야 실효성이 생긴다.

최영호 기자 cyh2@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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