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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국회 복도에 아직 겨울 찬기가 남아 있던 12월 첫 주,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계엄 1년을 둘러싼 갈림길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칼날을 곧추세웠다. 단 한 문장, “사과한다”는 말의 유무가 거대 야당의 균열선을 세 갈래로 찢어놓았다. 지도부, 친윤, 그리고 절연파이 셋은 더 이상 한 지붕 아래 다른 목소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길로 흩어지고 있었다.
계엄 1년을 맞은 3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1057자 분량의 입장문은 온통 ‘의회 폭거’, ‘야당의 책임’, ‘계엄은 불가피했다’는 주장으로 채워졌다. 1년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던 그날의 논리를 사실상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계엄의 위헌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국민들이 겪은 혼란에 대한 반성도 없었다.
장 대표는 “12·3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선 것”이라며 오히려 정당성을 강조했다. 당 안팎에서 “최소한의 사과라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쇄도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루 뒤에는 이재명 대통령을 히틀러에 빗대고, 중국 간첩, 국가보안법 폐지안, 대공수사권 폐지 등을 잇달아 거론하며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계엄 사과 논란에서 시선을 다른 전선으로 돌리는 전략이었다.
이 선택은 국민의힘을 세 등분해버렸다.
첫 번째 갈래는 지도부의 완고한 ‘무(無)사과’ 노선이다. 장 대표는 "사과는 불가하다"며 정치적 계산을 우선했다. 추경호 의원 구속영장 기각을 ‘반격의 신호탄’으로 규정했고, 범여권의 특검·내란몰이 프레임에 사과로 대응하면 지도부의 정당성이 흔들린다고 판단했다. 지도부 핵심 인사들은 “비상계엄 사과는 위헌정당 심판을 위한 빌드업을 깨는 일”이라며 장 대표의 메시지를 엄호하고 있다. 당무감사위원회가 한동훈 전 대표와 친한(친한동훈)계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계엄 책임론을 계파 싸움으로 확장해 친윤 일각을 견제하는 흐름이었다.
두 번째 갈래는 친윤 내부에서 급속히 커진 ‘절연파(絶緣派)’다. 25명의 의원들은 장 대표와 달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을 공개 선언했다. 한동훈·권영세·오세훈 등 당내 주요 인사들까지 “사과해야 한다”며 지도부와 결을 달리했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국민 앞에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형준 부산시장 역시 “털어낼 것은 털어낼 때”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사과 없이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중도층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고, 국민의힘은 ‘잃어버린 중심’을 다시 찾을 수 없다.
친윤 주류는 조용히 그러나 확연히 지도부와의 거리두기에 들어갔다. 그들에게 장동혁 대표의 ‘계엄 옹호 메시지’는 기시감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발표가 불러온 대혼란을 떠올리게 하는 잘못된 신호인지라, 더는 함께 책임질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세 번째 갈래는 당내 균열의 정점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 절연파의 전면 등판이다. 이들은 지도부 메시지를 “또 다른 계몽령”, “몹시 실망스럽다”, “당심만 바라본 정치”라고 비판했다. 박정훈·김재섭 의원 등이 공개적으로 “장동혁 지도부가 당원 다수의 마음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반기를 든 것은 그 상징적 장면이다.
이들 절연파는 단순히 계엄 사과를 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윤석열 전 대통령 체제와의 정치적 연속성을 단절하자는 구조적 개편론으로 나아갔다. 보수 재편의 서막을 연 셈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둔 국민의힘은 깊은 내상과 함께 길고도 낯선 진통을 예고하게 됐다”며 “지도부는 강성 지지층 결집 전략을 고수하고 있고, 친윤 주축 인사들은 중도 확장을 위해 사과를 요구하며 거리두기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절연파는 윤석열 정치와의 결별을 공식화하며 새로운 보수 구도를 향해 몸을 돌리고 있다”며 그 갈라진 틈은 계엄 1년에 대한 단 한마디 ‘사과합니다’의 여부로 벌어졌다“고 언급했다.
정치권에서는 향후 지방선거에서 어떤 세력이 주도권을 거머쥐느냐에 따라 보수 정치의 지도가 다시 그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이 겪는 균열은 단순한 내부 잡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보수 정당이 어떤 얼굴과 메시지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 싸움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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