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30세대들 사이에서 ‘같은 값이면 무조건 많이’가 소비트렌드로 떠올랐다. 과거에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졌다면 근래 들어서는 ‘가용비(가격 대비 용량)’을 따지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취업 사정도 어려워지면서 ‘무조건 많이’ 문화가 확산된 결과로 분석됐다.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을 얻으려는 청년들을 일컬어 ‘코스파족(Cost-performance·일본식 발음)’이라 부른다. 최근 선풍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욜로(Yolo)족’과는 반대 개념으로 인식된다. 욜로족이 ‘인생은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이라며 현재의 만족을 위해 아끼지 않는 소비성향을 보인다면 코스파족은 철저히 비용에 따른 가치·효과를 따져 소비하되 자신에게 큰 만족을 주는 것에 투자한다.
공교롭게도 서로 상반된 이들에게도 공통점은 존재했다. 자신에 대한 투자만큼은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코스파족은 생필품·식료품 등에는 최대한 아끼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취미 등에는 큰 소비도 마다치 않는다. 욜로족은 언제나 자신을 위해 큰 소비를 일삼는다.
비용은 저렴, 만족감은 최대…욜로족 대항마 ‘코스파족’
집에서 받는 용돈이 부족해 아르바이트를 겸하고 있는 대학생 오인영(25·남) 씨는 얼마 전 1kg에 5900원하는 대용량 과자를 구입했다. 그는 “평소 군것질을 좋아하는데 싼 가격에 많이 먹으려고 하다 보니 자주 찾게 된다”며 “창고형 할인마트에서 사 먹어보고 ‘가용비’가 괜찮아 인터넷에서 주문해 먹는 편이다”고 말했다.
실제 오 씨의 말처럼 최근 포털사이트에 ‘대용량 과자’를 검색하면 1kg에 5000원 내외하는 추억의 옛날 과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연관검색어에는 동물 사료처럼 오래 두고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대용량 과자의 별칭인 ‘인간사료’, ‘벌크과자’라는 말이 함께 뜬다. 통상 50~60g 정도 하는 과자 한 봉지와 비교하면 시쳇말로 ‘가용비 갑(甲)’인 제품이다.
오픈마켓 옥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식품·생활용품 등 대용량 제품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0배가량 늘었다. 오 씨가 구입한 대용량 과자 종류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판매량이 13% 늘면서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주로 생필품과 식품군에서 대용량 제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칫솔과 핸드워시, 주방세제의 판매량은 지난 5개월 동안 각각 83%, 75%, 49% 늘었다.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가공식품 종류의 경우 대용량 제품은 전년대비 매출이 31% 증가했다.
소비자들의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각 유통업체들도 가용비를 앞세운 제품들을 속속 내놓고 있는 추세다. 청년들의 소비 패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드럭스토어는 특히 가용비를 따지는 코스파족이 늘면서 기존보다 양을 늘린 제품이나 ‘1+1’ 기획 상품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구로디지털단지 GS왓슨스 G밸리점 김유정 점장은 “최근 대형 토너나 샴푸, 트리트먼트 제품 등이 많이 늘었다”며 “가용비를 따지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다 보니 20~30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CJ올리브영 관계자는 “기초부터 바디 제품까지 대용량 제품도 잘 나가지만 1+1 기획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도 많다”며 “하나 값에 두 개를 살 수 있는 기획 상품들은 특히 할인 기간에 평소보다 매출이 눈에 띌 만큼 상승한다”고 말했다.
철저하게 경제적 측면 따지는 코스파족, 자신의 만족 위해서는 아낌없는 투자
코스파족도 욜로족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만족을 가장 중시했다. 이들은 특정 부분에서는 가용비를 따지며 소비하고 절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주는 분야에서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욜로족의 성향도 일부 갖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인 경우에는 가격 대비 용량이 큰 것을 찾게 된다는 자영업자 이영롱(29)씨는 “가용비가 좋은 제품 중에서도 품질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온·오프라인에서 정보를 얻거나 특가·핫딜 찬스를 이용해 상품을 구매한다”며 “하지만 싼 가격만 좇느라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게임회사를 다니고 있는 전우환(29)씨 역시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전 씨는 “가정에 구비해두고 써도 되는 품목들은 싸고 양 많은 것을 고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스포츠 분야와 관련해서는 과감하게 투자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굳이 질을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상품이라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성비·가용비를 따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같은 값으로 더 많은 양을 구매했다는 것에 자기만족을 얻고 동시에 목표한 바를 위해 절약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성숙 계명대학교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계속되는 경기 불황이 가용비를 따지는 소비성향을 만들어 냈다”며 “과거 명품족이 타인의 시선을 즐기며 인정받기를 원했다면 현재 청년들에게 나타나는 욜로·코스파족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집중한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특히 기성세대의 눈으로 바라보면 청년들은 대단히 현재 지향적이고 충동적이라 불안하지만 그 나이에 누리지 못한 것들에 과감히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시사하며 “현재에 충실해 미래를 희생하는 것, 혹은 그 반대 모두 둘 사이에 균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재의 만족감을 가지고 가는 선에서 미래를 대비하는 최소한의 준비 과정은 중요하다”며 “청년들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미래에 얻을 수 있는 만족에 대한 정립이 필요하고 기성세대들은 경제수준이나 외향적인 것들로 청년들을 예단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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