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학교의 사명은 통일공감대를 확산시키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통일이 되는 순간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할 수는 없어요. 독일 통일의 경우를 놓고 보더라도, 그 전에 통일준비를 차곡차곡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죠. 탈북민 자녀들의 교육은 이들을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 내세우는 것과 더불어, 미래한국 세대들에게 통일된 국가를 물려주기 위해 준비한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어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가운데, 각급 학교들이 방학에 들어갔지만 교육일선에서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미래의 통일세대를 준비시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선생님들이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남산 기슭의 어느 나지막한 건물에 자리 잡은 여명학교를 찾아 그 선생님들을 만났다.
여명학교는 90년대 후반 북한이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을 당시 북한을 지원하고 탈북민을 보호하던 여러 교회와 개인들이 연합하여 탈북청소년 교육을 위해 2004년에 설립한 학교이다. 학교 이름 역시 새벽을 깨우는 동트는 햇살과 같이, 통일의 새벽을 일깨우는 인재들을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여명학교’라고 지었다.
방학기간에도 대학진학 준비를 위해 학생들의 교육에 열정을 쏟고 있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교육자가 아닌, 이 나라의 미래를 키워가고, 통일의 가교역할을 할 인재들을 준비시킨다는 사명감으로 교육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그들의 모습에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졌다.
“탈북청소년들의 인재양성과 한국사회 정착을 위해 이 학교를 설립했어요.”
취재진은 여명학교에서 탈북청소년들의 어머니이자 그들의 스승인 조명숙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학교교육 전반을 맡고 계시는 황희건 교감 선생님과 최연정 상담선생님, 이승주 사회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조명숙 교장선생님이 여명학교를 설립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저도 어려서부터 빈민촌에서 나고 자랐어요. 철이 들면서 저처럼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쳐 가난의 대를 끊어 주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 한문 교육전공을 하게 됐었죠. 처음엔 처지가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일을 하다 1997년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지로 중국을 가게 되었죠.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 중국교포들도 많았기에 선택한 곳이었죠. 하지만 거기에서 그 어떤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더 큰 고난을 겪고 있는 탈북민들을 만나게 됐어요.”
“이후 탈북민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된 저는 탈북청소년들을 보면서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그들의 탈북을 돕기 위해 북한과 중국에서 아이들을 구출해 대한민국으로 보냈죠.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한국에서 잘 살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방황을 하며 학교교육에 적응을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된 거에요.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기초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주변의 많은 분들과 교회의 도움으로 여명학교를 설립하게 됐어요.”
당시 조명숙 교장은 여명학교 교감선생님이었다. 결혼을 한지 얼마 안 된 ‘어린신부’ 같은 젊은 나이였지만, 탈북청소년들의 교육을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앞서 있었다.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후원자들과 교회의 도움을 요청하며 밤낮 없이 학교설립에 매진한 결과, 마침내 2004년 여명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다. 후원을 하신 분들도 시간이 지나 학생들이 대학진학을 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아, 이게 되는구나”라고 확신했고,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의 성공사례들을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여명학교의 자랑을 좀 하자면, 우리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한국 사회에서 정말 큰 역할들을 하고 있어요. 지난 평창올림픽 당시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로 동메달을 수상한 최강혁 아이스하키선수와 연예인으로 훌쩍 커버린 김아라 배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 중인 3명의 교육교사들과 가수, 아티스트, 수의사, 간호사 등 수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했어요.”
“졸업생들 뿐 아니라 우리 선생님들도 정말 훌륭한 분들이에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마음 또한 따뜻하고 통일한국의 미래세대를 교육한다는 사명감이 상당히 많으신 분들이죠. 이런 선생님들이 있어, 여명학교 학생들이 대학에도 잘 진학하고, 사회에서도 평범하지만 특별한 역할을 하는 인재들로 자라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교감으로 학교 내 모든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황희건 교감선생님 역시, 학생들을 아끼는 마음은 따뜻했다. 지금은 사랑으로 교육하고 있었지만, 처음 여명학교를 들어오셨을 때는 대학원을 다니며 학비를 벌어야 했던 시간 강사였다. 9척이 넘어 보이는 큰 키에 연예인 같이 잘 생긴 얼굴을 가진 황 선생님은 당시 체육교사였다. 아이들은 체육선생님을 잘 따랐고, 황 선생님 역시 아이들과 형‧오빠처럼 잘 지냈다. 잠시 머물다 간다는 생각을 했던 황 선생님은 처음 학교에서 진행하는 MT에서 마음을 바꿨다고 전했다. 다름 아닌 밝게만 보였던 아이들의 웃음 속 넘어, 고단하고 힘들었던 과거를 알면서부터였다.
“제가 체육교사로 처음 여명학교에 왔을 때, 저는 오래 있을 생각은 안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이 학교에 있어야 할 사명감을 가지게 한 두 번의 잊지 못할 경험이 있었죠. 처음 체육교사 면접을 볼 때 운동장도 없는 자그마한 학교여서 별로 진지한 모습은 아니었죠. 하지만 당시 면접을 보러 나오신 교장, 교감, 교목선생님들과의 대화에서 이분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이런 곳이라면 앞으로 미래세대를 준비시키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죠.”
“또 한번은 학교에서 MT를 가게 됐었는데, 다들 한 곳에서 머물게 됐어요. 처음 온 교사라 선배 교사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을 때였죠. 낮 동안 열심히 뛰놀던 친구들이 다들 잠들고 있던 무렵 한 아이가 잠꼬대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의 잠꼬대가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엄마 피해, 총 쏜단 말이야, 빨리 도망쳐’라고 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저는 가슴이 뭉클해졌죠. 그 아이뿐 아니라 거기 모여 자던 아이들 두 세명이 약속이나 하듯, 탈북과정의 잔상들을 꿈속에서도 헤집고 다니는 거였어요. 정말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시간 강사가 끝날 때쯤 정교사로 일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고, 오늘까지 아이들을 교육하며 일하고 있죠.”
당시 학교에는 ‘아빠’ 역할을 하는 선생님들과 ‘엄마’ 역할을 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그때 황 교감은 이들에게 형‧오빠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황 교감이 이 학교에 들어 온지도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날 아이들의 부르짖음이 여전히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게 하는 동기였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위한 배움의 터전, 확장‧이전하려 했지만 지역사회 반대로 끝내 막혀버렸어요”
여명학교는 현재 13명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40여명의 시간 강사들과 3명의 졸업생 출신 교사들이 미래통일시대의 인재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는 더 많은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이들의 교육수준을 높이기 위해 학교 이전을 준비해오고 있다. 하지만 어려움은 항상 뒤따랐다. 탈북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학교 이전을 반대하는 일부 지역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따뜻한 시민들의 도움은 있었다. 황 교감은 그 이야기들도 들려주었다.
“2년 전 학교를 이전하기 위해 학교 부지를 알아보다가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었죠. 우리 탈북청소년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너무 마음이 아팠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를 돕겠다고 어른들의 반대에도 손을 뻗어준 한 학생이 있었죠. 주변 고등학교 회장이었던 그 학생은 여명학교에 전화를 걸어왔죠. 그리곤 모든 사람들이 다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탄원서를 만들 것이니 어떻게 도울 수 있냐고 문의하는 거였어요. 물론 학교 이전은 안 됐지만 그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졌던 것 같았어요.”
“어느 해 겨울 크리스마스 명절을 맞을 때였어요. 그 지역 주민이 전화가 와서 주민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며 힘내시라고 선물도 보내줬었죠. 탈북청소년들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 마음들이 전달될 때마다 미래세대를 준비하는 선생님들로서 위안이 될 때가 많았어요.”
“저희 학생들은 정말 정이 많은 아이들이에요. 착하고 배우려는 열정이 남다르죠. 다른 학교학생들과 교류 프로그램을 할 때면 모두가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죠. 그 나이또래 친구들이 고민하는 연애문제, 학업문제, 부모와의 갈등 문제, 연예인 이야기 등 같은 고민을 하는 학생들이니까요.”
황 교감은 학교의 비전도 소개했다. 탈북청소년들을 교육시키는 여명학교의 특성상 우리 교육 분야에서 통일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이란 준비 없이 오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를 가장 많이 했을 때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말이다.
“교육의 효과는 단기적인 것이 아닌 장기적인 것이죠.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면 성과가 바로 안 나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어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 이들이 사회에서 한국사회의 통합과 미래통일세대의 역할을 다 할 때 비로써 빛이 난다 생각해요. 통일교육을 준비하고 탈북민과 같이 지내는 것이 우리 사회에는 부담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다음 세대에게 통일한국을 물려준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이들로부터 오는 마중물은 상당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탈북청소년들을 안아줘야 하고 이것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가 준비해줄 수 있는 통일한국이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여명학교 상담교사로 일하고 있는 최연정 교사는 이 학교를 대표하는 ‘미스 코리아’이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최 교사는 학생들 속에서 마음 또한 누나 같이 따뜻하기로 소문이 났다. 처음 2004년 여명학교 개교와 함께 이 학교에 들어온 최 교사는 대학시절부터 북한을 위한 기도를 많이 했다.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오던 최 교사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탈북청소년들을 교육하는 여명학교에 첫 수학교사로 들어오게 됐다.
“저는 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탈북청소년을 위한 학교가 있는지 몰랐어요. 우연히 어느 신문을 통해서 여명학교가 개교하고, 수학교사를 모집한다는 공고 글을 보게 됐죠. 당시 저는 수학교육을 전공해서 일반학교 수학교사를 생각했었는데, 뭔가 특별한 일을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명학교에서 수학교사를 하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준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지원하게 됐었죠.”
최 교사는 여명학교에서 첫 수업을 했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조금 떨리기도 했지만, 오히려 학생들이 선생님을 안심시켜주더라는 것이다.
“수업을 하는 내내 학생들로부터 배려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수업에 집중해주는 모습과 가르쳐줘서 고마워하는 마음, 그리고 나를 응원해주는 느낌까지, 이 모든 것이 제가 이 아이들과 함께 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죠.”
“마음이 아름다운 아이들, 미래의 통일한국을 연결할 인재들이라 생각해요.”
현재 최 교사는 아이들의 개인생활지도를 전담하고 있다. 탈북과정에 받은 상처와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문화 적응에 어려운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 그들의 학교생활과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아이들과 동고동락한 최 교사는 탈북청소년들의 따뜻한 마음에 교사들이 감동을 받았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저희 학교 선생님 중에 아이를 낳자마자 힘들게 잃은 선생님이 계셨어요. 당시 학생들이 그 선생님이 배가 부르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수업을 받았었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이를 잃고 나서 정말 힘들어 하는 선생님을 보며 학교 교직원은 물론 학생들까지 위로해줬죠. 그런데 어느 날 한 학생이 그 선생님의 몸조리를 위해 잉어를 직접 잡아온 거에요. 지금 생각하면 고기를 잡으면 안 되는 금지구역에서 잡아왔을 거에요. 그래도 아파하는 선생님께 드리겠다고 비닐로 포장해서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져온 잉어을 보며 모두가 감동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선생님도 아이들의 응원으로 회복을 되찾아갔죠. 저희 학생들이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에요.”
여명학교에는 졸업생 교사도 있다. 2008년 여명학교에 입학해 중학교‧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한국외국어대학에서 중국지역학과 정치외교를 전공한 이심일 교사다. 이 교사 역시 탈북민이다. 그는 여명학교를 다니며 공부에 대한 꿈을 이뤘고,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탈북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됐다. 현재는 담임교사로 여명학교에서 사회 교과목을 가르치는 그는 항상 아이들의 어려움에 먼저 다가가 그들이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가게 응원해주고 있다.
“여명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후 공부를 하면서 저를 공부시켜준 학교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 없었어요. 특히 저와 같은 청소년들이 한국정착을 잘 할 수 있게 하는 일은 교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학교 연구원으로 들어왔죠. 이후 3년간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정교사가 됐어요.”
2019년 정교사가 된 이 교사는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를 풀 때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중국어로도 설명해주곤 했다. 최근 중국에서 태어난 탈북청소년들이 많아지며 한국어에 대한 적응이 부족한 아이들이 많다. 이런 환경에서 이 교사는 여명학교에 둘도 없는 통역관이다.
“아이들이 수업을 할 때 한국어를 잘 알아 못들을 때가 많아요. 한국어 실력을 높여주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긴 하나 가끔 답답해하는 친구들에게 중국어로도 설명해주죠. 그러면 아이들이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고 기뻐해요. 학교생활을 하거나 기숙사 생활, 부모와의 갈등, 선생님과의 소통에서 문제가 있을 때마다 통역을 전담하고 있어요.”
여명학교는 오늘도 통일준비를 위한 교사들의 헌신과 학생들의 열정으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미래는 우리가 아닌 미래세대가 살아갈 세상이다. 지금 이들에 대한 투자가 없다면 한반도의 통일도 없다. 중요한 것은 탈북청소년들이 통일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들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탈북민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오늘에도 우리는 통일대한민국의 인재양성이라는 사명감을 안고 교육헌신을 하고 있는 여명학교 선생님들 같은 분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앞날도 밝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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