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의 한 북카페에서 박성필 스튜디오 냅 대표(38)와 그의 아내 최신애 씨(39)를 만났다. 때마침 북카페를 찾은 아이들의 밝은 에너지가 공간을 꽉 채우며 활기가 넘쳤다.
‘스튜디오 냅’은 반도체 관련 일에 종사했던 박성필 대표가 엔씨소프트에서 아트 일을 하던 아내와 함께 설립한 인디 게임 회사다. 직원은 두 사람이 전부다.
스튜디오 냅의 설립 당시 이름은 1506호였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의 호수가 1506호여서다. 이사를 한 뒤 스튜디오 냅(Nap)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낮잠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지은 것은 신생아인 아이가 잘 때 개발한다는 뜻을 담았다. 스튜디오 냅은 2014년 대한민국 앱어워드 으뜸 앱을 수상하고 ‘카툰크래프트’가 2019년 구글플레이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TOP3에 오르는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부부 두 명으로만 구성된 게임 개발팀… “직장 그만두고 스튜디오 차렸죠”
부부 중 게임 회사에 다니던 쪽은 최신애 씨였지만 예전부터 게임을 좋아했던 쪽은 박성필 대표였다. 박 대표도 애초에 게임 개발에 종사할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오락실을 많이 다녔어요. 스트리트 파이터1, 2도 했고 더블 드래곤, 1942 같은 게임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들어가서부터는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죠. 그때는 혼자 하는 RPG 게임을 좋아했어요. 보통 JRPG라고 불리는, 마법도 나오고 칼도 휘두르고 세계관도 있고, 미소녀도 많이 나오는 판타지풍의 게임을 자주 했어요.”
최신애 씨는 반대였다.
“저는 게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게임을 해 본 것도 거의 없었고요. 의외로 게임 회사 다니는 사람 중에 게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일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배웠죠.”
두 사람이 인디 게임 개발자가 된 이유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계속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제가 불로소득을 좋아해요. 한번 만들어서 내놓고 나면 계속 돈이 들어오는 거, 좋잖아요. 그래서 회사에 다니면서 작곡 공부를 했는데 아이폰3가 나오고 앱스토어에서 ‘앵그리 버드’가 대박을 치는 걸 보고 작곡보다 게임 만드는 게 빠르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었으니까 퇴근하고 게임을 계속 만들었어요.”
결혼 후에도 혼자 게임을 만들던 박성필 대표는 아내가 게임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같이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디자인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내의 손을 빌렸다. 좋은 디자인이 나오니 시장 반응도 좋았다. 두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게임 스튜디오를 차리기로 했다.
“회사에 안 가고 일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죠. 재미있을 것 같았고요. 그래서 부담 없이 시작했던 것 같아요. 둘이 계속 붙어있을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시작한 게임 개발이지만 초기에는 쉽지 않았다. 둘 다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에 당장 수입이 없어졌다. 대출금도 남아있어서 갚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게임을 만드는 데에 제작비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인디 게임 제작자로선 제작비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어요. 아트는 아내가 다 그려주니까 충당을 했고, 개발은 제가 하면 되니까요. 아이디어도 그냥 저희가 내면 되고요.”
판로를 찾기 힘든 것이 문제였다. 제작이야 두 사람이 하면 되지만 판매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게임을 팔 경로를 찾기 위해서는 직접 돌아다니는 방법밖에 없었다.
“코로나19가 없을 때니까 오프라인 모임이나 세미나가 많이 있었어요. 게임 산업이 제법 뜨거우니까 투자설명회 같은 것도 많이 있었고요. 어떻게든지 수소문해서 다 찾아다니고, 업계 관계자들이 있으니까 끝나고 뒷자리에 가 어떻게든 껴서 친해지고 정보도 얻고 그러면서 인맥을 넓혀갔던 것 같아요.”
이러한 노력은 시간이 지나 결실을 맺었다. ‘카툰크래프트’ 등 흥행작을 배출하면서 스튜디오 냅은 인디 게임 업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부부의 생활도 안정을 얻었다. 카툰크래프트의 경우 다운로드 수가 100만건(1건 1.99달러)을 돌파했다. 박 대표는 현재 연수익이 1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자유롭고 편안한 환경이 최고의 장점… 게임하듯 개발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했으니 좋은 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박 대표는 일하면서 일처럼 느끼지 않아도 되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게임 개발이랑 게임 플레이랑 비슷해요. 게임을 하다 보면 그 다음에 어떤 콘텐츠, 어떤 퍼즐이 나올지 대응하고 예상하면서 플레이를 하잖아요. 게임 제작도 똑같아요. 플레이어들을 여기까지 이끌었으면 뭘 해야 사람들이 더 즐거워할까 고민해보는 거죠. 게임 개발자의 고민과 게임 이용자의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얻는 곳도 가지각색이다. 계획에 빡빡하게 맞춰야 할 필요도 없으므로 스튜디오 냅이 만드는 게임은 자유성과 창의성이 넘친다.
“아내가 피처폰에서 했던 게임이 재미있다고 하길래 한 번 만들어 본 적이 있어요. 이걸 키워볼까 생각하는데 마침 아내가 강아지를 그리는 걸 좋아해서 해봤죠.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게임이 몇 개 있어요.”
“만들고 싶은 게임이 많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기는 한데 저는 사장이 없잖아요. 아무도 저한테 압박을 넣지 않아요. 만들고 싶은 걸 3개월 안에 만들어야 하는데 또 하나를 만들고 싶으면 6개월 안에 두 개를 만들면 돼요. 유동적으로 할 수 있죠.”
부부가 같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직업이기 때문에 흥행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하게 게임을 만든다는 생각에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든 게임은 빛을 보지 못했다.
“게임 전체의 구조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게임은 잘 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뭘 좋아할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 예측할 수 있을 때 좋은 게임이 만들어져요.”
“그냥 제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거라면 제가 하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만 표현하면 돼요. 그런데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주가 되는 게임을 만들려고 한다면 플레이어들에게 초점을 맞춰야죠.”
인디 게임 힘들게 하는 것은 규제보다는 편견… 따뜻한 응원의 시선 필요
인디 게임 업계의 현황에 대한 의견도 들었다. 박 대표는 인디 게임 개발자라고 하면 힘들고 치열한 이미지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인디라는 단어를 가져온 시점에서 예술이라는 걸 포함해요. 예술을 하는 데에 큰 기반이 필요하지 않아요. 편견을 가지고 보지만 않는다면 저희는 그냥 할 걸 하면 돼요. 크게 인프라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요. 돈이 필요하다면 인건비인데 제가 저한테 인건비를 주진 않잖아요.”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생각보다 게임에 돈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옛날에는 불법 다운로드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사람들이 결제를 하니까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가 많이 늘어난 편이에요. 잘하면 대박도 낼 수 있고요. 실제로 그런 이유로 뛰어드는 사람이 많아요. 물론 그만큼 실패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생기지만요.”
박 대표는 생각보다 인디 게임 업계의 기반이 잡혀 있는 상황이어서 인디 게임 업계에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진 않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과도하게 건드리지만 않으면 자체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이런저런 사업을 하고 있고 실제로 도움을 받은 곳도 있겠지만 정말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사업이 있다는 생각은 못 해봤어요. 정부가 아직 찾지 못했을 수도 있죠. 만약 획기적인 방법이 있다면 꼭 찾았으면 좋겠네요. 아까도 말했지만 인디 게임 개발은 큰 게 필요하지 않아요. 쓸데없이 건드리지만 않으면 돼요.”
“사실 최근 폐지된 셧다운제 같은 건 인디 게임 업계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큰 생각은 없어요. 문제 되는 규제가 있다면 게임 등급 분류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것 정도겠네요. 게임을 출시할 시기도 생각해야 하는데 등급 분류 때문에 늦춰지는 경우가 생기니까요.”
박 대표 같은 인디 게임 개발자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 정책보다는 사람들의 편견이다. 그는 부정적인 시선보다는 응원을 보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게임 중독 같은 이슈가 계속 나오고 나쁜 걸로 취급하니까 힘이 빠지죠. 사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되겠죠. 누가 무엇에 흠뻑 빠져 있을 때 그걸 중독이라고 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게임만 유독 그러더라고요.”
“그렇다고 해도 이제까지 다들 부모님 몰래 게임 잘했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나왔고 충분히 자리를 잡고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박성필 대표의 꿈과 목표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의 분위기처럼 편안하고 여유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잘살고 있으니까요.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상태고요. 쭉 이렇게 여유롭게 살면서 백발이 될 때까지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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