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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국면에서 의료기관들이 간호 인력 부족 현상을 호소하면서 수면으로 올라온 간호법 제정 문제가 의료계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보건의료계는 간호사와 그 외 범의료계로 나뉘어 간호법 제정 찬반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간호계는 초고령화 시대가 가속화 하면서 노인 인구 증가 속에서 병원에서 지역사회 돌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보건의료계 흐름 상 간호법 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반대하는 이들은 의료면허제 면허제 근간의 보건의료체계 붕괴 초래와 직역 간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지난달 22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문 인근 대로변에서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대규모 궐기대회와 삭발투쟁을 감행했다. 이 자리에 의협(대한의사협회)·간무협(대한간호조무사협회) 임원과 대의원회 의장 및 간부직을 포함해, 의사·공중보건의·전공의·간호조무사·임상병리사·의료기사 임원 등 20여 개 단체에 주최 측 추산 7000여명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해당 집회는 간호법 제정안이 보건복지위원회 전체 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차원에서의 시위로 궐기대회 참여자들은 ‘간호사의 의사행세 국민건강 위협한다.’ ‘간호법의 독선 추진 의료체계 붕괴한다’ ‘간호협회 사리사욕 보건의료 붕괴된다’등의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필수 의협 회장과 곽지연 간호조무사협회 회장은 궐기대회 말미에 삭발까지 했다.
시위의 기폭제가 된 것은 바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간호법 통과였다. 보건복지위는 지난달 17일 전체 회의를 열고, 같은 달 9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의결한 간호법안을 심의·통과시켰다. 이에 간호법 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심의만을 남겨 놓은 상황이다. 이로써 간호사의 업무는 1962년 국민의료법이 의료법으로 전면 개정될 당시 처음 규정된 이후 큰 틀에서의 개정이 이어지지 않아 의료법 제정 이후 64년 만에 첫 개정이 이뤄지게 됐다.
‘간호법 제정은 고령화시대 지역 돌봄 케어 위해 필수’
간호계는 변호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등 대부분 전문직종은 단독 법이 있지만 간호사는 1951년 제정된 의료법에 묶여 있고 관련 정책이 11개 부처에 흩어져 있어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다고 주장해왔다. 1960년대부터 정부에서 간호사 부족 현상에도 법령상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의료법에 근거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는 매우 추상적인 문구 단 하나로만 정의 하였다. 이 때문에 간호사가 인지하는 간호업무에 대한 자율성과 효율적인 업무수행의 어려움이 발생했다.
여기에 더해 간호인력 간의 역할 구분이 불분명해졌고 간호조무사의 질 관리에 대한 필요성도 여러 차례에 걸쳐 대두해 왔다. 결국, 지속해서 지역갈등을 유발하며 궁극적으로 간호의 질 저하와 환자 안전에까지 영향을 미쳤단 게 간호계의 오래된 중론이었다.
간호법 제정이유는 고령화 사회와 연결되는 데,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 2026년에는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고령인구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인구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의료 및 간호 서비스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고령층이 기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역사회 통합돌봄체계 구축을 위한 필요도가 높아졌고,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전염병이 등장하면서 감염병 대응과 치료를 위한 숙련된 간호사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하며 간호법 제정이 물살을 탔다.
관련해 박근혜 정부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정책 기조 하에서 4대 비급여인 간병비 부담의 완화 목적으로 간호와 간병을 통합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대한 논의와 시범사업을 추진했는데, 이 같은 상황에서 2015년 5월에 발생한 메르스사태와 2019년 초의 코로나19 사태를 중심으로 간호법 제정이 현실화한 것이다.
복지위 소속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은 “간호법의 입법 취지는 인구 고령화와 질병구조 변화에 따라 의료기관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간호사 서비스 수요가 많이 증대되고 있어 앞으로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어떤 간호서비스를 해야 하는지 등을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며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지역사회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호법 제정은 의료법에 포함된 간호사에 관한 규정을 떼어내 독립적인 법체계를 만들자는 취지다. 간호법 제정안들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과 관련된 사항을 규정한 단독법으로 업무범위와 간호인력 수급, 교육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간호계는 적정한 간호인력 수급과 지원을 통해 처우가 더욱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은 4월18일 언론기고를 통해 “고령사회의 노인 인구와 급증하는 만성질환자에 대한 건강관리와 돌봄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규정해야 한다”라며 “우수한 간호인력 양성과 배치, 그리고 처우 개선 등에 관한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간협은 국제간호협의회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4월19일 국제간호협의회 하워드 캐튼(Howard Catton) CEO는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간호사와 환자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며 간호법 제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간호협의회 파멜라 시프리아노(Pamela Cipriano) 회장도 4월5일부터 7일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히며 간협을 지지했다.
‘간호사가 독립 의료행위하며 그 외 영역 침투’
이같은 간호법 제정에 간호협회를 제외한 범 의료계는 결사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의협은 간호법이 의료법에 명시된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지도’에서 ‘지도 또는 처방’으로, ‘진료 보조’를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해 간호사가 진료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도록 했다며 사실상 의사 고유의 직능 범위가 줄어들거나 다른 직역과 겹치면서 간호사 외의 보건 인력에도 이의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의협은 지난달 17일 복지위 전체회의가 통과한 직후 곧바로 입장 문을 통해 간호법의 복지위 전체회의 통과를 규탄하고 나섰다. 의협 측은 “간호단독법의 폐기를 요구한 의협과 의료계를 무시하는 처사로서, 이에 대해 14만 의사와 의료계는 강력히 규탄한다”라고 밝혔다.
대한임상병리사협회·대한방사선사협회·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는 지난달 23일 공동으로 입장문을 내고 “간호법 제정을 당장 중단하라”며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다른 직역의 업무영역을 침탈하는 간호법이 탄생한다”라고 지적했다. 세계의사회는 4월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간호사가 의사와는 독립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대한민국 입법부의 시도에 즉각적으로 반대한다”는 공식 성명을 채택했다.
간협을 제외한 나머지 의료계 단체들은 제정법의 제 1조 ‘간호법의 목적’ 부분부터 잘못됐다고 본다. 1조에는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이라고 명시해놨다. 당초 제1조에서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돼 있었지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의 과정에서 의료기관 부분만 삭제됐다.
이에 의사협회 측은 ‘지역사회활동’이란 단어를 지적하며 간협의 업무 범위가 독립적으로 넓어질 것을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지역사회 돌봄 수요 증가에 공감하지만, 간호법이 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본다”라며 “전 세계 어디에도 간호사를 중심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일본도 과거에는 복지 중심의 돌봄 정책을 펼쳤지만, 지난 2014년 법 개정을 통해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돌봄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복지위 소속이자 전문의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간호법의 목적과 취지는 공감하지만 관련 법적 근거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지난달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보건의료전문지 기자간담회에서 “간호법의 목적과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의료인의 처우 개선, 그리고 방문 간호뿐만 아니라 방문 진료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특히 “고령화가 도래함에 따라 방문간호에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의사의 방문진료를 포함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호조무사등은 제10조를 지적한다. 10조에는 △간호조무사가 수행하는 업무 보조에 대한 지도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사회적 지위를 더 악화시키고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를 간호사의 지도·감독하에 두도록 한다고 보고 있다.
간무협 및 의협 측은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가 아닌 처방을 요구하면서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를 지도할 수 있다는 이중적인 잣대를 법은 허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이들은 “요양보호사는 노인복지법상 시설장의 지휘하에 돌봄 업무를 수행하는 직종으로 간호법에 포함돼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지도업무를 주장하는 것은 간호사들의 계략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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