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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인 A씨(30)는 매일같이 밤 11시에 편의점으로 향한다. 디지몬빵을 싣고 오는 물류차량이 그때쯤 편의점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명품을 구매하기 위해 달려가는 오픈런(Open Run) 현상과 닮은 꼴이다. 디지몬빵은 점포당 1~2개 들어온다. 추가로 구입하기 위해서는 주변 편의점으로 빠르게 이동해야 한다. 조금만 늦어도 구할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사이에서 유행하던 캐릭터빵이 10여년 만에 재출시되면서 소비시장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매장에 입고되는 순간 바로 팔릴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이하게도 주 구매자는 20·30대 성인이다. 이들은 빵에 들어있는 캐릭터스티커(‘띠부띠부씰’)를 얻기 위해 빵을 구매한다. 어릴 적 추억을 간직하려는 일종의 ‘키덜트(Kid+Adult, 어린이 취향을 가진 성인)’ 문화로 풀이된다. 80·90년생의 경제력이 커진 만큼 키덜트 소비는 향후 규모를 더 키울 것으로 관측된다.
“스티커 수집,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재미 느껴”
18일 제빵업계에 따르면 롯데제과는 지난달 24일 디지몬빵을 출시했다. 현재 롯데제과 공식 온라인몰 ‘롯데 스위트몰’과 롯데마트, 롯데슈퍼 등에서 판매되며, 편의점은 세븐일레븐에서만 판매된다. 이번에 출시된 디지몬빵은 △아구몬의 허니크림빵 △텐타몬의 고소한 땅콩샌드 △파닥몬의 마롱호떡 △파피몬의 파인애플케익 등 4종이다. 빵 하나당 띠부띠부씰 182종 중 한 개가 들어있다.
디지몬은 디지털 몬스터의 줄임말로, 2000~2001년 방영된 일본 원작 TV애니메이션 ‘디지몬어드벤처’의 캐릭터다. 디지몬빵은 이를 배경으로 만든 캐릭터빵으로, 2000년대 초 ‘포켓몬스터’ 배경의 포켓몬빵과 함께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A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디지몬어드벤처’ 만화를 즐겨보면서 디지몬 스티커를 모았던 게 기억에 남아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호기심 삼아 한 번 샀는데 계속 모으다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재미를 느꼈다. 새벽마다 친구들과 동네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디지몬빵을 사는 게 새로운 취미활동이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 B씨(28) 역시 주말마다 직접 차를 운전해 다른 지역 편의점까지 찾아가면서 디지몬빵을 사곤 한다. B씨는 “살고 있는 동네에 세븐일레븐이 많이 없고 들어와도 1개 정도뿐이라 차로 이동해 수원시에 있는 편의점을 돌아다닌다”며 “1~2시간 돌아다니면 보통 12개 정도 구입할 수 있는데 합쳐봤자 2만원이 채 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2000년대 디지몬 인기는 상당했다. 유치원생·초등학생이라면 디지몬 관련 상품을 최소한 하나씩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인기는 여전하다. 완구, 게임 등 캐릭터 산업에서 포켓몬 못지않은 팬덤이 형성돼 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올 들어 포켓몬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디지몬 마니아들은 제빵업체들에 디지몬빵을 출시해달라는 의견을 내기도 하고 제품 출시 가능성과 계획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서로 나누기도 했다”고 출시 배경을 전했다.
80·90년생의 향수를 자극하는 캐릭터빵은 소비시장 주요 트렌드로 부상했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디지몬빵은 지난달 24일 판매 시작 후 일주일간 25만개 판매됐다. 시간당 1500개 가까이 팔린 셈이다.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에는 디지몬빵 구매 성공·실패담이나 띠부띠부씰 인증 등이 줄을 잇고 있다. 포켓몬빵은 더 압도적이다. SPC삼립에 따르면 2월 말 출시된 포켓몬빵의 누적판매량은 지난달 23일까지 8100만개에 달했다. SPC삼립은 베이커리 사업 성장 등에 힘입어 2분기 전년동기 대비 14% 늘어난 8149억원의 매출액을 거뒀다.
한 세븐일레븐 판매원은 “디지몬빵은 매대에 진열하자마자 판매되거나 탑차(물류차량)가 오기 전부터 대기하고 사가는 경우도 많다”며 “연령층을 보면 대체로 20·30대이고 40대로 보이는 사람들도 몇 번 사갔다. 초등학생은 거의 없는 편이다”고 말했다.
띠부띠부씰을 리셀(Resell·되팔기)하기 위해 캐릭터 빵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희귀한 띠부띠부씰의 경우 중고거래 앱·사이트에서 빵 가격(1500원)의 수십 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12일 번개장터에서 인기 디지몬인 ‘워그레이몬’과 ‘메탈가루몬’의 띠부띠부씰 가격은 개당 10만원 수준이다. 포켓몬 ‘뮤’와 ‘뮤츠’의 띠부띠부씰은 3만~7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띠부띠부씰 여러 개를 묶어 10만~20만원대에 판매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B씨는 최근 띠부띠부씰 리셀을 통해 2만원 정도의 수익을 거뒀다. 그는 “리셀을 하기 위해 빵을 사는 건 아니지만 똑같은 게 나오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교환하거나 판매한다”며 “금액 자체가 크지 않지만 취미활동을 하며 돈을 벌어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금 20·30대의 상황이 어렵다보니 어린 시절에 좋아하고 가지고 놀던 것에 열광하는 것 같다”며 “온라인 활성화로 인터넷에서 본인과 똑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과 정보를 주고받고 소통함에 따라 더 편안하게 키덜트 소비 활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어른으로서 해야 할 여러 가지 책임들을 다 잊어버리고 마음 편안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키덜트 시장규모, 6년 사이 세 배 이상 커져
포켓몬빵 열풍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80·90년생은 추억찾기에 지갑을 과감히 열고 있다. 키덜트 소비시장도 더욱 커지는 추세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규모는 2020년 1조6000억원으로 2014년(5000억원)과 비교해 세 배 이상 커졌다. 작년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집콕’ 문화로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11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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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오동훈 기자] ⓒ스카이데일리 |
또 다른 대표적 키덜트 상품으로는 조립블록 ‘레고’를 꼽을수 있다. 지난해 글로벌 레고 판매량 가운데 성인 고객이 자신을 위해 구매한 비율은 20%에 달했다. 장난감업계는 구매력을 가진 키덜트 고객을 겨냥한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레코코리아는 올 4월 스타워즈 올드팬을 겨냥해 신제품 ‘레고 스타워즈 디오라마 시리즈’를 출시했다.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의 4번째 에피소드 ‘새로운 희망’과 5번째 에피소드 ‘제국의 역습’의 주요 장면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롯데마트 토이저러스도 올 5월 ‘쥬라기 월드:도미니언’ 개봉을 앞두고 영화의 명장면을 레고로 구현한 ‘레고 쥬라기 월드 크리케라톱스 픽업트럭 매복’과 ‘파이로랩터와 딜로포사우루스 수송’을 단독 상품으로 선보였다. 박기택 토이저러스 MD는 “엔데믹과 맞물려 유년시절 향수를 가진 3040소비자들이 열광할 것이라 확신했고 이에 따른 영화 콘텐츠 완구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해 영화 개봉 전부터 다양한 프로모션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키덜트를 위한 공간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롯데월드타워·몰은 지하 1층에 ‘어른이’를 겨냥한 키덜트 매장들을 운영하고 있다. 80·90년대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가지고 만든 레고, 피규어, 인형 등 상품을 판매한다. 창신동 완구거리도 키덜트의 성지다. 이곳에 위치한 120여개의 완구·점포에는 ‘꼬마손님’보다는 성인들이 자주 찾고 있다. 이마트는 레고전문관을 운영하고 있고 롯데백화점 본점 영플라자도 키덜트존을 운영하며 관련 매장을 늘리고 있다.
키덜트 소비 행태는 복합적이다.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등 3명이 발표한 ‘키덜트 소비자의 장난감 소비동기와 소비행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키덜트 소비 동기는 △쾌락적 가치 △노스탤지어(향수) △이상향(로망) 실현 △완성욕구 △보상적 결핍 △심미적 가치 등 여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키덜트는 자신을 위해 장난감을 구매하는 빈도가 가장 높았고 여윳돈이 생겼을 때 가격 할인, 신제품·한정판 출시 등의 소비상항에서 주로 구매했다.
이 교수 등 전문가들은 “여성과 남성 키덜트의 구매동기나 소비행태가 상이하게 나타났는데 이는 성별 등 소비자의 유형에 따라 특화된 제품·서비스 제공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며 “장난감 유형에 따라 주 소비자층을 만족시킬 수 있는 소비 공간을 특성화해 조성하거나 매장 서비스도 차별화해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KOCCA는 키덜트시장의 성장이 올해에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한국시장 진출이 키덜트 상품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2020년부터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시 영상물 권리뿐 아니라 상품화 권리도 소유하는 옵션을 만들었다. 이는 향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활용해 상품화 사업을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KOCCA 관계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오징어게임’을 통해 넷플릭스는 상품화 사업의 가능성을 보았으며 현재 전 세계 지사에서 상품화 담당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넷플릭스도 상품화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고 이미 상품화 사업의 일환으로 온라인 숍을 오픈하고 자사 제작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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