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9일 야당 단독으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을 통과시키는 행태를 보고 탄식을 했다. 법 통과 절차(사실상 날치기)와 법안 내용을 보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불을 보듯 뻔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 법이 다 민생 법안이라면서 거부권 행사는 노동기본권 말살 선언이란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민생 법안을 왜 거부권 걱정이 없던 문 정부 때 통과시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때도 지금처럼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갖고 있었고, 원청과 하청 간 근로조건 격차(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노조의 불법 집단행동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었는데!
그런데 11월 말 문 정부가 만든 방송사 지배구조를 총선까지 그대로 끌고 가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무력화를 노린 이동관 방통위원장 탄핵 시도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수사방해 의도가 분명한 이정섭·손준성 검사 탄핵 시도를 보니 당혹감·분노·자괴감이 평소보다 최소 만 배는 더 끓어올랐다. 이는 대선 불복이요, 국정 방해요, 수사 방해요, 민주주의에 대한 파괴 행위다. 개인적으로 치떨리는 노여움을 느낀다.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이 이런 반민주적 폭거를 봤다면 아마 민주당사를 점거 농성하거나 돌멩이와 화염병으로 공격했을 것이다. 내 혈관에도 아직도 35~40년 전의 반민주적 폭거를 보면 끓던 피의 자취가 남아 있다. 이런 꼴 보려고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면서 민주화운동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1830년,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로 추앙받았던 시몬 볼리바르가 죽기 직전에 했다던 탄식을 나도 토하지 않을 수없다. “일신을 민주화운동에 바친 사람들은 바다에 쟁기질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윤석열정부 출범 후 민주당의 행태는 날이 갈수록 민주 진보의 가치·이념 혹은 김대중·노무현의 정신이나 방법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점점 더 무책임·몰염치·비상식적으로 되어 간다. 김대중·노무현이 살아나서 지금 민주당이 하는 저열한 행태를 본다면 나보다 더한 분노와 탄식을 토할 것이다. 윤 정부 하에서 민주당의 저열함이 극에 달한 것은 지난 30~40년 동안 운동권과 민주당이 팔아먹던 가치·이념과 비전·정책이 완전히 파탄났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은 높은 지지율·압도적 다수 의석으로, 교묘한 상징 조작과 선동으로 운동권이 주도적으로 만든 철학·가치·이념·비전·정책을 거의 다 구현했다. 운동권이 비장한 비전·정책 가설을 거의 다 검증한 것은 문 정부의 불멸의 죄악이자 업적이다. 억울한 희생자 신원(伸寃)을 통한 역사 정의 구현, 민주주의 발전, 윤리도덕 우위, 사회적 약자·서민·민생 중시, 불평등·양극화 해소, 햇볕정책을 통한 한반도 평화 번영, 탈원전과 원전 해체 산업 육성, 신재생에너지 강국, 소득주도성장 정책, 노조 민주화, 교육 민주화,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 확장 재정과 부자 증세, 사법민주화 즉 공수처, 검·경 수사권 분리,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등이 그것이다. 길게 열거한 민주당의 간판 상품들의 현주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파탄나지 않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민주당의 간판 민생 정책이자 노동기본권 강화 정책은 최저임금 폭등·공공부문 폭증·비정규직의 정규직화·경직된 주52시간제 실시·친노조(양대 지침 폐기와 노조의 불법 집단행동 방조 등) 정책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일자리의 대폭 감소·메뚜기 알바의 증가와 알바 자리 자체의 기근·공공부문 채용의 대폭 축소 등으로 귀결되었다. 일한 만큼 주는 일이 빡센 곳은 극심한 구인난을,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이 줘서 신의 직장이라는 공공부문 및 규제 산업과 현대자동차 생산직(일명 킹산직)은 취업난을 겪고 있다. 노조는 약자의 권익을 지키는 무기가 아니라 약자의 몫을 빼앗는 강자의 흉기가 되었다.
민주당이 ‘민생’과 ‘노동기본권 강화’를 명분으로 밀어붙인 정책과 이론은 대부분 민생과 일자리 파괴로 귀결되었다. 약한 노동자를 더 고단하고 억울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소수의 강성 귀족 노조원들은 더 몰염치하고 몰상식하게 만들었다. 합계출산율 0.6명대 추락 위기는 최저임금과 노란봉투법으로 외화된 민주당의 경제·고용·노동·노조 정책 노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도 운동권과 민주당은 성찰·반성은 없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능력도 없는데 권력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해졌으니 남은 수단은 황당무계한 괴담을 늘어놓거나 검찰 독재니 친일 매국이니 하며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뿐이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1987년 이후 주류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한 가치·이념과 비전·정책은 거의 다 파탄났음에도 윤 정부와 국힘당은 외치 분야와 에너지(탈원전과 NDC 등) 등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파탄이 났다는 사실을 폭로하지도 않고 새로운 비전·정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는 윤 정부와 국힘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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