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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대한민국과 CIA’를 지면에 연재한다.
밀사인가 간첩인가
1961년 5.16군사혁명 직후에 북한의 김일성은 남한 군사혁명을 주도한 박정희라는 인물에게 남로당 전력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황태성을 서울에 급파했다. 황태성에게 부여된 임무는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나 연방제 평화통일을 의제로 하는 남북 협상 가능성 타진이었다.
황태성은 1945년 8·15광복 후 조선공산당 경북도당 조직부장으로 있다가 1946년 10월1일 대구폭동(좌익 세력이 미 군정에 저항하여 일으킨 폭동·대구10월사건)을 총지휘했고 이후 월북해 무역부 부상까지 역임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형이자 김종필의 장인으로 대구폭동에 가담했다가 사살된 박상희와 절친한 사이였다.
황태성은 1961년 5.16혁명 직후인 9월 1일에 서울에 잠입했다. 그리고 그해 10월20일에 체포되었다. 그는 박상희의 미망인 조귀분 여사와 박정희의 대구사범 동기동창인 고려대 교수 왕학수에게 접근해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날 수 있게 가교 역할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때 그는 조귀분 여사의 신고로 체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박정희와 김종필이 황태성을 여러 번 은밀히 만났고 그를 간첩이 아닌 밀사로 인정했으며 그가 가지고 온 공작금 20만 달러가 공화당 창당 준비자금으로 사용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것은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황태성이 가지고 온 돈은 2000여 달러에 불과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때 남로당에 가입했던 전력 때문에 두고두고 괴로움을 당했으며 1948년 11월에는 집중적인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때 그는 대한민국 군부 내에 포진되어 있는 남로당원들의 명단, 소위 ‘박정희 리스트’를 제공해 그들을 일망타진하게 함으로써 남로당 전력에 대한 면죄부를 받았다. 그가 5.16군사혁명을 성공시킨 후 혁명 공약에서 ‘반공을 국시로 한다’고 강조한 것은 어쩌면 과거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황태성의 진짜 임무
황태성이 체포된 후 그는 분명히 한·미양해각서 ‘미8군 정보훈령 I-65’에 의거 48시간 이내에 대방동 수용소로 후송되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이 사건의 정치적인 민감성 때문에 중앙정보부가 단독으로 관리하는 바람에 미 502군사정보단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주한 미국대사관과 미8군 G-2는 강력히 반발했다. 그리고 결국 1주일간의 접견 승낙을 받아 심문담당관인 내가 대방동 수용소가 아닌 서울 시내 모처로 가서 그를 만났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그의 상세한 공작 임무 내용과 그와 박정희, 그리고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종필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국내 좌경 인사들이 황태성은 간첩이 아닌 밀사였으나 박정희의 정치적인 약점을 은폐하기 위해 처형되었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그가 북에서 파견한 밀사였다면 떳떳하게 박정희나 김종필을 직접 만났어야 했으며 한국 정부도 사전 연락을 받고 그를 공개적 또는 비공개적으로 만났어야 했다. 그러나 황태성은 다른 간첩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은밀히 침투했으며 제삼자를 통해 박정희와 김종필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그는 민족 통일을 위한 임무를 띠고 온 밀사가 아니었다. 그는 5.16군사혁명의 주도 세력인 박정희에게 남로당 활동 전력이 있다는 사실에 의지해 김일성이 원하는 적화통일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잠입한 것이었다. 그는 분명히 북한 ‘간첩’이었다.
이 모든 것이 민족 분단의 비극이다. 황태성은 체포된 후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63년 12월14일에 인천에 있는 모 군부대 형장에서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그리고 사흘 뒤인 1963년 12월17일, 그때까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 소장이 제3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김종필의 증언과 필자의 결론
2015년 3월부터 12월까지 중앙일보에서 김종필의 증언 회고록 ‘소이부답(笑而不答)’을 연재했다. 그 회고록에서 김종필도 분명히 황태성은 간첩이었다고 증언했지만 좌경 세력의 집요한 반론에 언론 일각에서는 그때까지도 황태성이 밀사냐 간첩이냐를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서울에 체류하고 있던 필자에게 중앙일보 기자들이 황태성 문제에 대해 질문했다.
나는 당시 황태성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기자들이 나를 만난 다음 날 중앙일보는 “황태성을 담당했던 미국 정부 측 심문관이었던 ‘마이클’이 그는 분명히 간첩이었다고 해명했다”는 기사를 냈고 다시는 그 문제에 대한 잡음이 없었다.
좌절된 박정희 대통령 암살 임무
1965년에 서울 시경이 북한 간첩 한 사람을 체포했는데 이 사람이 전향하여 대북 역(逆)공작에 적극 협조했다. 그는 북한에 계속 암호 통신을 보내며 자신이 남한에서 성공적으로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고를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 북방 송추유원지 금수장 앞에서 1965년 7월18일 북한에서 남파하는 3인조 무장 간첩들을 접선하도록 공작을 추진했다. 이때 서울 시경의 대공요원들이 잠복해 있다가 저들을 덮쳤다. 그때 북한 간첩들이 저항하여 교전이 벌어졌고 서울 시경 대공요원 두 사람이 전사했으며 3인조 간첩들 중 한 사람이 생포되고 두 사람은 몸에 심한 총상을 입은 채로 도주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생포된 자의 이름은 조장 대위 노성집이고 도주한 자들은 조원 대위 이재영과 대위 우명훈이다. 이 두 사람은 북으로 돌아간 후에 병원 치료를 받고 소위 ‘공화국 전투 영웅’ 칭호와 함께 각각 육군 대좌와 상좌의 계급을 받았다. 이들은 2년 후에 평양시 근교 상원군 공포리에 ‘124군부대’를 창설했다. 생포된 노성집은 대방동 수용소로 후송되어 내가 그를 3개월간 심문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언론에서 이재영을 이재용으로, 우명훈을 우명환으로 보도한 예도 있었으나 내가 여기에 기술한 이름이 정확한 이름이다. 이 3인조 간첩들의 공작 임무는 서울 시내에 잠입하여 적절한 기회를 포착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타고 가는 승용차에 수류탄을 투척하여 그를 암살하는 것이었다.
송추 무장공비 노성집
수용소에 도착한 노성집은 초기에 아주 뻣뻣하게 굴며 비협조적이었다. 그러나 날이 가면서 심문관으로부터 북한에 관한 이야기, 남한에 관한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자 180도 태도가 바뀌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대한민국에 죄를 지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러고는 심문에 적극 협조하면서 그로부터 방대한 분량의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비록 북한 간첩으로 남한에 침투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존경할 만한 교양과 지성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심문에 협조했기 때문에 심문관들이 건의해서 수용소에서는 그를 특별히 대우했다. 우리는 그를 위해 토마토 화분 두 개를 사다가 매일 물을 주게 하고 자유롭게 수용소 안 뜰을 걷고 바람을 쏘이게 했다.
심문이 끝나고 그가 수용소를 떠날 때 한미 합동 심문관들은 한국 정부에 강력한 탄원서를 보내 그의 죄과를 관대히 용서하고 대공 업무에 고문으로 채용해 줄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그 당시 정치 분위기는 박정희 대통령의 불편한 남로당 전력과 거물 간첩 황태성 사건으로 관용의 혜택을 기대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결국 처형되었고 죽기 전에 천주교에 귀의했기 때문에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황태성 사건이란 1961년 5.16혁명 직후 9월1일에 서울에 잠입하여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나라는 임무를 수행하려다 그해 10월 20일 간첩 혐의로 체포돼 1963년 12월14일에 처형당한 사건이다.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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