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소프트파워 韓流’의 긍정적 진화 얼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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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성·선정성 등 일률적 콘텐츠로는 한계 올 것
한국인의 민첩성을 트렌드로 연결하는 지혜 필요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01 06:31:40

국력을 결정하는 요소로는 하드파워로 대표되는 경제력과 국방력에 더해 문화적 영향력으로 정의되는 소프트파워가 있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장을 던진 중국이 하드파워의 경우 지속해서 따라붙고 있지만 소프트파워 측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요원하다. 이질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국가가 이런 힘을 가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이 이에 압도적인 이유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결정적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 어디에 가더라도 일부 거부감이 있기는 하지만 다수가 미국식 생활양식을 수용하고 점차 이에 익숙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경제력에서 미국을 추월할 수는 있어도 소프트파워는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유럽이 이런 지위에 있었지만 중·후반에 들면서 미국에 그 지위를 내주었다. 1960년대부터 수십 년간 고속성장을 하면서 미국의 아성에 근접하던 일본의 경제력에 편승한 소프트파워 침투력이 한때 극대화된 적이 있었다. 일본의 소프트파워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고 100년 가까이 될 정도로 뿌리가 깊다. 당시 일본 문화의 파급력은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나 유럽에서도 거셌다. 일본의 영화·방송·애니메이션·게임·캐릭터 등 걸출한 콘텐츠에 대한 선호가 식품이나 상품 수요로 연결되면서 전 세계인을 환호하게 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의 소프트파워는 지나친 폭력성과 선정성, 도를 넘은 상업적 이기주의로 점차 외면당하게 되었다. 또한 경제의 후퇴와 맞물려 이젠 존재감이 상당히 약화됐다.

나라 안을 보면 온통 짜증나는 일이 넘쳐나지만 나라 밖에서 부는 한류(韓流)의 열풍이 훈훈하다. 힘이 빠지다가도 그래도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생산성 없는 정부가 아닌 순수 민간의 창의력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파괴력과 지속력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주목해야 할 특징이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북미·유럽·중동·중남미·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추세다.

한국과 같이 글로벌 영향력이 크지 않은 국가가 이 정도의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봐도 유례가 거의 없다. 냉전 구도와 양극화, 국가 간 편 가르기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서 글로벌화라는 대세에 편승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정서에 효과적으로 어필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이런 흐름이 잘 유지되고 있지만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K콘텐츠의 세대교체 기미다. 영화·방송·게임 등은 후퇴하고 음악·지식정보·만화 등이 새롭게 뜨고 있다. 한류를 견인한 원조 콘텐츠의 부진은 좀 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영화나 방송(드라마)에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강대국의 콘텐츠와 다르게 한류는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본질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태생적 배경이다. 요즘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에선 극단적 폭력과 노골적 성적 퇴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천편일률적이고 이질적 스토리텔링엔 금방 싫증나기 마련이다. 해외 영화제 등에서 수상은 자주 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여전히 중요함을 깨우쳐 준다.

고무적인 것은 K콘텐츠의 위력이 빠르게 상업적 이익으로 접목되고 있는 점이다. 화장품에서 시작한 한류 파급 효과가 식품·패션 등으로 옮겨 붙으면서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다. ‘K’만 붙이면 통한다고 할 정도로 세계 시장에서 이런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특히 ‘편의점 왕국’인 일본을 제치고 한국 편의점이 국내외에서 한국 상품 판매의 최일선 현장이 되고 있다. 갈수록 한국 상품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도 그나마 현지 소비자에게 동대문 패션이 위상을 높이는 중이다.

세계가 한류에 열광하고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면 한국 상품이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장점인 민첩성을 트렌드 추종이 아닌 창조로 연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꺼져 가는 성장의 흐름에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는 모티브가 바로 한류, ‘K웨이브’다. 최근 더 긍정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 위안이 된다. 글로벌 팬덤을 확보하고 있고 보편적 컬처 트렌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 K뷰티·식품·패션 등으로 한국의 트렌드가 글로벌 트렌드가 되는 경이적인 현상이 실시간으로 목격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정부가 이에 잿밥을 끼얹으려 하면 공든 탑이 삽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한류의 방향성은 정해졌다. 이제 고부가가치화에 역량을 집중할 때다. 정부는 토양을 깔아 주되 진로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의 덫을 깔지 말아야 한다. 패권주의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구촌의 반감을 삭이는 청량제가 바로 한류다. 그리고 국가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최고의 자존심이자 자긍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