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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또 한 사람의 국부
5000년 역사를 통틀어 수없는 시련을 겪어 왔지만 그래도 우리는 복 받은 민족이다. 상당한 기간 만주 지방을 비롯해 요동반도와 중국 본토의 일부를 지배한 동방의 강국이었고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게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현재까지 100년이 채 되지 않는 동안 우리에겐 국부로 불릴 만한 대통령이 두 분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한 나라의 위인을 말할 때 나라를 세운 사람·지킨 사람·키운 사람·빛낸 사람 등을 꼽는다. 그중 나라를 세운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6·25전쟁의 후유증으로 가난과 실의에 찌들어 주저앉은 나라를 일으켜 세운 박정희 대통령, 이 두 분을 우리의 국부라 불러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미국인 등 서구 사람들을 만나 한국인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면 “한국? 6·25전쟁?” 하거나 “한국에도 열차가 있느냐?”는 황당한 질문을 받기 일쑤였다. 외국인들의 그런 반응의 배경에는 우리를 은근히 무시하고 멸시하는 시각이 깔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만 하더라도 어린 시절 8·15광복 이후 우리나라에 진주해 있던 미군 병사들을 쫓아다니며 껌이나 초콜릿 같은 걸 얻어먹었으니 당시 우리의 처지가 결코 자랑스럽게 내보일 만한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라를 일으켜 세워 배고프지 않고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게 해 준 고마운 대통령, 그분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경상북도 구미의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 태어나 대구사범학교·만주 신경군관학교·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대위로 임관 후 1953년 장군이 된 박정희 대통령은 출생 이후 걸었던 길만 보아도 그것이 결코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의 전반부로 여겨지진 않는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 당시 제2군부사령관이 군사 쿠데타를 성공시키며 대한민국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어찌 보면 그건 그의 의지만으로 된 일이었다기보다 이미 예정된 우리 민족의 여정에 그가 주요 인물로 캐스팅되어 등장한 셈이라 봐야 할 것이다.
쿠데타 이후 2년 7개월간의 군정·윤보선 대통령 사임 후의 대통령권한대행 시절을 거쳐 그는 1963년 제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67년 대통령에 재선된 후엔 장기집권을 위해 1969년 3선 개헌을 통과시키고 이어서 유신정권인 제4공화국을 출범시켜 1979년 시해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까지 16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초인적 헌신과 노력으로 국민을 가난에서 구한 영웅이라는 시각과 권력에 눈먼 오만한 독재자라는 시각 등 여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지지하는가의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가 6·25전쟁의 폐허에서 허덕일 때 그는 우리 국민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정치를 하면서 우리가 최대 정적이었지만 국민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은 평가할 만하다.”
정적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에 관해 언급한 말이다. 실제로 그는 ‘하면 된다’를 국가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자포자기 상태의 가난한 국민과 함께 4차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을 이끌었다. 각종 산업을 육성하며 순식간에 국가 경제와 인프라를 재건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식견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중화학공업 육성 등을 강행하며 통치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약 18배까지 상승시켰다.
그러나 통치 기간을 늘려 가는 동안 박정희 대통령은 집회·시위를 허용하지 않으며 다른 의견을 내거나 통치 방식이나 정책에 반대하는 대상에 탄압을 가함으로써 독재자란 오명을 얻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10.26사태라 불리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은 장기집권이 16년째 이어지고 있던 1979년 10월26일 서울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의 만찬장에서 일어났다.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과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 행사를 마친 후 경호실장 차지철·비서실장 김계원·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함께 축하 연회를 가진 것이다. 그런데 연회 도중 김재규가 미리 준비했던 권총으로 라이벌 관계에 있던 차지철 경호실장을 쏜 후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권총을 발사했다.
차지철은 갖은 월권행위에 오만불손한 태도로 평소에 김재규 이외에도 반감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 인물이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이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범인은 당연히 차지철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 게 아니라 새우 싸움에 고래가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김재규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말을 남긴 것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단지 차지철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화풀이로 벌인 충동적 범행이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현재까지도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여러 사람이 얽혀 있는 일종의 쿠데타 시도였을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다.
당시 총에 맞은 박 대통령은 피를 쏟으면서도 “난 괜찮아”라는 말을 했다고 연회에 참석해 사건 현장에 있었던 여가수가 증언하기도 했다.
절대 권력으로 국가를 이끌던 통치자가 사라지자 혼란이 시작되었다. 북쪽에 이제나저제나 우리에게 틈이 생기기만을 노리고 있는 북한 괴뢰정권이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시해 사건을 수사해 마무리하고 시국을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바로 이런 상황에 나타나 혼란을 수습한 사람이 바로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수사를 총지휘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하나회
12.12사태의 배경에는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수사를 총괄 지휘한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계엄사령관이었던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 사이의 여러 어긋남과 이에 기인한 충돌이 있었다.
10.26사건의 수사를 맡으면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겐 자연스럽게 모든 정보·수사 기관을 지휘하고 통제할 권한이 주어졌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그는 군부의 새로운 실력자로 떠올랐다.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가 내란 목적 살인과 내란 미수라는 죄명으로 사형당하고 유일하게 정보기관의 기능을 하게 된 보안사의 수장인 전두환에게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전두환에겐 육사 동기인 11기생들로 이루어진 ‘하나회’라는 군 내부의 사조직까지 있어 당시 그의 세력에 맞설 상대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정승화 총장은 전두환의 힘을 빼기 위해 보안사령관 겸 합수부장 직에서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보직 이동시킬 것을 계획했다. 그와 동시에 하나회 소속의 군 간부들을 핵심 요직에서 밀어내려는 계획도 동시 진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이 당시 정보망을 장악하고 있던 전두환 측에 전해지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전두환과 하나회는 한 발 앞서 “정승화와 김재규가 박 대통령 시해를 사전에 공모했다는 사실이 추가 조사결과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정승화 총장을 강제연행하기로 한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에 이어 김재규 등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을 처형·처벌한 다음 하나회를 주축으로 한 ‘신(新)군부(이 명칭은 반대 세력들이 붙인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냥 이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다)’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승화 참모총장을 연행했다. 당시 공석이 된 대통령 자리에는 국무총리 최규하가 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는 능력도 권한도 없는 일종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정승화 총장 체포 이후 군을 장악한 하나회는 곧바로 언론 통제에 들어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민주적 헌정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제5공화국의 주축 세력이 되어 대한민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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