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저조한 밸류업 참여율 공기업이 높여 보자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기자수첩

윤승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9-05 00:02:40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해 상장사의 기업가치 제고를 유도하고 배당절차 개선이 분·반기 배당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한다.” 1월 중순 대통령 주재 민생 토론회 자료에서 정부가 처음 밸류업을 언급한 부분이다. 이때만 해도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기업들이 밸류업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저평가 상태인 주식시장 가치를 끌어올릴 줄 알았다.

현실은 달랐다. 기업들은 밸류업 공시에 소극적이었다. 한국거래소는 5월 말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상장사들의 밸류업 계획을 공시하도록 했으나 석 달이 지난 현재 자율 공시를 한 상장사는 9곳이다. 예고 공시를 한 상장사를 합쳐도 27곳에 그친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가 2711개인 점을 고려하면 0.99%만 밸류업 공시 또는 예고를 했다는 얘기다.

공시한 기업들조차 대부분 금융사다. 13곳으로 절반에 가깝다. 사실 금융주는 배당주로 꼽힐 정도로 그간 주주 친화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정작 밸류업이 필요한 대형 비금융사들의 참여는 저조하다. 10대 그룹 중 참여한 곳은 현대차·LG·포스코 소속 계열사 6개다.

무엇이 기업들의 밸류업 의지를 꺾고 있을까. 세제 혜택 불확실성을 꼽을 수 있다. 상장사 입장에선 밸류업에 참여할 유인이 크지 않다. 정부는 7월 말 밸류업 참여 기업을 대상으로 법인세 세액공제·배당소득세 분리과세·상속세 완화 등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으나 거대 야당의 반대로 입법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공시 내용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점도 의지를 꺾는다. 목표 설정·계획 수립 등 밸류업 계획을 이행하지 못해도 패널티를 부여하지 않으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투자자로부터 거세게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일례로 5월 말 상장사 중 처음으로 밸류업 공시를 낸 키움증권은 총주주수익률(TSR) 등 핵심 지표를 빠뜨렸다는 이유로 시장으로부터 지적받은 바 있다.

공기업의 밸류업 참여가 부족하다는 점도 상장사의 힘을 뺀다. 주식시장에는 한국전력 등 8곳의 공기업이 상장했는데 어느 곳도 밸류업 계획을 공시하지 않았다. 지역난방공사만 “4분기 중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밝히겠다”며 안내 공시를 한 게 전부다. 연초 대통령을 시작으로 금융위원장·금융감독원장 등 정부 부처에서 밸류업을 지속 강조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아쉽다.

지금까지 밸류업 성과는 실패에 가깝다. 정부는 7개월간 밸류업 등을 적극 추진했으나 코스피 지수는 3일 기준 올해 들어 0.4%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의 S&P500(18.4%)·일본의 닛케이225(15.6%)·대만의 자취안(23.2%) 등 주요국 지수를 크게 밑돌았다.

정부는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집중해야 한다. 야당과의 세법 개정안에 대한 논쟁은 오래갈 수 있으므로 거기에만 목맬 수 없다. 공기업부터 밸류업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상장 공기업이 밸류업 공시의 모범답안을 보여 준다면 민간 기업들도 자연스레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정책을 이행하는 공기업조차 밸류업 공시를 내지 않으면 밸류업 참여의 설득력이 사라질 것이다. 그간 주주환원에 미진했던 공기업들이 밸류업 동력을 불어넣길 기대한다.

윤승준 기자 sjyoo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