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나라가 좌·우로 갈려 대립하는 가운데 사상적으로 양분된 혼돈의 시기를 살고 있다. 대한민국 내 사상의 지도를 펼쳐 우익과 좌익의 실체를 규명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에 소모적 논쟁의 소지가 있는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대신 ‘대세(大勢·대한민국 세력)’와 ‘반대세(反大勢·반대한민국 세력)’의 개념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의 스펙트럼을 분석한다. 나아가 이로써 우리 앞에 놓인 나침반이 가리켜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데올로기인가 사상인가
대한민국 내의 다양한 이데올로기 문제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이데올로기를 어떤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치 이데올로기 분야 전문가인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사상(思想)’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이데올로기를 ‘이념(理念·이상적 생각)’이라는 용어로 많이 표현해 왔다. 이념 갈등·이념 투쟁·이념론 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들이다.
이념은 ‘한국의 교육 이념은 홍익인간’ 등의 표현에서처럼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이상·가치관·철학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우리의 이념이다”고 하면 타당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등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이데올로기 등을 이념이라고 쓰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사회주의는 북한과 좌익 세력이 추구하는 이상·철학이지 우리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이상이 아닌데, 마치 사회주의가 우리의 이상인 것처럼 표현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反)대한민국 이데올로기는 ‘이념’이라 표현하기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는 의미에서 ‘사상(思想)’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사상 문제
인터넷에 보면 우리 사회에서 거론되고 있는 사상 용어들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국 직후에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 심했다고 하던데 좌파는 무엇이며 우파는 무엇인지, 그들이 왜 싸웠는지 알려 주세요”
“신문에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이라는 말들이 나오는데 그게 무얼 기준으로 나누는 것인지, 성향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보수파는 항상 ‘노땅(늙은 사람)’에 기득권자들이고, 진보파는 젊고 참신하고 세상을 좋게 만들려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그러면 보수는 무조건 나쁘고 진보는 무조건 좋은 건가요. 항상 나쁘기만 한 것이 존재할 수 있나요?”
“좌파니 친북이니 진보니 하는 말들이 있는데 보통 신문 등 여러 매스컴에서는 이것들을 거의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네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이 세 가지는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진보는 좋지만 친북은 싫어요. 그런데 보통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은 친북하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아닌가요? 용어들을 정확히 알려 주세요” 등등.
여러 사람이 이처럼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한국 내에 사상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과 동시에 사상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나라의 좌·우익 간 사상 갈등은 1920년대 초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일제시대에도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좌익과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우익이 갈등과 협조 관계를 반복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남북이 분단되는 과정에서 좌·우익 간 대립이 극렬했다. 그리고 적화통일을 목표로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을 겪으면서 남북 간의 사상 대결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남북 대립에 뿌리를 둔 좌·우익 간 사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좌·우익 세력 간의 갈등은 사상전이기 때문에 용어에 대한 혼란이 클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런 용어들의 실체는 사전에 나오는 의미만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진보·보수, 좌파·우파, 친북·반북, 좌익·우익 등의 사상 갈등은 결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과 사회주의 체제 북한의 사상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수·진보’라는 명칭 파기해야
보수는 무엇이고 진보는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현재 한국의 정치·외교는 물론 사회·경제·교육·문화 정책 등을 이해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또한 선거 때마다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간 사상 갈등이 선거의 핵심 쟁점이자 판세를 가름하는 도구가 되어 왔다. 이는 각 정당과 사회단체가 대미·대북 정책 등 정부의 여러 정책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보수·진보 세력 간의 사상 논쟁은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하게 함으로써 국가의 에너지를 소모시켜 왔다.
그런데 보수·진보라는 사상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이들은 대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보수는 뭐고 진보는 뭘까… 그 통념적 개념
‘보수’는 현 상태에 대한 기본적인 만족을 토대로 급격한 변혁보다는 그 상태의 유지·발전에 힘쓰는 성향이다. 이때 보수가 지키려는 현 상태는 체제·국가일 수도 있고, 정권일 수도 있다.
‘진보’란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으로의 변화·변혁을 추구하는 성향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진보는 사전적 의미로는 ‘앞으로 나아가다’를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현실을 바꾸려는 변혁 사상으로, 현상에 대한 불만족을 기초로 한다. 진보가 변혁하려는 현 상태는 제도·정책일 수도 있고 정권이나 국가·체제일 수도 있다. 정권·국가·체제를 수용하면서도 헌법 등의 제도나 복지정책 등의 정책만을 변화시키려 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가나 체제까지도 변화시키려 할 수도 있다.
보수·진보 개념의 문제점
통념적 보수·진보의 개념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게 된 근본적 이유는 보수·진보의 개념 틀을 좌익이 만들었는데, 일반 국민이 그것을 잘 모르고 사용하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좌익·좌경 세력은 과거에는 1공화국 때 조봉암의 진보당처럼 ‘진보’라는 말을 쓰기도 했지만, 주로 자신들을 혁신 세력·변혁 세력·개혁 세력 등으로 바꿔 가며 불렀으나 동구 공산권 몰락 후인 1990년대 초부터 진보 세력으로 명칭을 바꾸어 널리 퍼뜨렸다. 이후 각 언론 등에서 진보라는 용어의 생성 배경도 모르는 채 좌익·좌경 세력이 사용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쓰면서 ‘진보’라는 말이 보편적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 보편적 용어로 자리잡고 있는 보수·진보의 개념 틀에는 어떤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을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진보’의 개념과 좌익이 생각하는 ‘진보’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은 진보의 개념을‘앞으로 나아가다’ ‘변화와 발전을 지향하다’는 식의 사전적 의미로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진보 세력은 참신하고 좋은 것이고, 진보 세력을 부정하는 보수는 퇴보 세력이고 수구 세력이라는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실제 좌익 세력이 의미하는 진보는 사전에서 규정한 의미와 전혀 다르다. 이들이 의미하는 진보는 마르크스 사상에 뿌리를 둔 것이다.
마르크스는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중세 봉건사회로, 중세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사회로 가는 것을 ‘진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북한이나 좌익 세력이 의미하는 진보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변혁하는 것을 말한다.
그들의 입장에선 사회주의 체제로 가는 것을 거부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고수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퇴보 세력이고 반동 세력인 것이다. 북한 정권 수립 과정이나 6·25전쟁 와중에 자본가·지주들을 반동분자라는 딱지를 붙여 처형한 것도 그들이 사회주의로의 진보를 거부하는 퇴보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좌익이 스스로 ‘진보’ 세력이라 하는 것은 일반 국민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고 보수 세력을 퇴보·반동으로 몰아가기 위한 것이다. 일반 국민은 좌익이 생각하는 진보의 개념을 모르는 채 사전적 의미로 해석함으로써 그들의 용어 혼란 전술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 경북대 법과대 행정학과·동 대학원 졸업
△ 국가정보원 27년 근무(1990∼2016)
△ 국가정보대학원 정신교육 담당 교수 17년(2000∼2016)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 (전)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책임연구위원
△ 자유수호포럼 공동대표
△ 주민자치법반대연대 대표
△ 한국자유총연맹 정책자문위원
△ 국민의힘 중앙연수원 교수
△ 주요 저서
‘분류한국사(성민사)’ ‘한국사(박영사)’ ‘반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인영사)’ ‘6·25동란과 트로이목마(인영사)’ ‘교양분류한국사(인영사)’ ‘박정희 대통령 100대 치적(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종북세력과 위기의 대한민국(대추나무)’ ‘주민자치기본법, 공산화의 길목(대추나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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