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황해문화’가 2024년 겨울호를 출간했다고 9일 알려왔다. 이번 겨울호의 주제는 다중재난 시대의 ‘인공지능혁명’이다.
2022년 12월 미국의 인공지능연구소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면서 본격화된 이른바 ‘인공지능혁명’이 전 세계에 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1956년 마빈 민스키 등에 의해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처음 사용된 이래 70년의 역사 동안 인공지능 연구는 몇 차례의 도약과 침체기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지만 챗GPT로 상징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공지능 연구에서 새로운 도약을 나타내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문화적·정치적·군사적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출시 2개월 만에 챗GPT 사용자가 1억 명을 돌파했다는 사실은 이제 인공지능 기술이 전문가의 영역을 넘어서 광범위한 대중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범용 기술이 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돌풍은 인공지능 개발과 관련이 있는 연구자들이 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제 응용과학 분야만이 아니라 순수과학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은 필수불가결한 지적·기술적 요소로 공인을 받은 셈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전 세계적으로 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중심적인 이유는 이전의 인공지능 기술과 달리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은 오랫동안 예견되었던 이른바 강한 인공지능, 더 나아가 초지능(superintelligence)의 출현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가까운 시기 어느 시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눈앞의 현실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챗GPT를 발표한 오픈AI를 비롯하여 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 이른바 ‘빅테크’라고 불리는 기업들이 앞다퉈 치열한 연구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생성형 인공지능은 좁은 범위의 전문가 영역을 넘어 산업·교육·문화·돌봄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서의 광범위한 인공지능 사용을 가능케 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또한 ‘소버린 AI’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인공지능은 국가의 정책 및 군사 분야에서도 파괴적인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에서 뒤처지는 나라는 경쟁국이나 적대국에게 종속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세계 각국은 앞다퉈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뛰어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황해문화’는 급격한 변화에 맞춰 인공지능의 혁신이 보여주는 기술의 실상과 거기에 감춰져 있는 이데올로기적 가상,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를 살피고 있다. 이번 특집을 준비하면서 황해문화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네 가지다.
챗GPT는 오래된 인공지능 연구의 산물
첫째, 챗GPT와 같은 것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오래된 인공지능 연구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일차적으로 이러한 역사가 단지 과학 및 공학 전문가들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기반을 둔 과학사 내지 과학기술사일 뿐만 아니라 경제사이기도 하고 정치·군사적인 역사이기도 한, 아주 복합적인 역사라는 점을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및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사이의 냉전이라는 정치·군사적 배경 없이는 인공지능의 역사를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지난 2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 및 기존 기술의 업데이트 가속화는 앞으로 기업의 존망을 좌우할 인공지능 기술을 선점하려는 빅테크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기술적인 논의에 시야를 한정하기보다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배경과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인공지능을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둘째, 풍요로운 삶에 관한 미래주의적 열광이나 인간과 기계(인공지능) 사이의 추상적 대립에서 생겨나는 막연한 공포심을 극복하고, 챗GPT와 같은 첨단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적합한 기술적 인간학을 정립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을 이해하는 도구주의적 관점을 벗어나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상호 구성적이고 공진화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 불필요한 공포심과 근거 없는 열광에서 벗어나 인공지능의 발전을 좀 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셋째, 챗GPT의 등장 이후 각 국가마다 인공지능 문제를 핵심적인 국가적 쟁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문제가 좁은 의미에서 전문가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 사회 전체 및 지정학적 쟁점이 되었으며, 패권주의적인 자본 축적과 정치적·군사적 경쟁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비판적인 안목에서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적 함의를 고찰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 개발을 둘러싼 거대 기업들의 경쟁은 디지털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울러 인공지능의 정치적·군사적 활용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에 대한 비판적 대응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질문은 ‘시민과학’의 발전을 위한 핵심적인 질문이 될 것이다.
넷째, 인공지능은 기술에 대한 도구적 관점의 한계를 나타내는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이미 2016년 알파고의 충격을 통해 기술이 단순히 인간의 통제에 종속되는 도구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많은 대중이 절감하게 되었고, 챗GPT의 등장은 인공지능의 철학적 함의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시킨다.
이것은 단지 △인간과 기계의 관계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요구할 뿐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온 윤리적 범주들이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통용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에게는 좀 더 근본적인 새로운 규범과 가치에 대한 인식이 요구되는 것인지 하는 질문들 역시 우리가 우회하기 어려운 중요한 철학적·윤리학적 질문들이다.
인공지능의 역사는 주종 아닌 공생의 역사
김지연 고려대학교 과학기술연구소 연구교수의 ‘인공지능의 역사, ‘말하는 기계’에 대하여’는 이 분야의 전문가답게 인공지능의 역사를 “말하는 기계”의 관점에서 간결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말할 수 있는 능력에서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발견하고자 했던 데카르트의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 말하는 기계를 만들고자 했던 튜링의 시도는 인공지능의 역사가 서양 근대철학의 기원과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 교수는 튜링부터 챗GPT에 이르는 인공지능의 역사를 주인과 도구의 관계로 이해하기보다는 일종의 공생 관계로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공지능의 문제를 단순한 기술이나 시장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이며 공공적인 사안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인간을 기술 및 지구의 주인이 아닌 공진화 속에서 생성되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선생의 주목할 만한 결론이다.
인공지능 정치경제학을 위하여
박승일 기술문화연구자의 ‘인공지능 정치경제학을 위하여’는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3차례의 산업혁명 주기가 점점 더 짧아져 왔으며 ‘4차 산업혁명’은 1980년대 이룩한 3차 산업혁명 이후 불과 30여 년 만에 도래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는 그만큼 자본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점점 더 짧은 주기로 점점 더 강한 충격이 요구된다는 점을 방증한다.
더 나아가 박 연구자는 현재의 ‘인공지능혁명’이 중국의 패권 도전에 맞선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의 일환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왜 그토록 많은 비용과 자원을 소모하면서 사활을 건 인공지능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자본주의·국가주의의 3각 동맹에 맞서 전 지구적 재난을 막기 위한 연대 및 정치경제학 비판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 선생의 결론이다.
인공지능에 관한 대안적 상상 발명해야
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의 ‘인공지능의 (탈)신비화와 문화적 상상’은 인공지능의 암시적 힘은 “자율성”과 “지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발휘되는데 이것은 인공지능이 근대 서구 사회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을 모방한 것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통해 인공지능의 자율성이 중시될수록 의존성과 돌봄은 폄하될 것이며, 이에 따라 사회적·인간학적 불평등이 정당화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인공지능이 과연 “지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논쟁적인 쟁점임에도 어느덧 그것은 인간의 지능을 측정하고 평가하기 위한 기준으로 간주되고 있다.
더욱이 연산 능력에 입각한 지능에 대한 정의는 인간의 정신과 신체의 밀접한 연관성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뿐더러 지능 능력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에 관한 대안적인 상상을 발명하는 것이 오늘날 시급한 과제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인공지능 윤리 필요
목광수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인공지능 시대의 나침반’은 인공지능의 윤리라는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선생은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혜택을 누리면서 동시에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인공지능 윤리”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공지능의 발전 단계별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적인 윤리가 필요할뿐더러 기존 윤리 이론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형식을 갖추는 통합적 윤리도 요청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선생은 약한 인공지능에서 강한 인공지능, 그리고 언젠가 도래할 초지능 인공지능에 이르는 각 단계별로 상이한 윤리적 대응이 필요하며 그것은 △1인칭 관점의 규범성 △2인칭 관점의 관계성 △3인칭 관점의 보편성을 통합적으로 갖추는 윤리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인공지능·생태파괴·전쟁이라는 3대 재앙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인공지능을 “재앙(catastrophe)”의 범주를 빌려서 사고한다. 그는 ‘정보기술적 재앙에 대하여’에서 정보기술혁명이 △생태학적 재앙 △전쟁의 일반화가 산출하는 재앙과 더불어 세 가지 재앙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재앙이라는 개념에 대해 파국론적이고 비관주의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근본적인 전환”이라는 어원적인 의미를 제시하면서 정보기술혁명이 산출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식민화와 인간학적 소외의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보기술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역사성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역사성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집합적 주체성 및 사회적 관계성이라는 것이 사고 가능한가 하는 것이 이 글을 꿰뚫고 있는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의료대란, 의료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의료대란과 아리셀 참사에 대한 비평에는 두 편의 글이 실렸다. 먼저 변혜진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겸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상임연구위원은 ‘의료대란은 의료로 해결할 수 있을까?’를 통해 지난 1년여 동안 우리나라에서 주요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의료대란 문제를 살피고 있다.
변 교수는 현재 의료대란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두 당사자인 정부와 의사협회 지도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다투기보다는 자신들의 이권을 관철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문제의 본질에 이르기 위해서는 현재 의료대란이 한국 의료 공급체계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문제의 중심에 빅5 병원을 중심으로 한 한국 의료자본의 수익성 추구에서 비롯된 영리적 의료 공급 체계가 놓여 있으며, 건강보험의 축소와 민간보험의 확장을 노리는 보험자본의 이해관계도 의료대란의 배경을 이루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전체 의사의 10%에 불과한 전공의들에 대한 과잉착취가 관행화되고 있고, 이는 전문의 자격증에 대한 보상을 돈과 특권으로 되돌려 받겠다는 왜곡된 집단 엘리트주의를 산출하고 있다.
이에 한국 의료체계에서 제일 시급한 과제인 공공의료 체계 구축은 주변화되고 의료 노동의 분절화와 지역의료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 선생의 진단이다.
변 교수는 결론에서 의료 문제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국민 전체의 평등한 건강권에 입각하여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의료대란을 해결하기 위한 궁극적인 전제조건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동포 유가족에서 싸우는 노동자로
두 번째 비평 ‘동포 유가족에서 싸우는 노동자로’에서 박동찬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유가족 전담 통역은 올해 발생한 가슴 아픈 아리셀 참사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그는 아리셀 참사가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화가 낳은 비극이었다고 짚으면서 회사 측의 뻔뻔한 태도와 더불어 여러 번 위험 신호를 파악했으면서도 그것을 방치한 정부 당국의 안이한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아리셀 참사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희생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동포 노동자와 다른 이주노동자 사이의 괴리 문제다.
중국동포 노동자는 이주노동자이면서도 한민족이라는 혈통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에 의해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별개의 집단 정체성을 부여받아 왔다.
이에 중국 동포 유가족은 아리셀 참사의 원인을 중국동포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 사회 및 노동 현장에서 이주노동자가 처해 있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과 길항할 수밖에 없는 관점이다.
공론장이 붕괴된 ‘글로벌 톱텐도시’ 인천
문화비평 특집은 지역 공론장 문제이다. 흔히 ‘한국 사회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대구 지역에서 비판적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 온 천용길 전 ‘뉴스민’ 기자는 ‘대구 공론장의 현주소’에서 대구경북행정통합이라는 의제가 어떻게 대구 지역의 비판적 공론장을 무력하게 만들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구·경북 지역에서 비판적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구는 보수의 심장이다’ 같은 단순화된 수사를 반복하지 말고, 지역 차원에서부터 문제 해결의 역량을 길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부산사회적경제포럼의 이동환 부산사회적경제포럼 포럼위원장은 ‘부산 지역사회의 위기와 새로운 전환’에서 지역-수도권의 불평등과 차별화로 인해 현재 부산 지역을 비롯한 한국의 지역들이 소멸 위험을 겪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지역의 산업구조가 저부가가치 제조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이에 젊은 세대의 지방 탈출 현상이 가속화되어 지방의 고령화 및 인구감소가 날로 심각해지는 데서 비롯하는 현상이다.
아울러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토건자본의 난개발이 진행되면서 지역의 생태적 위기도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선생의 진단이다. 이는 결국 회복·순환·돌봄의 가치에 입각해 어떻게 지역사회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낳는다.
이희환 황해문화 편집위원은 ‘공론장이 붕괴된 ‘글로벌 톱텐도시’ 인’에서 인구 300만의 대한민국 3대 도시로 꼽히는 인천광역시가 지역 시민들의 여론과는 상관없이 ‘글로벌 톱텐도시 인천’이라는 전형적인 성장 담론 아래 일방적인 시정을 펼치고 있는 점을 문제 삼는다.
인천시가 펼치고 있는 주요 정책 및 사업들이 지역 공론장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에도,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가 이를 제대로 비판하거나 견제하지 못하는 점이 현재 인천 지역 공론장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이 위원의 진단이다.
이 위원은 한편으로 새로운 헌정 체제를 구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시민들의 풀뿌리 실천들이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번 호 문학 코너에는 김탁환 선생의 신작소설 ‘발채의 마음’과 안상학·신미나·강우근 세 시인의 시편과 이번 문학 작품 창작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임재희의 소설 ‘한국사회의 이해’와 윤종환 시인의 시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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