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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과 일년초 식물인 메리골드의 원산지는 멕시코·과테말라·아르헨티나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수국’ 또는 ‘만수국’이라고도 부르는데 꽃 피는 기간이 길어서 붙은 이름이다. 메리골드는 한 번 심으면 쉽게 싹을 틔우고 웬만한 빛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마치 여러해살이풀처럼 길가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메리골드 잎은 벌레나 뱀을 쫓는 기피제로 활용된다. 또 메리골드 꽃에는 루테인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서 봉오리째 말린 꽃차를 마시면 눈 건강에 도움이 되며 항염증 효능 덕분에 피부병 약에도 쓰인다고 한다. 번식이 잘 되고 꽃도 예쁘며 개화 기간이 길어서 꽃꽂이 재료로 인기가 있고 염료나 기름을 만드는 등 쓸모도 많다.
메리골드는 ‘성모 마리아의 금색 꽃’
메리골드는 ‘성모 마리아’와 황금빛 꽃 색깔을 나타내는 ‘골드’가 이어진 이름이다. 메리골드는 거의 사철 꽃을 피우므로 1년에 20회 가까운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축일에 언제나 사용할 수 있기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유럽 사람들은 메리골드 꽃을 순수함과 경건함의 상징으로 여겨 종교의식에 많이 활용했다.
원산지 멕시코에서 메리골드는 ‘죽은 자의 날’을 기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꽃이다. ‘죽은 자의 날’은 3000년 전, 아스텍인들이 그 땅에 살던 때부터 계승된 멕시코 전통 축제이다. 이 의식은 매년 11월1일부터 이틀 동안 진행되는데 죽은 가족이나 친구의 영혼이 1년에 한 번, 이 기간에 돌아온다고 믿는 멕시코 사람들은 그 영혼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 축제를 준비한다.
멕시코 사람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가족이나 친구에게로 제대로 찾아오도록 메리골드 꽃의 독특한 향기가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길에 메리골드 꽃잎을 뿌리고 집안 곳곳을 꽃으로 장식한다. 메리골드 꽃과 함께 양초를 켜놓으면 돌아온 영혼이 산 사람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영혼과 산 사람을 연결해주는 메리골드 꽃
‘죽은 자의 날’ 멕시코 사람들은 해골 분장에 카트리나의 드레스 복장을 갖추고 거리에서 행진한다. 카트리나는 이날을 기리는 대표적 상징으로, 멕시코 예술가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가 그린 귀부인 복장의 해골 캐릭터이다. 이는 누구든 결국은 다 죽어서 해골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돌아온 영혼을 환영하기 위해 오프렌다라는 제단을 만드는데 이 제단에는 사진과 음식·망자가 생전에 쓰던 물건 등이 메리골드 꽃과 함께 놓인다. 또 이 축제 때 영혼이 돌아와 가족과 함께 식사한다고 믿기에 여러 가지 음식도 준비한다. 대표 음식은 설탕이 뿌려진 전통 빵 판 데 무에르토와 다양한 재료를 넣은 옥수수빵 타말레 그리고 뜨거운 초콜릿 등이다.
아이들에게는 해골 모양의 설탕 캔디를 나눠주는데 여기에는 죽음을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 축제 때, 개나 고양이·햄스터 같은 애완동물을 추모하기도 한다. 마치 할로윈데이와 합동 제사를 섞어놓은 듯한 행사이다.
멕시코에서 영혼과 같은 꽃 메리골드가 인도에 전해진 것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오늘날 메리골드는 인도의 종교 행사나 장례식·추도식·결혼식 등 다양한 의식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마치 조상 대대로 그래왔던 것처럼 메리골드는 인도 전통문화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인도에서 메리골드 꽃은 신성함과 순종 상징
인도에서 각종 행사나 의식이 열리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실에 꿴 메리골드 꽃이 다른 향기로운 꽃과 함께 장식된다. 더운 지역이 많은 인도에서, 게다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장에서 특이한 냄새를 풍기는 메리골드는 없어서는 안될 실용품이다. 일단 벌레나 뱀의 접근을 막는 데 유용하다. 우리가 장례식이나 제사 등 의식에서 반드시 향을 피우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 볼 수 있다.
인도에서 메리골드 꽃은 상징적 의미도 크다. 힌두교에서 메리골드의 노란색은 신성함을, 주황색은 순종을 상징한다. 이 신성함이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기에 종교 시설·교통 수단·건물 입구·결혼식장 등을 메리골드 꽃으로 꾸민다. 인도 사람들은 주황색 메리골드 꽃과 흰색 재스민 꽃을 섞어 만든 화환을 많이 선물하는데 이는 명예·존경·행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래전 아스텍 사람들은 메리골드를 ‘태양의 꽃’이라 불렀다. 꽃의 화사한 노란색이나 주황색이 빛나는 태양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리골드는 풍요와 생명력의 상징으로 태양신에게 바쳐졌다. 꽃 중에 가장 존귀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다른 꽃들이 거의 다 사라진 늦여름까지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리골드 꽃이 알고 보니 이렇게 크고도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의미를 두지 않으면 그저 그런 꽃에 지나지 않지만 의미를 찾고 그 이름을 불러주면 우리 삶에 소중한 존재로 다가온다. 물론 꽃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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