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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선 투표일 전날까지 좌우 세력이 격렬히 대립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의 불신임에 의한 조기 총선 전날인 22일(현지시간) 베를린 도심에서 이른바 극우 세력을 규탄하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베를린 전체가 독일대안당(AfD)을 증오한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에선 안티파(반파시스트 운동) 깃발 아래 모인 300여 명이 전 세계 안티파 구호 ‘우리 모두 반(反)파시스트’(시아모 투티 안티파시스티)를 외쳤다. 안티파는 우리나라 민주노총 시위에도 등장할 만큼 세계적 네트워크의 좌파 시위꾼들이다.
최근 뮌헨안보회의 때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기조에 근거해 유럽의 국경 문제와 표현의 자유 억압을 비판한 JD 밴스 부통령이나 트럼프 2기 선봉에 선 일론 머스크가 AfD 지지를 표명한 가운데 독일 유권자들의 선택에 전 세계 눈길이 쏠린다. 영국·프랑스도 자국중심주의 정당의 약진에 흔들리고 있으나 독일은 특히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0여 년 중국 시장에 거의 ‘올 인’ 하다시피 한 끝에 서방세계의 ‘대중 견제 강화’와 ‘중국과의 기술 격차 감소’ ‘전기차 등 신기술로의 전환 지연’ 등으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일은 급진적 친환경 정책 아래 원전마저 완전 폐기한 터라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마저 끊겨 이중 삼중의 곤경에 처했다. 결국 좌파 정당 주도로 구성된 올라프 숄츠의 연립정부가 작년 11월 붕괴함에 따라 조기 총선을 맞이한 것이다. 서민·중산층 삶이 무너져 좌파 우파 모두 ‘자국중심주의’를 내세우게 된 결과 최근 독일 정치권에선 좌우 경계가 희미해졌다. 이른바 ‘극우 AfD’ ‘극좌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SW)’이 반(反)이민 정책 등에선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 역시 지난달 AfD와 유사한 초강경 난민대책을 발표했다. 이어 AfD와 협력하지 않는다는 ‘방화벽’ 원칙을 깨고 AfD의 협조로 의회에서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방화벽’이란 독일 원내 정당들의 암묵적 원칙이자 공감대로 ‘극우와 불상종’한다는 입장이다. AfD는 근년 지방 정부에서 제1당·제2당이 됐음에도 연정 파트너에서 제외됐다. 현지 일간 타게스차이퉁은 올해 들어 극우 규탄시위에 참가한 시민이 191만7000명이라고 집계했다. 나치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줄임말이지만 이탈리아 파시스트와 함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우익 전체주의(파시즘)로 지목돼 왔기에 독일에선 우익에 대한 경계가 각별하다.
CDU와 자매정당 기독사회당(CSU)은 방화벽을 반드시 지키겠다며 유권자들을 안심시키고 있지만, 최근 설문조사에서 유권자의 54％가 이런 약속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집회 현장에서 ‘사회주의를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힌 유인물을 나눠주던 지글린데 보라스(77) 역시 “메르츠를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난민 문제가 과장됐다. 그들을 모두 쫓아내면 경제는 더 무너진다. AfD·CDU 모두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있다”며 “자본주의가 더 이상 수많은 위기와 문제를 해결 못한다는 게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안티파 집회에서 불과 300m 떨어진 슈프레강 건너에서도 수백 명이 극우 반대 시위를 벌였다. 곳곳에 시민들이 모인 이유는 베를린 네오나치(신나치)들이 열겠다고 신고한 집회에 맞불을 놓기 위해서다. 같은 시각 프리드리히슈트라세 기차역 광장에선 네오나치 200여 명이 행진을 시작했다. 집회를 조직한 활동가 페르하트 젠튀르크가 참가자들에게 “‘이스라엘 국가의 멸절’ 등 과격 구호 금지. 음주도 안 된다”며 집회법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마스크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네오나치 대부분 스무살 안팎으로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젠튀르크는 “테러조직 안티파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공격하고 집과 자동차를 불태운다”며 집회 현장의 기자들에게 “자신들은 좌익 극단주의의 피해자”라고 호소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좌파 의제를 하루아침에 깨부쉈다. 내일 선거에서 AfD가 25％, CDU가 30％를 얻어 우파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며 “녹색당 등 원내 진보정당이 좌익 극단주의를 부추긴다”고 목소리 높였다.
네오나치들은 독일 헤비메탈 밴드 람슈타인의 곡 ‘도이칠란트’를 틀어놓고 후렴구 ‘독일, 무엇보다 독일’을 따라 부르다 ‘동독! 동독!’을 외치며 행진했다. 튀링겐·작센 등 구 동독 지역에서 지지세가 강한 AfD였으나 최근엔 수도 베를린에도 청년층 지지자들이 부쩍 늘었다. 이날 이들 손엔 삼색 독일연방공화국 국기와 옛 독일제국 국기가 들려 있었다. 창문 밖으로 야유를 보내는 주민들을 향해 연신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어 대꾸했다.
이날 집회 내내 베를린 도심이 비상계엄 상황을 방불케 한 분위기였다. 경찰은 양측 충돌을 막기 위해 겹겹이 차벽과 바리케이드를 쳤으며 버스와 지하철 운행도 중단됐다. 안티파 시위대가 네오나치 행렬을 가로막고자 경찰 저지선을 우회해 몇 시간 동안 숨바꼭질을 벌였다. 이들은 또다른 저지선에 가로막히자 “경찰이 왜 나치들을 보호해 주느냐” 격렬히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은 물리력으로 돌파를 시도한 시위대를 향해 결국 최루액을 뿌려 여러 명을 체포했다. 이날 집회 규모 면에선 약 1000명의 안티파 쪽이 네오나치보다 5배 정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네오나치는 작년 10월 베를린에서 4년 만에 처음 집회를 연 이래 이번이 세 번째인데 매번 덩치를 늘려 왔다. 젠튀르크가 “계속 확대된 시위 규모를 보라. 우리 방향이 올바르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더이상 몰래 우파 정당에 투표하지 않고 거리에 나와 지지를 표명한”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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