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10-0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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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연휴에 떠나는 서울 시내 여행 [아는 풍경 낯선 여행]
3·1운동 발상지를 찾아…
탑골공원부터 중앙고까지
임요희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3-01 21:10:32
 
▲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학교는 독립선언서 초안이 전달되었던 장소다. 임유이 기자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다가올 3·1절의 의미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서울 종로구 도심은 항일 민족운동의 중심지로 길목마다 3·1운동과 관련한 시대적 사연이 풍성하게 깃들어 있다.
 
한파가 물러가고 남녘에서 꽃 소식이 올라오는 3·1절 연휴. 어린 자녀들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바른 역사관을 고취시키는 의미에서 시내 독립운동 관련 명소로 나들이를 나가보자.
 
국권침탈의 역사가 시작된 19세기
 
▲ 탑골공원은 장기간 폐쇄되었던 동문·서문을 개방한 데 이어 담장 허무는 작업에 들어갔다. 임유이 기자
 
먼저 우리는 어떻게 해서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어떤 부당한 일들을 겪었는지 아이들에게 일러줄 필요가 있다.
 
국권침탈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5년 일본 군함 ‘운요호’가 해안 탐측을 핑계로 강화도 앞바다에 불법 침투하자 조선은 포격을 날리며 방어에 나섰다. 그런데 일본은 이를 빌미로 조선에 손해배상을 요구하게 된다.
 
그 결과 강화도조약(1876년)이 체결되고 조선은 부산·원산·인천의 3개 항구를 개항한다. 문제는 개항장에서 일본인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속인주의에 입각해 조선은 일본인을 처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조선은 일본의 수출입 상품에 관세도 매길 수 없었다. 명백한 불평등조약이었다.
 
을사늑약(1905)으로 외교권을 강탈당하고 일본 통감부가 설치된 지 5년이 지난 1910년 조선은 경술국치를 맞이한다. 조선의 주권이 완전히 일본에 넘어간 상황. 이런 배경에서 1919년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불같이 일어나게 된다.
 
만세운동이 시작된 ‘탑골공원’
 
▲ 1919년 3월1일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탑골공원 내 팔각정. 이를 신호로 군중들은 만세 소리와 함께 거리로 몰려 나갔다. 임유이 기자
 
▲ 탑골공원 내에 전시된 3·1운동 기념 벽화. 임유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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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쉼터로 인기를 얻고 있는 탑골공원은 3·1독립선언문을 처음 공개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뜻깊은 장소다.
 
서울 최초의 근대 공원으로 알려진 탑골공원은 세조 13년, 원각사 사찰로 건립되었다. 이곳에는 한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2호)이 있어 일대가 탑골로 불렸다. 한때 일제의 농간으로 파고다공원으로 명칭이 바뀌기도 했지만 1992년 탑골공원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았다. ‘파고다’는 포르투갈어로 탑이라는 뜻이다.
 
3·1독립선언서는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로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했다. 손병희를 비롯한 민족 대표 33인은 세계만방에 독립을 선언하고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결의했다.
 
이에 3월1일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이를 신호로 군중들은 만세 소리와 함께 거리로 몰려 나갔다. 이것이 3·1만세운동의 시작이다.
 
최근 탑골공원이 변신을 단행했다. 장기간 폐쇄되었던 동문·서문을 작년에 개방한 데 이어 담장을 허무는 작업에 들어갔다. 곧 북문도 개방할 예정이라고 한다. 네 개의 문을 모두 개방하고 담장을 없애 모두에게 열린 공원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현재 탑골공원 내에는 3·1운동 기념탑·3·1운동 기념 벽화·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자리한다.
 
3·1운동의 진정한 시작 ‘보신각’ ‘보성사’
 
▲ 1919년 3월1일 군중은 종로 보신각 종루에 올라 타종으로 만방에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임유이 기자
 
▲ 1919년 2월27일 보성사 사장 이종일은 직원들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극비리에 2만1000매의 선언서를 인쇄했다. 조계사 뒤편 수송공원에 세워진 이종일 동상. 임유이 기자
 
종로1가 보신각은 새해가 밝았음을 알리는 타종행사가 진행되는 곳이다. 종로라는 이름도 종각에서 따왔을 만큼 이곳 역사의 지층은 두터워, 파고 파도 이야기가 나온다.
 
그날 탑골공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쳐 부른 군중은 YMCA(1907년 완공) 앞을 우르르 지나쳐 보신각에 도착한다. 그 사이 만세를 외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군중은 보신각 종루에 올라 타종으로 만방에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대규모 시위가 펼쳐지던 3월5일 학생단 주도로 독립연설회가 개최된 곳도, 4월23일 임시정부인 ‘한성정부’의 수립을 선포하는 국민대회가 열린 곳도 종각이다. 이에 2019년에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타종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우정국로 조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으로 1910년 들어선 각황사를 모태로 한다. 당시 각황사는 보성중학교 보성전문학교와 담장을 공유하고 있어 아이들이 날린 야구공이 경내로 날아들곤 했다.
 
보성학교 안에는 학교 교재를 출판하던 보성사가 있었다. 보성사는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이다. 1919년 2월27일 보성사 사장 이종일은 직원들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극비리에 2만1000매의 선언서를 인쇄했다.
 
독립선언서를 한창 찍어내던 중 형사 신승희가 들이닥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종일 사장은 손병희로부터 받은 인쇄비 5000원을 전부 내주며 눈감아달라고 간청했고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또 밤늦게 선언서를 수레로 옮기다가 일본경찰의 검문을 받았으나 족보라고 속였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태화관
 
▲ 태화관 자리에 세워진 태화빌딩. 1919년 3월1일 태화관 별유천지 6호실에서 독립선언서 낭독이 있었다. 임유이 기자
 
인사동 종로경찰서(구 SM면세점) 건너편에는 흰색의 태화빌딩이 있다.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곳이지만 알고 보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다.
 
태화빌딩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같은 명칭의 요릿집 태화관(泰和館)이 있었다. 그리고 태화관이 들어서기 전 이 집은 이완용의 별장이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해 이곳에서 식사를 대접하며 정사를 논하곤 했다.
 
1918년 이완용이 이사 나가자 궁중요리사 안순환이 이 집을 리모델링해 태화관이라는 요릿집을 열었다. 태화관은 광화문 동아일보 자리에 있던 명월관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별관으로 오픈한 곳이다.
 
원래 명월관은 궁중요리사 안순환이 일반인에게 궁중음식을 맛보이던 장소였다. 실직의 위기가 기회로 이어졌으니 때마침 관기제도가 철폐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기녀들이 이곳에 취직해 생계를 이어갔다. 명월관은 술과 음식, 춤과 노래가 있는 사교장으로 상류층 사이에 명성이 대단했다. 태화관이 그 명성을 이어받아 일본 고관대작은 물론 조선 정치인의 단골집으로 자리 잡았다.
 
1919년 3월1일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아내이자 명월관 기생 출신 주옥경의 인맥으로 태화관 별유천지 6호실에서 독립선언서 낭독이 있었다. 천도교·기독교·불교 세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소리 높여 만세삼창을 불렀다.
 
태화관은 그해 5월 화재 사고로 소실되었는데 그즈음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보성사도 불탔다. 세간에는 일제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현재 태화빌딩 건물 앞에는 ‘삼일독립선언유적지’ 표지석과 ‘3·1운동 100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독립선언서 초안 전달한 중앙고등학교
 
▲ 3·1운동 떼 중앙고등보통학교 숙직실에서 ‘2·8 독립선언서’ 초안이 전달됐다. 두 건물 사이에 작게 보이는 기와집이 숙직실이었던 삼일기념관이다. 임유이 기자
 
북촌으로 분류되는 계동 안쪽에는 고풍스러운 외관의 중앙고등학교가 자리한다. 1908년 개교했으니 100년 역사가 훌쩍 넘어가는 곳이다.
 
이곳에는 3·1운동 당시 중앙고등보통학교 숙직실이었던 삼일기념관이 있다. 1919년 1월 일본 유학생 송계백이 교사 현상윤과 교장 송진우를 만나 ‘2·8 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하며 독립운동 계획을 알린 곳이다.
 
3·1운동이 처음으로 논의된 장소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1973년 동아일보사는 이를 기념해 교내에 ‘3.1운동 책원비’를 세웠다.
 
한편 1926년 4월26일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붕어하자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격문 3만 매를 인쇄해 도처에 배부했다.
 
황제의 인산일인 6월10일 장례 행렬이 단성사 앞 연도를 통과할 때 중앙고보생 이선호의 선창으로 수십 명의 학생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군중에게는 격문과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에 일제가 진압에 나서 100여 명이 부상하고 200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1983년 6월10일 동아일보사와 중앙고등학교 교우회는 이때의 일을 기려 교내에 6·10만세운동 기념비를 세웠다. 이 외에도 서울 시내에는 △수송공원 △유심사 터 △승동교회 △손병희 집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 3·1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역사적 장소가 있다.
 
명소로 소문난 곳도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곳도 꽤 된다. 이번 3·1절에는 아이들과 표지석을 찾아 나서는 게임을 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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