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미국 안보우산 약화’ 우려 속에 ‘징병제 부활’을 고민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작년 기준 유럽 전역의 현역 군인 수는 약 147만 명이다. 상당한 규모이긴 하지만 각국에 분산돼 있고 통합사령부도 없어 효율성 한계가 꾸준히 지적됐다. 미국은 나토 비용 70%를 부담해 왔으며 필요할 때 미군 장성이 이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SACRE) 중심으로 작전을 수행한다. 지난 반세기 세계인의 부러움을 산 서유럽·북유럽의 복지가 이런 안보 무임승차 아래 가능했다.
유럽 싱크탱크 브뤼헐·킬세계경제연구소에서 지난달 나온 ‘미국 없이 유럽 방어하기’ 제목의 보고서는 “분열된 각국 군대 특성을 보완하려면 30만 명 이상 병력을 대폭 늘리거나 군사협력을 신속히 강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봤다. 단기간 내 가장 쉬운 병력 증원책이 징병이다. 다만 프랑스의 사회·군사학 전문가 베네딕트 셰롱이 짚었듯 선거로 정치인들 생사가 갈리는 나라에선 “영토 침공을 당한 상황이 아닌 한” 징병제 추진 내지 재개란 정치적 무리수다.
나토 32개국 중 징병제 도입 중인 나라는 9개국(그리스·튀르키예·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비회원국인 키프로스·스위스·오스트리아까지 넣어 유럽 12개국이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폐지한 상태다. 징병제 최대 걸림돌로 청년층의 군 기피 풍조가 꼽힌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유고브 설문에선 독일인 58%는 징병제 재도입에 찬성했지만 18∼29세의 찬성률이 3분의 1에 그쳤다. 이런 점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독일은 지난 3년 약 1000억 유로(약 158조 원)를 투입해 군비 증강에 나섰지만 전체 병력수 면에선 오히려 퇴보했다. 18만1000여 명인 현역병 수를 2031년까지 20만3000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였으나 작년엔 병력이 소폭 줄어든 것이다. 2023년 입대한 남녀 군인 1만8000여 명 중 4분의 1이 6개월 이내에 군을 떠나는 게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수가 작년 2998명으로 2021년(200명) 때보다 약 15배 급증한 점, ‘Z세대’의 특성의 영향 또한 언급된다.
Z세대에 대해 한 일선 지휘관은 “연약하고 쉽게 울며 ‘워라밸’을 말한다. 그들의 성장 환경을 이해하지만 전쟁을 전제한 군대생활과 맞을 리 있겠는가” 개탄했다. 유럽적 특성도 무시 못한다. 19세기 이래 20세기 중반까지 ‘국가를 위한 헌신’에 사회적 공감대가 강했으나 탈냉전 이래 국경이 낮아지면서 달라졌다. 유럽연합(EU)으로 대표된 통합정부 힘이 강해지면서 각국 중산층들은 점차 ‘누구를 위한 납세’인지 ‘누구를 위한 병역’인지 의문을 품게 됐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선임연구원인 소피아 베슈는 제정러시아 이래 소련(러시아 전신) 대비 체제를 유지한 핀란드와 비교할 때 독일 같은 나라의 경우 ‘정부와 시민 간의 공유된 신뢰’가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이들이 ‘유럽의 집단안보’ 이상을 위해 우크라이나 등에 배치된다면 ‘왜 남의 나라를 위해 총을 드나’ 불만을 가질 수 있다며“오늘날 독일 젊은이들이 목숨 바쳐 수호할 게 독일일지 유럽일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내에선 2011년 중단한 징병제 부활 가능성이 있지만 청년층 반대가 거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독일 총선에서 대(對)우크라 군사 지원에 반대한 독일대안당이 18∼24세 유권자 지지를 약 50%나 획득한 사실을 환기시켰다. 최근 단행본 ‘난 왜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으려 하는가’를 출간한 독일의 프리랜서 기자 올레 뉘멘(27)은 FT 인터뷰에서 “외국에 점령 당해 삶이 엉망진창 되는 건 싫지만 죽는 것보단 낫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2008년 징병제를 폐지한 폴란드가 2027년부터 연간 10만 명 민간인 군사훈련 계획 중임을 최근 발표했으며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참여 여부를 스스로 선택하게 하면서‘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할 방침을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전날 기자들과 만나 징병제 재도입의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시민을 (군무에) 동원할 방법을 몇주 내 발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에선 예비군 양성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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