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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서 요나스 가르 스퇴레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이 8일(현지 시간) 총선에서 간신히 승리했다. 국내외 주요 매체들의 관측을 벗어나지 않은 결과다. 노동당 중심의 범좌파 정당 5개가 과반(85석)을 조금 넘긴 87석으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노동당 자체는 2021년보다 소폭 상승한 약 28.2% 득표율과 5석 늘어난 53석 획득을 기록했다. 흔히 중도 좌파로 분류되는 노르웨이 노동당이지만 북구에선 가장 ‘왼쪽’에 위치한 정당으로 통한다.
총 169석·4년 임기에 비례대표제와 지역별 의석 배분 보정 형식으로 선출되는 노르웨이 의회(스토르팅) 선거에서 독일·프랑스처럼 자국중심주의 정당의 돌풍이 두드러졌다. 정권 교체를 실현하진 못했으나 21석에 불과하던 진보당(FrP)당은 24.7% 득표율로 27석을 늘린 48석을 얻었다. 범우파 진영이 총 82석을 차지해 노동당의 향후 의회 운영에 변수가 되리라는 점에 파이낸셜타임스(FT)·가디언·로이터 등이 일제히 주목했다.
현지 일간 아프텐포스텐에 따르면 진보당 대표 실비 리스타우그가 자당 역대 최고의 “대단한 성적”을 강조하며 “시작일 뿐이다. 집권을 겨냥한 강력 야당으로 성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름과 달리 노르웨이 진보당은 우파 세력이다. 수십년 왼쪽으로 기울어진 현실을 바로잡으며 나아간다는 뜻에서 당명에 ‘진보’가 들어가 있다. 중국에서 ‘개혁’이란 단어를 사실상 ‘시장경제화’와 동의어로 쓰는 것과 유사하다.
그간 보수 대표격으로 간주되던 ‘호이레(오른쪽)’당이 약세(14.4% 득표)를 보인 것은 지지층을 진보당에 잠식당한 결과로 풀이됐다. 친기업·시장주의를 내걸고 우파 정당을 자임하던 호이레였으나 정책과 정체성 면에서 선명성이 떨어졌다고 평가된다. 기존 복지 유지·개방·다양성 중시의 사회민주주의 경향 지속을 다짐한 노동당, 이것을 비판하며 감세·자국우선주의(반이민)를 내세운 진보당의 대결 구도 아래 호이레가 존재감을 잃었다.
2021년 총선 때 25년 만에 첫 단독 집권한 노동당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따른 에너지난 이후 민심 이탈을 막고자 전기세 보조금 등을 서둘러 도입했고 이번엔 안정성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했다. 진보당에선 반이민·감세·반엘리트 정서를 부추기며 생활비 상승·과세 불만 등을 파고들었다. 부유세 폐지, 범죄 강력 대응 등을 공약으로 내걸어 ‘더 과감한 보수 대안’을 호소한 것도 주효했다. 가디언에선 이런 현상을 아예 ‘마가피케이션’(MAGA화·트럼프주의화)으로 표현하며 노르웨이의 우파 포퓰리즘 부상을 보도했다.
그간 북구에서 반이민 포퓰리즘 정당이 집권 연정 파트너가 된 곳은 인구 대비 이민1·2세 비율이 약 26%에 이른 스웨덴, 비율 자체가 낮은 편(8~9%)임에도 지난 10년간 이민 급증세로 몸살을 앓은 핀란드뿐이었다. 여기에 조만간 노르웨이도 가세하게 될 조짐이 이번 총선 결과로 확인된 셈이다. 다만 이번엔 불안한 국제정세 대처를 위해 리더십 안정 필요성을 역설한 노동당 전략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점을 아프텐포스텐 등 현지 매체들이 짚었다.
역대 최초 틴에이저 국회의원의 탄생도 화제를 모았다. 환경운동 위주의 정치활동을 해 온 고교3년생 프뢰야 스숄 시우르세테르(19세)는 대도시 청년층 지지를 받아 당선돼 정계 세대 교체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졸업이 머지 않은데 의정활동을 위해 중퇴하기로 한 것 또한 눈길을 끌었다. 10년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을 역임한 현지 유명 정치가인 옌스 스톨텐베르그를 재무장관으로 발탁한 것 역시 노동당 지지율에 기여했다고 지적된다.
노르웨이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아니다. 이민 문제가 다른 EU 주요국들에 비해 덜한 편임에도 반이민 정당이 약진한 것은 그만큼 상황의 심각성을 반증한다. 이런 가운데 2011년 7월22일 악몽이 소환될 수 있다. 14년 전 이날 오후 3시반쯤 극단주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수도 오슬로 정부 청사 인근에 폭탄을 설치해 폭발시킨 다음(총 8명 사망, 수십 명 부상), 오후 우토야 섬으로 가 노동당 청년조직(AUF) 여름캠프 현장의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69명이 죽고 100여 명이 다쳤다. 이 사태는 국내외에 큰 충격을 줬으며 2018년 영화 ‘7월22일’로 제작돼 아직도 넷플릭스에 올라 있다.
이슬람·다문화주의를 반대한다는 범인이 자신의 테러 행위를 “필요한 정치 행동”이었다고 주장해 거듭 세상을 놀라게 했으나 노르웨이 사회는 오히려 민주주의와 개방성 강화를 천명했다. 당시 총리였던 스톨텐베르그가 대국민 연설을 통해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도주의로 대응할 것”을 밝혔으며 수십만 명 시민들이 자발적 추모 행렬에 참여한 바 있다. 브레이비크는 2012년 재판에서 정신이상자가 아닌 것으로 판단돼 노르웨이법 최고형(21년형)을 받아 복역 중이다(무기한 추가 연장 가능). 그러나 십수년 후 진보당의 대약진이 이상과 현실 간 괴리를 일깨운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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