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데일리가 창간 14주년을 기념하며 10년 전 창간 4주년 특집으로 선보였던 ‘새로 쓰는 부촌 지도’를 다시 펼친다. 전통적으로 한남동은 재벌가·기업인의 주택이 모여 있는 곳이다. 남산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에 폭 안겨 있으면서 대기업 사옥이 즐비한 강남·종로와 지척이고 이태원 메인 상권과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한남동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하다. 한남동 이태원로 부촌은 구체적으로 이태원역과 한강진역·탑맨션 사이에 삼각주 형태로 형성돼 있다. 이곳은 삼성가·신세계가·중앙일보가 등 범삼성가가 주축을 이루고 그밖에 LG가와 농심가 등 몇몇 재벌 총수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번 기획은 한남동의 매력과 투자 가치를 심층적으로 파헤침으로 부의 주체가 어떻게 지역의 물리적·사회적 지형을 바꾸는지를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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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의 서울 용산 이태원로(한남동) 자택이 갑자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집이 지난달 강나연 태화홀딩스 회장에게 매각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건희 자택은 꽤 오랫동안 가장 비싼 집 1등을 유지했다. 그래서 오히려 두 번째 비싼 집이 어디냐에 관심이 쏠렸는데 어차피 두 번째 비싼 집도 이 회장 소유의 다른 이태원 자택이었다.
‘이건희’가 비싼 집만 골라서 사는 건지 ‘이건희’가 살아서 비싼 집이 된 건지는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건 한남동 남산 기슭에 삼성가가 모여 사는 ‘삼성타운’이 형성돼 있고 바로 그곳이 국내 최고가의 주택가라는 점이다.
범삼성가가 주축을 이루는 이태원로
한남동 부촌은 이태원역과 한강진역·탑맨션 사이에 삼각주 형태로 형성돼 있다. 리움미술관 부근 외국대사관이 많이 모여 있는, 바로 그 동네다. 이곳은 삼성가·신세계가·중앙일보가 등 범삼성가가 주축을 이루고 그밖에 LG가와 농심가 등 몇몇 재벌 총수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만큼 재벌들의 선호도가 높다.
이 동네가 재벌 아니면 근접이 어려운 이유가 있다. 한남동 주택가는 1종 주거지역이라서 고층 건물이 아예 못 들어온다. 여기에 건폐율 30%라는 규정은 일반인의 진입 장벽을 한껏 높여 놓았다.
최소 200평은 돼야 1층에 60평이 나오고 2층에도 그만큼 면적이 나와 저택이라 부를 만한 집을 건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보통 이곳 재벌 집들은 300평을 넘어선다. 시세는 300평 기준 땅값만 최소 200~300억 원에 달한다. 건축비까지 합치면 300~400억 원을 훌쩍 넘어간다. 평균 평당가는 7000만 원에서 1억 원 정도다.
최고가라는 이건희 자택이 228억 원에 매각된 것은 신축을 염두에 두고 땅값만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대지 면적 325평에 연면적 150평(지상 2층, 지하 1층)이라는 규모가 그것을 말해 준다.
이태원 주택의 특징은 지하층을 십분 활용한다는 것이다. 지하는 용적율(150%)과 건폐율(30%) 제한이 없기 때문에 깊게는 4층까지 파 내려가기도 한다. 말이 지하지 실제론 지상이다. 대부분 경사로에 집을 짓기 때문이다.
밖에서 보면 이 동네는 그냥 성곽이다. 화강암 벽밖에 안 보인다. 신 남산성곽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 안에 재벌들이 모여 산다. 모여 살면서 왕국을 이룬다.
부촌으로 들어서는 길 이재용 자택
한강진역 부근 페이스갤러리를 끼고 올라가는 골목이 한남동 부촌 메인로드다. 페이스갤러리 뒤쪽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밝은색 주황색 벽돌 건물이 있다. 이 집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이다.
이재용 회장은 이건희 선대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가를 건실하게 이끌고 있으며 공익사업에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등 다양한 해외 인맥을 바탕으로 정치인을 뛰어넘는 외교 수완을 발휘하는 중이다.
홍라희·이부진·이서현이 한 집에 모여 사는 것에 비해 이재용 회장은 독립적인 공간을 선호한다. 리움미술관 인근 이재용 회장 자택은 대지 176평에 지하 3층, 지상 2층 규모다. 연면적은 366평에 이른다.
그가 2000년 12월부터 소유 중인 이 집의 공시지가는 80억 원가량 한다. 실거래가는 300억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용 자택을 지나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리움갤러리가 나타난다. 이 미술관 역시 삼성가 소유로 홍라희 관장이 운영하다가 지금은 둘째 딸 이서현에게 운영을 맡겼다.
리움미술관 앞쪽의 집들은 오히려 소박한 편이다. 차가 많이 다녀 재벌들이 선호하지 않은 탓이다. 리움갤러리를 지나쳐 오른쪽 언덕으로 들어서야 본격적인 재벌 타운이다.
정·재계 실세 홍석현 자택
재벌 타운 첫 주자는 회갈색 석재타일로 외장을 마감한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의 대저택이다. 우리나라 정·재계 실세로 알려진 홍 회장은 이건희의 처남이자 홍라희의 오빠이며 이재용의 외숙부로 범삼성가를 이룬다.
저택은 세 필지에 해당하는 464평의 대지를 딛고 서 있다. 건물은 본동과 한옥 두 채로 나뉘는데 연면적만 630평을 넘어선다. 펜트하우스 10개를 합쳐도 따라잡기 힘든 수준이다. 한남동 내에서도 고대광실 중의 고대광실이라 할 만하다.
밖에서 보는 저택의 위용도 성곽을 방불케 한다. 2011년 건축허가를 받은 이 주택은 2년여 공사 기간을 거쳐 2013년 입주가 이뤄졌다. 실거래가는 5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홍석현 옆집에 사는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은 2025년 이재용을 제치고 미국 경제지 포브스 기준 한국 억만장자 순위 1위에 랭크된 인물이다. 그는 한남동 터줏대감으로 통한다. 대지면적 212평의 자택 역시 부친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에게 1992년 증여받은 것이다. 실거래가는 3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슈퍼리치의 신세계 이룩한 신세계가
조 회장 옆집이 이명희 신세계 회장 자택이다. 외관부터가 압도적이다. 차고 문은 유럽의 성문을 연상시키고 담장은 산성에 육박한다. 세 필지를 터서 598평의 땅 위에 세운 집으로 공시지가가 300억 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실거래가를 700~800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옆집이 이 회장의 외동딸 정유경 신세계 사장 자택이다. 역시나 성곽 그 자체다. 정유경 지택은 어머니 이명희 집과 2층 통로로 연결된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다. 그 아래 그랜드 하얏트 서울 남서쪽 이태원로55가길 일대에 이명희·정용진 소유의 땅이 또 다섯 필지 존재한다.
이명희 회장 집 건너편에는 유경선 유진그룹 오너 소유의 집이 있고 그 윗집은 보안기업 삼성에스원 소유다. 그 위가 이병철 둘째 딸 이숙희 씨 집이다. 이숙희의 남편은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다. 그 윗집에는 부부의 딸 구지은 전 아워홈 부회장이 산다. 이렇듯 재벌은 음으로 양으로 연결되며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해 가는 중이다.
페이스갤러리에서 시작되는 메인로드 끝에는 성곽을 방불케 하는 LG 공동 소유의 저택(고 구본무 회장 자택)이 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범삼성가의 저택만 20여 채가 자리한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집 빼고 범삼성가 소유라고 해도 무방하다.
LG 대저택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최태원 SK 회장이 산다. 안쪽이 어떻게 생겼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집들 가운데 그나마 최 회장 자택은 2층 건물 창이 보인다. 이 집은 으리으리하기보다 모던하다. 지하 4층까지 파 내려간 최 회장 자택 지하 공간에는 미술품 수장고가 있다고 한다.
이 집은 2016년 최 회장이 고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소유의 택지를 매입하여 신축한 것이다. 최 회장 자택의 개별주택 공시가격은 157억 원으로 이재용 회장 자택의 2배에 이른다.
다시 골목 밖으로 나오면 LG 대저택 왼쪽으로 이서현 자택이 있다. 이 부지는 이재용 회장으로부터 사들인 것이라고 한다. 세 필지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웅장하기 그지없다. 그 옆으로 범삼성가 홍정도 JTBC 부회장의 자택이 있고 그 옆에는 허영인 SPC 회장 자택이 있다.
이 지역을 넘어서면 길이 좁아지면서 빌라촌에 들어서게 된다. 대부분의 필지가 100평 내외로 재벌가 저택으로선 부적격이다. 유아인·박나래 같은 연예인들이 50~60억에 땅을 사서 집 짓고 사는 중이다.
탑맨션에서 회나무로로 이어지는 삼성타운
마을 꼭대기에는 1971년 지어진 탑맨션이 있다. 남산경관지구에 걸려 있는 저층아파트로 재개발이 임박했다. 이곳이 개발되면 말 그대로 ‘탑 오브 탑’의 가치가 있다. 한남동에서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탑빌라 오른쪽이 낙후 지역으로 분류되는 빌라촌이라면 왼쪽 도로(회나무로44길)를 따라 다시 재벌 타운이 이어진다. 아르헨티나대사관 옆 첫 번째 집이 이건희 소유다. 140평으로 소박한 편이다. 건폐율의 적용을 받으면 1층 40평대의 집밖에 지을 수 없다. 이 회장 일가가 실제로 살았을 가능성이 적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이 집을 사들인 걸까.
삼성이 이 집을 구입한 시기가 2010년 3월이다. 당시 삼성가는 남산 기슭에 삼성타운 건설을 목표로 매물이 나오는 대로 사들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집은 탑맨션 바로 옆에 있어 전망이 으뜸인 데다 삼성타운의 꼭지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바둑판의 천원(天元)이랄까.
회나무로도 이태원로 못지않게 범삼성가가 장악하고 있다. 이건희 주택 옆으로 삼성생명 소유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고 그 맞은편으로 담장이 아름다운 한옥 건물 승지원이 자리 잡고 있다.
승지원은 마크 저커버그 빅테크기업 메타 CEO등 해외 귀빈이 내한하면 묵어간다는 곳이다. 경관 좋고 조용하고 더구나 한옥 체험까지 가능하니 귀빈에게는 5성급 호텔을 능가하는 숙소라고 할 수 있다.
승지원 옆으로는 농심가가 자리한다. 신동원 농심 회장 집과 신동열 농심 상무 집이 나란히 붙어 있다. 농심가는 독특하게 구옥을 유지하는 중이다. 그 밑으로는 세련된 외관의 허동섭 한일시멘트 회장 자택이 있다.
이태원의 찐 삼성타운
허동섭 자택을 기점으로 다시 넘사벽의 재벌 라인(이태원로 27다길)이 펼쳐진다. 가장 유명한 집은 다섯 채의 가옥이 한 뜨락에 모여 있는 삼성가 부지다. 이건희·홍라희·이부진·이서현의 실거주지로 그 옆이 이번에 강나연 태화홀딩스 회장에게 매각된 이건희 자택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잇단 주택 매각이 상속세 납부를 위한 방편으로 보고 있다.
다시 그 옆으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집이 있고 그 옆에 290평에 이르는 삼성가 소유 부지가 있다. 이곳은 현재 두 필지를 한 데 묶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삼성만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땅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다. 능력만 된다면 자신의 구역을 무한정 넓히고 싶어 한다. 인류가 벌인 전쟁도 알고 보면 다 땅따먹기 싸움이지 않은가.
전통적인 부자 동네 평창동·성북동은 자연 친화적이긴 하지만 교통이 불편하고 중심 상권과 동떨어져 있어 재벌가 자녀들로부터 외면받은 지가 좀 됐다.
반면 한남동은 남산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에 폭 안겨 있으면서 대기업 사옥이 모여 있는 강남·종로와 지척이고 이태원 메인 상권과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점점 선호도가 올라가는 중이다. 한남동의 투자 가치는 당분간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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