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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한때 수십 명의 노인이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하루를 보내던 이곳이 최근 깔끔하게 정비됐다. 종로구는 공원의 장기판을 철거하고 외국인 관광객과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역사문화공간’으로 재구성했다. 그 결과 예전보다 훨씬 다양한 연령대가 공원을 찾고 있다.
하지만 정돈된 풍경 뒤에는 사라진 노인들의 자리가 있다. 장기판 하나에 의지하던 이들의 일상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지금 지하철역 통로나 패스트푸드점 창가를 전전하고 있다. 햇볕이 들고 말이 통하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찾아서 떠났다.
문제는 장소만이 아니다. 파고다 공원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비공식적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고령층은 일상적으로 사회적 관계망이 끊기는 구조 속에 살고 있다. 노인 복지시설이나 복지관은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되고, 그 외의 시간은 이용을 제한하거나 거리상 접근이 어렵다. 동년배가 모일 수 있는 자리는 사실상 공공장소밖에 없다.
지자체들은 다양한 노인정책을 추진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 경로당’과 ‘디지털 문해 교육’이다. AI 스피커, 무인 건강 측정기, 화상 진료 시스템 등이 경로당에 도입되고 키오스크나 스마트폰 사용법 교육도 확대되고 있다. 이는 고령층의 정보 격차 해소에 일정 부분 기여한다.
그러나 기술 중심 정책의 한계도 명확하다. 고령층이 실제 필요로 하는 것은 ‘기술 습득’보다 ‘지속적인 관계’와 ‘자율적인 활동 공간’이다. 키오스크 교육을 수료해도 매장에서 젊은 층 사이에 끼어 주문하기는 여전히 어렵고 AI 말벗 로봇은 하루 몇 분의 대화를 채워줄 뿐이다.
정책은 공급자 중심이다. ‘노인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가 아니라 ‘노인은 어떤 환경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부족하다. 예산과 기술이 투입된 만큼 성과지표도 그런 항목들로만 채워진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의 관심사는 다르다. “앉아서 얘기 나눌 곳이 없다” “괜히 눈치 보인다” “여긴 우리가 있을 데가 아니다”는 반응이 많다.
노인 커뮤니티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건강·정보·정서 교류가 동시에 일어나는 사회적 공간이다. 병원보다 먼저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고 복지 정보도 입소문으로 공유된다. 이런 비공식 시스템은 정책이 포착하지 못하는 공백을 메우는 기능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은 이 구조를 존중하지 않는다.
공공공간에서 노인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조정하고 대안을 제공하는 방식이 먼저였어야 한다. 파고다공원의 장기판이 문제였다면 일정 시간대 제한이나 사회복지사 상주 등의 방식도 고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택된 방식은 철거와 단속이었다. 그 결과 문제는 해결됐지만 사람도 함께 사라졌다.
지자체의 노인정책이 기술과 교육에 집중된 지금 정작 빠져 있는 것은 ‘관계 중심의 복지 인프라’다. 단절된 일상에서 사람을 만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경로당의 디지털화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이 ‘혼자 앉아 있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기능하는지에 대한 점검이 먼저다.
노인은 집에만 머물기엔 시간이 길고 어디든 가기에 체력은 부족하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같은 곳에 같은 시간에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 그 단순한 루틴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이 곧 정책이 되어야 한다. 노인정책은 이제 기술보다 거리, 건물보다 사람, 시스템보다 자리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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