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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세운4구역 재개발 논란이 단순한 인허가 갈등을 넘어 한국 도시정책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대규모 충돌로 비화하고 있다. 서울시는 종묘·남산 녹지축 복원과 낙후 도심 재생을 명분으로 최고 145m 고층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 세계유산 지위가 흔들린다”며 제동을 걸었다. 여기에 정치권과 총리실까지 가세하며 논란은 지방선거 전초전 양상으로 번졌고, 가장 취약한 위치에 서 있는 주민들은 누적 금융비용 7250억 원의 부담을 안고 벼랑 끝으로 밀리고 있다.
19일 스카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세운4구역은 2004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뒤 20년 가까이 도심 한가운데 멈춰 선 채 ‘시간의 무게’를 견뎌 왔다. 2018년 문화재청이 계획 고도를 122m에서 71.9m로 낮추면서 사업성이 급감하자 사업은 사실상 다시 중단됐다.
주민은 세입자를 이미 내보내고 건물도 철거한 상태에서 월세 수입이 0원이 되었다. 매달 약 200억 원의 금융비용을 감내하고 있다. 주민대표회의는 누적 차입금이 이미 7250억 원을 넘어섰으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 와중에 서울시는 지난달 세운4구역 건물 높이 제한을 종로변 △55m→98.7m △청계천변 71.9m→141.9m로 완화했다. 세운상가로 끊긴 종묘–남산 녹지축을 회복하려면 ‘나머지 땅에 대한 고밀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오세훈 시장은 “판자촌으로 방치된 도심을 재생해야 한다”며 “고도 완화는 도시의 미래 경쟁력을 위한 필수 조치”라고 강조한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강경하다. 세운4구역은 종묘와 직선거리 약 180m. 종묘가 199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정부는 ‘인근 지역에 높은 건물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의 계획이 “종묘의 고요한 경관 질서를 파괴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세계유산 박탈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세계유산협약에 따른 세계유산 영향평가(HEP)가 선행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논쟁은 곧바로 정치권으로 확산했다. 종로 지역구인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계획을 철회하거나 나와 공개 토론하라”고 서울시에 압박을 가했다. 이어 범여권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종묘 경관 훼손이 우려된다”고 가세했다. 급기야 김민석 국무총리가 현장을 방문해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숨이 턱 막히는 경관이 된다”고 공개 비판하며 갈등은 중앙정치권 중심으로 옮겨 붙었다.
오 시장은 즉각 반격을 택했다. 서울시는 종묘 정전 상월대에서 바라본 시뮬레이션 3D 이미지를 긴급 공개하며 “남산타워가 그대로 보인다. 경관을 가린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동시에 “갈등을 조정해야 할 총리가 왜 갈등에 불을 붙이느냐”고 직격했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은 문화재 심의 대상이 아니며, 국가유산청이 아직 완충구역조차 고시하지 않아 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다”라는 법적 근거도 제시했다. 실제로 국가유산청이 서울시 고도 규제 조례 삭제가 위법이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서울시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논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고 오래된 ‘기억의 층’이 세운지구에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세운상가는 단순한 낡은 건물이 아니다. 1960~80년대 한국 전자산업의 발상지이자, 세계적으로 알려진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며, 한국 IT·전자 신화가 시작된 장소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운상가에서 2주면 탱크도 만든다”고 말하던 시절, 그 좁은 통로 안에서는 산업의 씨앗들이 튀고 번졌다.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가 ‘보존을 위한 엄정함’을 상징한다면, 세운상가는 한국 산업화와 기술혁신의 ‘기억을 품은 도시’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러한 복합 유산성이 뒤늦게 재조명되면서, “세운상가에 IT·AI 박물관을 만들고 역사·산업유산·도시재생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대안적 제안도 힘을 얻고 있다.
결국 세운4구역을 둘러싼 갈등은 네 가지 축이 서로를 밀어붙이며 생긴다. △서울시의 대도심 경쟁력 회복 전략 △국가유산청의 세계유산 보존 책무 △정치권의 지역 기반 사전 충돌 △20년간 멈춰 선 주민들의 생존 문제이다. 이 네 축이 어느 하나도 후퇴하지 않은 채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충돌하고 있다.
서울시는 “법적 절차는 완전하다”고 주장하며 인허가를 예정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위원회·유네스코와 협의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정치권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힌다. 주민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종묘·세운4구역 논쟁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기억과 미래·보존과 개발·전통과 경쟁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는 세계유산의 고요함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도시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고밀 개발을 외친다. 그러나 가장 절박한 사람들은 이미 철거된 건물 앞에서, 끊긴 생계를 붙들고 있는 주민들이다. 도시의 미래를 둘러싼 거대한 논쟁 속에서, 이들만이 유일하게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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