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썅년’은 누군가가 내게 모욕을 주기 위해 선택하는 단어죠. 흔히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하는 여자를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제가 먼저 저를 ‘썅년’이라고 자칭(自稱)해 버리면 남들이 제게 더 이상 뭐라고 할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저를 모욕할 권리를 뺏어버리는 거죠”
민서영(여·27) 작가는 웹툰 플랫폼 ‘저스툰’에 여성 일상 공감 웹툰 ‘썅년의 미학’을 연재 중인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을 해외에서 생활한 민 작가는 국내에 들어와 웹툰 전문 PD·작가 등으로 일했다. 지금은 전문기획사인 ‘재담미디어’ 전속 작가로 활동 중이다.
첫 작품은 ‘아저씨와 조카의 사정’…파격적 내용에 성인작가 색안경도
민 작가는 부모님의 직업 특성상 17년간 해외에서 생활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스위스 루체른 소재 IMI 호텔관광경영대에서 호텔 매니지먼트를 전공했다. 대학 인턴십의 일환으로 영국 한 호텔에서 바텐더로 일하기도 했다. 민 작가가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겪었던 일들 때문이다.
“해외 생활 중에도 방학 때가 되면 한국에 잠깐씩 들어와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어요. 그 때 친구들과 싸이월드(미니홈피)를 통해 내 또래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여자로서 겪는 불편한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됐죠. 저 역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성(性)과 관련한 불편한 일들을 겪게 됐어요. 당시 경험이 한국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죠”
그는 원고의 검토·수정·플랫폼게재 등을 도맡는 웹툰 전문PD로 일하다 직접 작가로 데뷔하게 됐다. 그가 처음 선보인 소설은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의 성인 웹소설 ‘아저씨와 조카의 사정’이었다. 민 작가는 당시 성인물 작가라는 이유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당시 성인 웹소설 작가라고 저를 소개할 때면 사람들 눈빛부터 바뀌었어요. 심지어 작품 소재를 준다면서 자신의 성경험을 줄줄이 말하거나 제게 애인과의 잠자리에 관해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단지 직업일 뿐인데 저를 ‘쉽게 잠자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죠”
민 작가는 자신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사람들을 풍자하는 내용의 1~2컷 만화 ‘직업으로서의 야설가’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하기도 했다. 게재 후 직장인 여성들로부터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댓글이 달리면서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민 작가는 보다 많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마음에 웹툰 ‘썅년의 미학’을 그리기 시작했다. 쌍년의 미학을 SNS 게재하던 중에 첫 직장인 재담미디어와 전속 계약을 맺고 지난해 9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썅년의 미학’은 4컷 안에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여성 비하’ 혹은 ‘여성 혐오’ 등의 현상을 그리고 있다. △‘여자 나이 스물여섯이면 똥값’이라고 말하는 직장상사 △성관계 시 ‘피임을 하지말자’고 요구하는 남자친구 △산부인과를 찾아 온 10대 여학생을 타박하는 중년여성 등이 등장한다.
만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굴하지 않고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등의 대사로 맞받아친다. 자신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 맞서는 ‘썅년’들이라는 게 민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쌍년의 미학을 연재하면서 자신의 작품이 비슷한 경험을 겪은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고 가해자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여성만 희생하는 사회가 평화롭다는 인식에 반기…“혐오에 저항하며 더 나댈 것”
“만화의 일부를 제 개인 SNS에 올리기도 해요. 남자친구의 행동을 꼬집는 내용의 만화였는데, 한 독자는 본인의 남자친구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하더라고요. 한 고등학생 독자에게는 제 만화를 통해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됐다는 내용이 담긴 팬레터를 받기도 했죠”
“제 만화를 보고 용기를 얻어가는 분들도 있어요. 만화와 똑같은 상황에서 ‘저렇게 말하지 못해 속상했는데 다음에는 꼭 이렇게 말해봐야겠다’고 다짐하는 분들도 있죠. 평소에는 말이 잘 통하지만 특정 여성 문제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던 제 지인도 제 만화를 보고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며 연락해오기도 했어요”
민 작가는 ‘썅년’을 불편한 상황을 계속해서 만드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그의 메시지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왜 자꾸 평화를 깨뜨리고 싸움을 조장하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에 민 작가는 그들이 말하는 ‘평화’에 의구심을 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썅년’은 잔잔한 수면위로 돌을 던져서 파동을 일으키는 존재예요. 잔잔한 평화는 보이지 않는 어떤 큰 힘에 의해서 유지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계속 파동을 일으켜서 그 인위적인 평화를 깨트려야죠. 직접 불편하다고 말해야죠.”
민 작가의 숙제는 자신이 경험한 것 이상을 그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 작가는 살쪄본 적이 없어 살찐 여성이 당하는 일을 그릴 수 없고, 성 소수자가 아니기 때문에 성 소수자 여성의 문제를 함부로 다룰 수 없다. 그는 계속해서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공부해서 연재 후반에 다룰 계획이다.
민 작가는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는 여성들에게 좀 더 나빠져도 된다고 조언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작가 본인은 정작 자신이 당해 온 민폐에 대해서는 관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데이트폭력·성추행 등의 사건이 생기면 으레 피해자인 여성을 더 추궁하는 사회에 순응하도록 여성들이 길러졌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다른 것 없고 그냥 잘 나가는 게 목표예요. 그러기 위해 저는 앞으로 더 ‘나댈’ 생각이죠. 우리 사회에서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여성으로서 내가 잘 돼야 다음 세대도 불편함에 대해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길 바라요”
[이슬비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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