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2개의 범종을 꼽자면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성덕대왕신종(이하·에밀레종)과 강원 평창군에 위치한 상원사 동종(銅鐘)을 들 수 있죠. 두 범종을 만드는 방식이 달라요. 지금까지 동종은 주로 에밀레종을 기본으로 만들었죠. 하지만 최근 들어 상원사 동종과 같은 제작기법으로 만드는 새로운 유행이 불고 있죠”
충북 진천군에 위치한 ‘성종사’에서 국가주요무형문화재(제112호) 원광식(77·남) 주철장을 만났다. 원 주철장은 여든에 가까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범종 전문 제작업체인 성종사의 대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잃은 오른쪽 눈, 가족 생계 책임지겠다는 일념으로 범종 제작 외길
성종사는 원 주철장의 8촌 형이 사장으로 있던 주철공장이었다. 원 주철장은 1957년, 17살의 나이에 처음 성종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18살이 되기까지 2년여간 일을 배웠다. 일찌감치 일을 시작했던 탓에 금방 흥미를 잃었다. 결국 그는 일하기 싫다는 이유로 19살에 도망치듯 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군 생활 도중 생각이 바뀌었다. 원 주철장은 군대 복무 중 자신의 길이 성종사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21살이 되던 1962년 원 주철장은 군 제대 후 다시 성종사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약 몇 년후 원 주철장은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작업도중 불의의 사고로 오른쪽 눈을 잃게 된 것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친인척인 스승은 눈을 다친 그가 쓸모가 없다며 병원비를 쥐어준 채 내쳤다. 당시는 일하다가 다쳐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 대한 처우가 열악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꼽으라면 제가 29살이 되던 1969년 4월 1일을 꼽을 수 있어요. 만우절이던 그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작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작업장에 있었어요. 그런데 오전 10시 경 갑자기 쇳물을 연결하는 파이프가 폭발했어요. 거기서 나온 쇳물이 제 오른쪽 눈으로 튀었죠”
“눈을 다친 시점이 하필이면 제 부인이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중이었어요. 가족들을 먹여 살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죠. 지금 생각해도 그 시기보다 더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우연히 ‘수덕사’(절)에서 범종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게 3년간 수덕사에서 범종을 만들었죠.”
산 속 사찰에 숨어 범종을 만들던 원 주철장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그를 잔인하게 내쫓았던 스승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수덕사 종을 완성한 시점인 1973년의 일이었다. 그는 수덕사에서 만든 범종을 판돈으로 스승이 남기고 간 성종사를 인수했다.
“성덕사를 제가 인수한 이후 일이 잘풀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만든 수덕사 범종의 소리가 좋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죠. 너무 잘 만들어서 한번 치면 2분30초 동안 울리고 종소리가 30리 밖으로 퍼진다는 이야기였죠. 전국 사찰에서 범종 제작을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해써요”
원 주철장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는 벌어들인 더 나은 범종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돈을 기술 개발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과 능력 외에 다른 전문가들의 조언도 구하고 싶다는 생각에 1976년 세계 최초의 범종 연구단체인 ‘한국범종연구회’를 설립했다.
일제가 뺏은 우리나라 전통 법종 제작기법 복원, 관련 분야 최고권위 ‘장인’ 타이틀 획득
‘한국범종연구회’ 설립 후 그는 사라져 버린 우리나라 전통의 범종 제작기법을 하나 둘 복원해 나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전통 제작기법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실됐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나라 전통 제작기법을 없애도 자신들의 회전형법만을 전파했다. 회전형법은 종의 주조 틀을 돌려가면서 만드는 제작기법이. 지금도 일본에서는 이 방식으로 범종을 제작한다. .
“제가 본격적으로 우리 전통의 종 제작 기술 복원을 시도한 때는 1980년대 후반부터에요. 종틀을 만드는 모래를 찾는 것이 특히 어려웠어요. 7년의 시간이 지난 1994년이 돼서야 우리 조상들의 기술을 복원 할 수 있었어요”
그의 노력 덕분에 현재 우리나라 전통 제조기법을 통해 복원된 종은 20여개가 넘는다. 낙산사 동종, 내소사종, 해인사 대적광전 종 등이 대표적인 그의 작품이다. 그는 전통기술의 복원을 통해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지난 2001년 그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돼 ‘주철장(鑄鐵匠)’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2005년에는 문화예술분야 ‘신지식인’으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2007년에는 한국투자증권 CF에 출연하기도 했다. CF에서 원 주철장은 “혼을 담아야 천 년의 소리가 나오는 거지. 잔재주 부리면 끝이야, 끝”이라는 대사로 대중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처음에는 광고 촬영을 쉽게 생각하고 수락했어요. 그동안 찍어놓은 영상자료를 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영상자료들은 화질이 안 좋아서 사용할 수 없다더군요. 결국 15초짜리 광고를 찍기 위해 3일 내내 50여명의 스태프들과 CF를 촬영해야 했죠”
원 주철장은 최근 들어 범종 제작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은 대부분 우리나라 범종의 최고봉이라고 여겨지는 국보 29호인 에밀레종을 본 따서 범종을 만들었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범종에 식상함을 느끼는 이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최근에는 상원사 동종을 본 따서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시대의 유행이 바뀌었어요. 지난 수십년 동안 에밀레종을 따라서 만들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모양의 종을 원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 때문에 요즘에는 국보 36호인 상원사 동종을 본 따서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상원사 동종은 에밀레종보다 크기는 작지만 만들어진지 더 오래됐고 종소리가 더 아름답죠”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로 ‘한 우물만 꿋꿋하게 판 장인정신’을 꼽았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한 덕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원 주철장은 오랜 기간 전통 제조기법의 범종 제작 외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신념만큼은 지켜낸다고 강조했다. 바로 돈을 바라지 않고 일을 한다는 점이다. 돈을 목적으로 일을 하면 일과 돈 모두 놓친다는 것이다. 그는 “장인은 배부르면 일을 하지 않는다”는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경엽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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