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면서 모두 세 번의 위기를 겪었어요. 마지막 위기를 겪고 난 후에는 주머니에 전 재산이 450원 뿐인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죠.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위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재기할 수 있었죠. 덕분에 대학 시절부터 이어져 온 문화부장관의 목표에 다시 도전 할 수 있게 됐어요”
남상효(43) 코이노니아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대학교 1학년인 20살이 되던 해부터 지금까지 줄곧 우리나라 문화부장관이 되겠다는 목표를 놓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세 번의 실패를 겪고 어렵게 재기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목표를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어머니투병, 사업실패, 동업자배신 등 세 번의 시련 겪으며 결국 노숙자 신세 전락
그의 위기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던 군대 시절 처음으로 찾아왔다.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면서 홀로 병간호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하반신 마비까지 동시에 찾아온 어머니를 꼬박 1년 반 동안 홀로 병간호했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남 대표는 공익근무요원 생활을 끝내고 학교로 복학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그나마 평탄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평탄한 생활을 오래가지 못했다. 두 번째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두 번째 위기는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던 시기에 찾아왔어요. IMF 경제위기의 여파가 아직 극복이 안됐던 때라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던 시기였죠. 저 역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방황하던 시기를 보냈죠. 결국 창업을 결심했어요.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죠. 보험·킥보드 사업·가수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어요”
실패의 나날을 보내던 중 그는 2006년 현재의 코이노니아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초창기 코이노니아 엔터테인먼트에서 추진하던 사업은 의료관광이었다. 지금은 보편화된 개념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사업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세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몽골 출신의 동업자와 사업을 추진하던 지난 2009년 어느 날 몽골인 동업자가 회사 자금을 들고 야반도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제가 의료관광 사업을 위해 고객들로부터 받아 놓은 모든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어요. 결국 제 전 재산을 털어서 고객들에게 보상 해드리는 수밖에 없었죠. 전세보증금까지 빼고 가구집기들도 모두 처분했어요. 그러고 나니 제 주머니에 딱 450원이 남아있더라고요”
세 번째 시련을 겪은 후 그는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한 성신여대입구 전철역이 그의 생활근거지였다. 씻는 것은 지하철 화장실에서 해결했고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비만 피할 수 있는 재건축 예정지의 한 폐가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왔다.
“노숙자 생활을 청산하게 된 데는 세 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막노동을 하던 조선족 친구가 저에게 밥을 사주는 등 여러모로 챙겨줬죠. 그 친구에게 감동을 받아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알고 지내던 동네 누나도 제게 도움을 준 사람 중 한 명이죠. 월 10만원 짜리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어서 저에게 줬을 때 다시 재기해야 한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헬스클럽 회원권은 운동이 아닌 제대로 씻고 다니라는 의미로 준 선물이었죠. 마지막으로 도움 준 사람은 데이케어 센터 일자리를 소개해줘 노숙자 생활을 청산할 수 있도록 해 준 평소 친하던 수녀님이었어요”
‘자신의 사업을 하라’ 이어령 박사 충고에 재기…“문화산업 주도할 것”
그는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3가지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바로 걷고 읽고 쓰는 것이었다. 이 3가지를 하루에도 수 차례 곱씹으면서 용기를 얻고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2011년 청담동에 위치한 한 고급 한정식 집에서 약 6개월 동안 주차대행 서비스 일을 하면서도 그는 ‘걷고 읽고 쓰라’는 자신만의 원칙을 지켜갔다. 미래의 사업구상까지 할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됐다. 남 대표의 인생에 드디어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2011년 저는 ‘시공미디어’라는 출판사의 영업부 과장으로 취직 할 수 있었어요. 저의 성실함을 눈여겨 봐 주던 한 고객이 저를 채용해 줬죠. 그때부터 갑자기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는 시공미디어에 일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냈던 이어령 전 장관이었다. 당시 그가 일하던 출판사에서 이 전 장관의 아이디어가 깃든 동영상 콘텐츠 제작 사업을 진행한 게 계기가 됐다. 남 대표는 그 사업의 담당자를 맡았다.
“저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문화부장관이 되겠다는 꿈을 접어 본 적이 없어요. 우울증에 시달리던 때도 그랬죠. 이런 제가 초대 문화부장관을 만나서 함께 일하게 되니 저로서는 너무나도 큰 영광이었죠”
이 전 장관은 남 대표에게 크게 되고 싶다면 ‘자신만의 사업을 하라’는 조언을 해줬다. 그의 조언을 깊이 새겨들은 남 대표는 2013년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문화부장관을 목표로 삶의 계획표를 짰어요. 지금은 더 크게 나가서 국무총리까지 꿈을 키웠죠. 저는 제 스스로가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국무총리를 제 꿈의 최대치로 설정 했어요”
인터뷰 말미에 그는 ‘나만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고 강조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포기 하고 싶었을 때도 ‘조금만 더 버티자’는 생각으로 버텼고 결국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세 번의 시련 끝에 기회를 잡은 그는 자신이 설정할 수 있는 최대 목표치인 국무총리를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경엽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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