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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최광혁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꽃제비에서 메달리스트까지 반전의 주인공이죠”
기차 추락사고로 다리 절단…탈북 후 불굴의 의지로 태극마크 달아
김민아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3-27 00:02:13
▲ 함경북도 화성 출신인 최광혁(사진)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는 지난 2001년 탈북했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얼마 전 열린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 역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아이스하키의 매력은 ‘파워풀한 스포츠’라는 거죠. 다른 스포츠는 몸싸움이 다소 격렬해지면 경고 또는 퇴장되는 반면, 하키는 적어도 몸싸움에 있어서는 관대한 편이에요. 빙판 위에 놓인 지름 3인치, 두께 1인치의 작은 퍽 하나에 모든 선수들이 집중하고 달려드는 마력있는 스포츠가 바로 아이스하키입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우리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광혁(32·남) 선수는 이번 메달 획득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최 선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지난 2001년 탈북한 그는 먹을 것을 찾아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도는 북한의 어린아이들을 지칭하는 이른바 ‘꽃제비’ 출신이다.
 
함경북도 촌구석 기차에서 아이스크림 팔던 꽃제비…기차에서 떨어져 장애 얻어
 
최 선수는 1987년 함경북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뒤 줄곧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는 최 선수는 부유하진 않았지만 생계를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평탄한 삶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시점에 맞춰 북한이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가 겹치면서 생계를 위해 밭에서 서리를 하며 끼니를 연명해야 했을 정도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10살 때부터 친구들을 통해 기차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일을 접하게 됐어요. 아이스크림을 팔고 남은 돈으로 생활했는데 벌이가 나름 괜찮았죠. 기차역 안에서는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사람만 판매할 수 있어서 저 같은 아이들은 기차를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팔아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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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 선수 외에도 많은 아이들이 기차역으로 몰려 장사를 하니 사고가 빈번했다. 그는 친한 누나의 사고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사고를 목격한 최 선수는 어린 마음에 충격에 휩싸였다.
 
“달리는 기차 지붕 위에 올라탔을 때였어요. 기차 위로 전기선이 지나가는데 누나가 무심결에 일어섰죠. 전기선에 부딪혀서 떨어졌고 제가 한 손으로 환풍구를 잡고 누나의 손을 잡았죠. 하지만 저는 너무 어려 힘이 부족해 결국 누나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 최광혁(사진) 선수는 어린 시절 기차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기차에서 떨어져 마취도 없이 한 쪽 발을 잘라내는 수술을 겪었다. 이후 2001년 우연한 기회에 남한으로 건너왔다. ⓒ스카이데일리
  
불행한 사고는 또 다시 찾아왔다. 최 선수는 아이스크림을 팔고 나서 급하게 기차에 오르다 사람들의 힘에 밀려 밖으로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다.
 
“그 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눈을 떠보니 다쳐있었죠. 처음에는 ‘큰 일 났다’는 생각 뿐 이었죠. 몸이 다치면 생계를 이어나갈 일이 막막하니까요. 수술도 남한처럼 순탄하게 진행되진 않았어요. 제대로 된 시설도 없고 마취조차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죠. 결국 마취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목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죠”
 
장애를 얻어 아이스크림을 파는 일조차 할 수 없던 그는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6일 내내 쫄쫄 굶은 적도 있었다. 어쩌다 얻은 귀한 식량을 내내 품에 품고 다니며 조금씩 아껴먹다 체온으로 인해 상해버린 밥을 먹은 적도 있었다. 추위를 피하려 손에 잡히는 것을 모두 태우다보니 그을음이 온 몸을 뒤덮었지만 씻는 일조차 사치에 가까웠다.
 
장애를 얻고 2년 뒤 최 선수는 탈북을 결심했다. 지독한 절망이 원인이 됐다. 작은아버지가 길거리를 떠돌던 그에게 앞서 탈북한 아버지를 만나러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탈북을 미끼로 장기를 내다 판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떠돌 때였으나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남한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힘들었어요. 소문을 모른 것은 아니었지만 자포자기 심정이었어요. ‘죽으면 죽고 말면 만다’는 생각으로 나왔어요. 탈북을 전문적으로 돕는 사람을 통해 강변의 군인들에게 큰돈을 주고 죽기 살기로 중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진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어요”
 
그는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2주 동안 중국에 머물렀다. 머무는 동안 중국 경찰들에게 들통날까봐 2주 내내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배달음식만 시켜 먹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버지를 만날 날을 기다렸다. 결국 그는 2001년 남한으로 입국했다.
 
자유의 품에서 접하게 된 아이스하키…“초심 잃지 않겠다”
 
남한으로 들어온 그는 처음에는 탈북을 후회했다. 입국하자마자 국정원의 손에 이끌려 일정 기간 행동반경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럴 거면 북한에 계속 있을 걸 그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정착 지원을 위한 기관인 ‘하나원’으로 이동하게 됐다.
 
“북한에 있을 때는 남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지구상에 북한만 있는 줄 알았으니까요. 처음에 왔을 때 신기했던 것은 자동차가 굉장히 많았던 것이에요. 북한은 소수의 사람들만 자동차를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 때 ‘확실히 잘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원에서 그는 3개월간의 사회적응 훈련을 거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15세의 나이였지만 북한에서 제대로 된 기초교육을 받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렇게 그는 남한에서 초등학교 5학년으로 입학해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 최광혁(사진) 선수는 대학교에 입학한 뒤 교직원의 추천으로 아이스하키를 처음 접했다. 이후 그는 ‘국가대표’가 되려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고 운동에 전념했다. ⓒ스카이데일리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친구들이 형, 오빠라고 부르면 좋아 했어요. 중학교에 입학하고 명찰을 달게 되면서 친구들과 다른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싫었죠. 그래서 일부러 나이도 감추고 출신도 감췄어요. 친구 몇몇은 알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몰랐죠. 그래서 그런지 학창시절은 순탄했던 것 같아요”
 
최 선수는 2011년 한국복지대학교 의료보장구학과에 입학한 후 하키 종목을 접하게 됐다. 의수족을 만드는 과로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실습보다는 이론이 더 많은 등 생각과 다른 수업 내용에 2년간 휴학했다. 도저히 과를 포기할 수 없던 그는 재도전하려는 마음으로 학교로 돌아왔고 교직원의 추천으로 아이스하키를 처음 접하게 됐다.
 
“추천을 받기 전에는 장애인이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패럴림픽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죠. 아이스하키라는 종목도 처음 알았으니까요. 인기도 없고 지원도 부족해서 처음에는 운동하기가 너무 싫었어요. 주말에 운동가자고 전화가 와도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안 나가는 경우도 있었죠”
 
운동하기 싫은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국가대표’라는 단어였다. 태극마크를 달고 패럴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꿈이 생기자 최 선수는 주말도 반납하고 밤낮으로 운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최 선수는 지난해 11월 마침내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게됐다. 그는 기쁨보다는 더 독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졌던 안 좋은 버릇을 99% 버렸어요. 태극마크를 다니 더 모범적인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담배도 끊고 술도 시즌 때는 거의 안마셨죠. 사람들을 만나는 횟수도 줄이고 운동에만 전념 했어요”
 
그의 열정은 값진 보답으로 되돌아왔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지난달 17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평창 패럴림픽 동메달결정전에서 이탈리아를 1대0으로 꺾고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 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따냈다.
 
“한국 아이스하키 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감정을 추스르려고 했지만 애국가가 나오는 순간 울음을 참을 수 없었죠. 저도 모르게 북받치는 기분이었어요. 아직도 붕 떠있는 것 같고 실감이 안나요”
 
최광혁 선수는 내년 4월에 있을 세계선수권 대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음 동계 패럴림픽 출전을 위한 첫 단추를 잘 끼우겠다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임하고 있다. 동메달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메달을 목표로 꿋꿋하게 나아갈 예정이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말을 항상 되새기고 있어요. 웨이트 운동을 할 때 10개를 목표로 하면 9개인 순간이 너무 힘들죠. 그 순간 ‘초심’을 생각하면서 노력하고 있어요. 붕 뜬 기분을 다잡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금 이 순간에 올인 하고 싶어요. 올림픽을 위한 도움닫기로 기본기에 충실할거에요”
 
[김민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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