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독경은 고려시대 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민족의 전통 문화에요. 어려서 10여 년간 맹인독경을 배웠고 평생 업으로 삼았죠. 이제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서울 성북구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채수옥(78) ‘서울맹인독경’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3살 때 홍역으로 시각을 잃은 장애인이다. 그가 맹인독경(시각장애인들이 여러 경문을 읽으며 복을 빌거나 질병을 치료하는 전통신앙 의례)을 처음 접한 것은 15살 때였다.
시각장애 아들 ‘호구지책’ 걱정에 부모님 권유로 시작
“저는 고향이 경기도 연천군 전곡면이에요. 어릴 때 눈을 잃었는데, 15살이 되자 부모님께서 제게 맹인독경을 배울 것을 권하셨어요. 제가 앞으로 스스로 밥을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판단이셨어요.”
채 보유자가 맹인독경을 배울 당시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규 학교도 있었다. 하지만 시골에 살던 채 보유자 부모님은 그러한 학교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때문에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직업 중에서 눈에 띄는 직업인 맹인독경을 배우도록 권했다.
“시각장애인의 삶이라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밥 먹는 것부터 이동하는 것 까지 모든 것이 큰일이죠. 특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길로 이동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과 같아요. 깨진 보도블록부터 연석(도로 경계석)까지 사방이 위험한 것 천지죠.”
“사람을 대할 때도 어려워요.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표정이나 몸짓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들은 오로지 소리만으로 알아야 해요. 대화 상대방을 파악하는데 일반인의 몇 곱절은 힘들 수밖에 없죠.”
맹인독경을 배울 때도 어려움은 마찬가지였다. 맹인독경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시각장애인이고 배우는 학생도 시각장애인이니 도제식으로 구전을 통해 배울 수밖에 없었다. 채 보유자가 맹인독경을 배우던 1950년대~1960년대에는 점자 보급 수준이 낮았다.
“어떻게 보면 지난 1000년 이상 선조들이 해 왔던 방식으로 배웠다고 할 수 있어요. 스승님이 한 구절을 가르쳐 주시면 하루 종일 그 구절은 입으로 되뇌면서 외우는 거에요. 다음 날 검사를 받을 때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회초리로 맞았죠.”
채 보유자는 25살 때 까지 10년간 스승님에게서 구전을 통해 맹인독경을 배웠다. 눈이 안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꼽는다면 바로 이 시기였을 것이라도 회고했다.
문화재 심사위원들 편견 맞서 ‘설득’ 노력…무형문화재 추진 5년만에 성공
채 보유자의 두 번째로 어려웠던 시기는 2012년 ‘서울맹인독경’을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때였다. 맹인독경에 대한 편견이 심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담당 공무원들은 물론 문화재 등록을 심사하는 문화재 위원들과도 편견에 맞서 싸워야했어요. ‘이제 무슨 무형문화재냐’라는 비아냥거림부터 ‘예산을 지원해 줄 수는 있어도 문화재 등록은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죠. 맹인독경의 역사성과 문화성을 이해하지 못해 나온 편견이었죠.”
“편견을 깨기 위해서 끊임없이 설득을 해야 했어요. 독경 시연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고 역사적 의미와 음악적인 가치를 끊임없이 강조해야 했죠. 맹인독경은 다른 전통 신앙의례와는 달리 화려하거나 역동적인 면이 없어 설득이 쉽지 않았죠.”
‘서울맹인독경’은 지난해 1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됐다. 무속 신앙인 ‘서울새남굿’, ‘서해안 배연신굿’ 등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었던 만큼, 맹인독경 역시 전통 신앙 의례의 일종으로 인정돼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것이다.
‘서울맹인독경’은 자세에 따라 크게 ‘선굿’과 ‘앉은굿’으로 나뉜다. 3~5명이 가만히 서거나 앉아서 북, 징 등을 치면서 경전을 읊는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점 때문에 춤을 추거나 적극적인 움직임을 대대로 전수하는 것이 불가능 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시각장애인이 점술을 했다는 기록은 고려시대 부터라고 해요. 949년 즉위한 고려 4대 임금인 광종 때죠. 그때부터만 따져도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죠.”
조선시대에는 점술이 시각장애인의 주요 직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세종 27년인 1445년에는 시각장애인들의 직업 교육의 일환으로 독경을 가르치기도 했다.
젊은 맹인들 중 뛰어난 실력을 보인 시각장애인 점복가들은 관상감 등의 관직에 등용됐다고 한다. 현대에서 안마사를 시각장애인만 할 수 있는 직종으로 보호받는 것처럼 조선시대에는 독경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직종으로 보호받은 것이다.
“스승께 배운 맹인독경, 후대 전승은 의무”
근대에 들어서 맹인독경을 이어받은 단체로 1925년 설립된 ‘조선맹인역리대성교’가 있다. 이 단체는 광복 이후 ‘대한시각장애인역리학회’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서울맹인독경’에서 읽는 경전들은 대부분 도교와 불교의 영향의 받은 것들이죠. 집안이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내용이 담긴 ‘안택경’과 병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병경’ 등이 대표적이죠. 또 대표적인 불교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신묘장구대다라니’ 등도 읊어요.”
맹인독경은 서울 이외에도 전국에서 제각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름이 ‘서울맹인독경’으로 붙은 것은 단지 서울시 무형무화재로 등록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경전 내용은 전국적으로 동일하지만 독경에 붙이는 박자와 음악은 서울·경기 지역,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 지역마다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서울·경기 지역의 독경은 민요에 가깝지만 전라도 등 삼남지역의 독경은 육자배기에 가깝다.
“요즘에는 전자책이 많이 발달돼 있어 맹인독경 기술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일이 더 수월해 졌어요. 또 예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짜서 가르치죠.”
채 보유자 문하에는 3명의 전수생이 가르침을 받고 있다. 채 보유자는 앞으로 자신이 이어받은 맹인독경 기술을 가르치고 널리 알리는 일이 남은 삶의 목표라고 말했다.
“제가 스승님께 배웠던 것처럼 저 역시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해요. 1000년을 내려온 전통 문화를 전해줘야죠. 또 많은 사람들에게 맹인독경이라는 문화를 알리는 것 또한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문화가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서 잊혀 지지 않는 문화가 되기를 바래요.”
[이경엽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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