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직업은 ‘문화복지전문가’에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복지의 개념은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주는 것을 말하죠. 누구나 노력하면 가난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바로 복지죠. 하지만 정부에서 이를 위해 나오는 재원은 한정돼 있어요. 그래서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복지의 만족도를 올릴 수 있는 것은 문화라고 생각해요. 복지에 문화를 통해 얻는 즐거움을 접목시킨다면 만족도가 배가되죠. 복지가 반드시 문화와 함께 어울려야 하는 이유죠”
방귀희(62·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회장은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다. 두 다리와 왼팔 사용이 어렵다. 오른손의 기능도 40%만 남은 상태다. 휠체어에 의존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신체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방 회장은 일반인조차 한 개도 갖기 힘든 ‘최초’라는 타이틀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최초의 휠체어 장애인 대학생, 최초의 휠체어 방송인 등이 대표적이다.
방 회장은 현재 대학 강연 및 장애인예술 매거진 ‘e美지(이미지)’, ‘솟대평론’ 등의 발행인도 겸임하고 있다. 장애인 신분을 이겨내고 세계 물리학계의 한 획을 그은 미국의 ‘스티븐호킹’ 박사처럼 방 회장은 우리나라 장애인 문화예술계의 ‘스티븐호킹’으로 평가되고 있다.
소아마비 앓은 이후 양 다리, 왼손 사용 불가…장애인 신분에 일반학교 진학 후 ‘만년 1등’
방 대표는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고열을 심하게 앓고 난 후 마비 증상이 찾아와 온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첫 돌이 지난 후 걸어다닐 정도로 튼튼했던 방 대표의 두 다리는 마치 문어다리처럼 힘을 잃었다. 어린 시절 장애를 얻었지만 방 회장의 성장 과정은 누구 보다 꿋꿋했다.
“당시에는 제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했죠. 그래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다르다고 해서 슬프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죠. ‘나는 친구들과 다르니 다른 시간을 지내면 된다’고 늘 생각했죠. 밖에서 뛰어노는 것 대신에 책 읽기, 인형놀이 등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방 회장은 장애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진학했다. 여느 부모님들보다 학구열이 높은 어머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자 방 회장의 어머니는 특수학교를 잠시 찾긴 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그의 어머니는 사회생활을 하려면 일반아이들 사이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해 방 회장을 또래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입학시켰다.
물론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장난기가 많은 나이다 보니 혹시 모를 사고를 우려한 학교 측이 방 회장의 입학을 거부했다. 방 회장의 부모님이 학교를 찾아 ‘사고가 일어나면 학교에 책임을 돌리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쓴 후에야 간신히 일반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학교생활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이 부족해 방 회장은 부모님 등에 업혀 학교 계단을 오르내렸다. ‘공부도 못 하는 아이를 학교에 왜 보내느냐’는 주변의 시선도 방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그럴수록 그는 보란 듯이 더 열심히 공부했다. 반에서 1등은 항상 방 회장의 차지였고 덕분에 무학여자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공부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화장실과의 싸움이 더 컸죠. 당시에는 학교에 장애인 시설이 잘 돼있지 않아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어려웠죠. 집에서 나오면 물 종류를 아예 안 마셨어요. 학교 점심시간에도 멸치 등 마른반찬만 먹었죠. 고등학교 때는 아침 7시에 나와서 밤 8시에 일과를 마쳤는데 거의 12시간 정도를 아예 화장실을 가지 않고 살았죠”
한의사를 꿈꾸던 방 회장은 대학 입학의 문턱에서 또 다시 좌절감을 맛봤다.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를 진학하려 했지만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결국 방 회장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동국대학교 불교철학과에 진학했다.
“원하는 대학보다는 받아주는 대학을 갈 수 밖에 없었죠. 학교를 구걸하다시피 다녔던 거죠. 처음에는 원하던 과가 아니고 종교를 대학에서 왜 배우냐고 생각했죠. 막상 공부를 하다보니까 인간 중심의 철학적인 내용이라 흥미가 생겨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방 회장은 동국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연이어서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도 계속하려 했지만 학교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던 방 회장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혔다. 동국대에서만 8번을 떨어졌다. 이후 2007년 숭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 석사를 취득하고 박사과정도 밟았다.
“박사과정까지 걸리는 기간만 30년 정도 됐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는 시간 보다 박사과정으로 가는 문이 열릴 때까지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죠. 제 인생에 있어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길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계속 기다리면 언젠간 문이 열리긴 하더라고요”
대학교 수석 졸업부터 최초의 장애인 문화특보까지…“‘어차피’가 아니라 ‘어쨌든’으로 살길”
방 회장이 대학을 졸업한 1981년은 국제 장애인의 해였다.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하자 방 회장에게 방송 출연 요청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칼럼, 라디오 출연 등을 하면서 아르바이트 개념을 생각했지만 2년 가량을 바쁘게 살았다.
“처음 방송을 했을 때도 떨리지 않았죠. 오히려 즐거웠어요. 내가 말하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동시다발로 전달되고 피드백이 금방 오니까 행복했죠. 라디오 프로그램, TV 토크쇼 등 여러 프로그램을 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방송을 한 지 10년이 된 1991년 방 회장은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신의 수입의 절반을 남을 위해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는 방송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겸했던 방송작가 생활을 하며 접하게 된 장애인 문학에 주목했다.
“문학하는 장애인들이 가장 열악해요. 미술이나 음악을 하는 장애인들은 재료나 악기 등을 집에서 지원을 받지만 장애문학인은 대부분 가난하죠. 장애가 심해 밖에 나갈 수 없어 글을 쓰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지만 막상 작품을 발표할 무대가 턱없이 열악하죠.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훌륭한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무대를 마련해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방 회장은 1991년 장애인 문예지인 ‘솟대문학’을 창간했다. ‘하늘을 향한 희망의 안테나’라는 뜻의 ‘솟대’를 붙인 국내 최초의 장예인 문예지였다. 솟대문학은 지난 2015년에 폐간을 할 때 까지 25년 동안 발행됐다.
“1997년 IMF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져 후원금을 받기 시작했죠. 그 때 처음으로 글을 싣는 장애인들에게 원고료를 지급했죠. 1~3만원이라는 매우 적은 돈이었지만 원고료를 받은 분이 처음으로 번 돈이라면서 치킨 파티를 했다고 해요. 솟대문학에 글이 실리면서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자기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분도 있었죠. 솟대문학은 장애인 문학인들에게 ‘삶의 의미’ 그 자체였어요”
방송작가 생활을 이어가던 방 회장은 2012년에 휠체어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1년간 대통령 문화특보로 활동했다. 이듬해에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그는 문화특보를 하면서 ‘개인에게 온 기회가 아니라 장애인에게 온 기회’라고 생각했다. 장애인은 기회를 줘도 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확 바꿔야겠다는 다짐도 하게됐다.
“문화특보를 하면서 정책 개발에 관심을 가졌어요. 장애인 관련 문화예술이 처한 열악한 현실에 안타까운 생각도 가졌죠. 그때부터 장애인 문화예술 정책에 매진하고 있죠. 장애인 문화예술 센터가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 예산 344억원을 마련해 서울 대학로에 있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을 설립하는데 힘을 보탰죠”
현재 방 회장은 장애예술인 법률 제정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현재 추진 중인 법이 기존에 있는 장애인복지법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복지법에서 주는 것은 최저 생활비에요. 하지만 장애인예술인 지원법은 장애인들이 예술 활동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개념이죠. 장애인 체육선수는 메달을 따면 지원금을 받지만 예술인들은 그럴 만한 계기가 없으니까요. 일정 기간 경력을 가진 예술인에게 지원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 중 ‘어차피’라는 것이 있어요. ‘어차피 안 될 거야’ 같이 하는데 어차피는 단어는 굉장히 냉소적인 단어에요. 어차피 안 될 거라고 생각했으면 저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가 아니라 ‘어쨌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어쨋든 해보자’라고 마음먹으면 느리게나마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에게 활짝 문을 열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민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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