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학생의 동물해부 실습 허용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1월 미성년자의 동물해부 실습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대신 실험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을 입법예고 하자 교육부는 ‘과도한 규제’, 동물권단체는 ‘예외조항삭제’라는 상반된 이유로 강력 반발하면서 부터다.
교육부-동물권단체 입장 팽팽…규개위까지 나서
최근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까지 나서 교육부와 동물권단체 간 의견조율을 시도했지만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동물권단체들은 “미성년자 동물 해부실습은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학생들이 해부실습 후 트라우마를 겪는 등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미성년자 해부실습 완전금지를 촉구하는 여론 확산에 나선 상태다.
반면 교육부는 “동물 해부실습 금지는 과학교육의 근간을 가로 막는다”며 “동물 해부실습은 담당 교사의 역량과 전문성에 맡겨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양측 간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는 지난 2018년 2월 19세미만 미성년자의 동물해부 실험을 금지하되 단, 학교 또는 동물실험시행기관 등 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초 홍의락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동물실험시행기관만 예외조항으로 규정했지만 상임위 논의과정에서 동물해부 실험 예외 대상에 초·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학교가 추가됐다.
농식품부는 지난 1월 동물보호법 개정안 시행(2020년 3월 21일)이 다가옴에 따라 미성년자의 동물해부 실습 시 예외적 허용 절차를 규정한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주요내용은 미성년자의 동물해부실습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초·중·고등학교에서 살아있는 동물의 해부실습을 하려면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치거나, 둘 이상의 학교가 공동위원회를 설치해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했다.
또한 사역동물 등 동물실험 시 예외적 허용 사유인 ‘동물의 생태·습성 등에 관한 과학적 연구’ 조항을 삭제하는 등 실험 요건을 엄격히 제한했다.
교육부 또는 교육계와 동물권단체 간 의견충돌은 이때부터 본격화 됐다. 동물권단체 카라는 “정부의 시행규칙 개정안은 미성년자 해부실험 금지 예외조항을 광범위하게 설정했다”며 개정 촉구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카라는 지난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개정된 동물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입법예고된 시행규칙은 초·중·고등학교 해부실습 등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설치·심의를 전제로 허용할 수 있는 해부실습의 최대치를 허용했다”며 “미성년자 해부실험을 금지한 동물보호법의 의미를 훼손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또한 “설상가상으로 교육부는 이조차 ‘과도하다’며 반대가 시작돼, 개정 동물보호법은 시행규칙 없이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고 덧붙였다.
시행규칙 개정안은 지난 1월 17일 입법예고 돼 2월 26일까지 의견청취, 이후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 예정이었지만 동물권단체와 교육부 간 의견대립으로 두 달 넘게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카라 교육아카이브팀 간현임 팀장은 “시행규칙에서 교육기관을 해부실험 예외대상으로 할 경우 대부분의 미성년자들이 해부실험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며 “예외규정을 보다 엄격하게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개정 촉구 서명운동에 참여한 대다수 학생들은 해부실험으로 인한 죄책감과 공포 기억을 갖고 있었고, 해부 후 사체를 묻어주며 엄청 울었다는 학생들도 상당수 였다”며 “어린학생에게 동물해부 실험에 참가토록 하는 것은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어른이 돼서도 트라우마로 남게되는 등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교육부와 교육계는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설치를 강제해 학교 교육활동의 일환인 해부실습 심의를 맡기려 하고 있다”며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설치·심의 규정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동물해부 실험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규제라는 주장이다.
과학교사들 “생명과학 교육과정”…외국선 ‘해부실습 금지’ 대다수
전국과학교사협회(전과협)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생명과학 교육과정에서 동물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지 않고 생명과학 분야를 학습할 수 없다”며 “생명과학은 실험실습을 통해 형성된 학문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동물해부실험 통해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불가결하다”고 밝혔다.
또한 “학교는 동물실험시행기관이 아닌 만큼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설치 의무가 없는데도, 사실상 위원회 설치를 강제해 학교에 대한 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동물의 보호와 윤리적 취급 등을 위해 설치·운영하는 것으로 학교의 교육활동에 관한 심의 권한이 없다”고 비판했다.
전과협은 “동물해부 실험 담당 교사는 교육과정과 동물보호에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만큼 담당교사의 판단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며 동물실험윤리위원회나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한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양측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개정 동물보호법은 이미 시행에 들어간 반면 모법을 뒷받침할 시행규칙은 현재 부재한 상황이다. 결국 규개위가 나섰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규개위는 지난 24일 동물권단체인 카라, 비글구조네터워크와 교육부, 농식품부 관계자를 불러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쟁점사항에 대해 각각의 의견을 청취했다.
내주 개선 권고안을 내놓을 예정인 가운데 초·중·고등학교에서의 동물해부 실습은 가능하도록 예외조항은 그대로 두되,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전문성을 더 강화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규개위 조정안을 토대로 교육부와의 협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규개위 개선권고안을 갖고 교육부와 합의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또다시 규개위에 보고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규개위의 개선 권고안이 교육계와 동물권단체의 반발을 더 불러올 소지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국회 관계자는 “규개위의 권고안은 양측 어느 누구의 요구도 충족시키기는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더 유발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인 만큼 늦어도 접점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다”고 전했다.
한편, 해외의 경우 학교 내 동물해부 실습을 금지 또는 제한하거나 학생들이 참여 여부를 선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오스트리아·벨기에·핀란드·독일·아이슬란드·카타로니아는 대체가 가능한 경우라도 동물에게 위해가 되는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있다. 또 네델란드·스위스·폴란드는 대학 미만의 학교에서 해부실험이 금지돼 있다.
영국은 해부실험이 법적 금지사항은 아니지만 학교의 약 3%에서 해부실험이 시행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학생선택법(student choice law)에 따라 동물해부 실험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학생의 권리가 보장돼 있다.(캘리포니아·오레곤·뉴욕·일리노이·플로리다·버지니아·펜실베니아·뉴저지·코네티컷·버몬트·로드아일랜드 등 11개주)
이탈리아도 학생에게 동물실험 또는 해부실험에 불참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초·중·고교에서 동물실험을 할 경우, 뉴질랜드 과학교육자연합이 운영하는 학교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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