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때 아닌 ‘천도론’이 불거져 나와 주목된다. 2004년 헌법재판소(헌재)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중심으로 세종특별자치시로 행정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개헌 없이 국민투표 등 소위 ‘정서법’이나 특별법 제정 또는 현행법 개정만을 통해 이전을 강행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여권발 행정수도 이전론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헌법에 정면도전하는 듯한 태도는 물론 무엇보다도 ‘내로남불’ 태도를 지적하는 국민이 많다. △남북통일 △청와대의 광화문 이전 △부동산 안정 등을 공약했거나 강행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는 건 언행불일치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충청지역의 민심을 얻기 위해 불가능한 사안을 이슈화 시켜 대권에서 유리한 고지를 달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 평화 외치며 남쪽으로 수도이전…“통일은 포기했다고 보면 되는건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의 △인도적 교류·협력 재개 △동해북부선 철도 연결 등 남북합의 이행을 위한 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 6일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에 출근하면서 “현 시점에서 첫 번째 노둣돌을 놓으면 냉랭해진 관계가 대화 복원 관계로 들어간다”며 “또 하나를 놓는다면 인도적 교류·협력을 지체 없이 하는 과정이 됐으면 좋겠다. 또 하나를 놓는다면 그동안 남북이 약속하고 합의한 걸 실천하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남북대화 재개 시 교류·협력을 먼저 시작하고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등에서 합의한 남북철도 연결,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추진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이 장관은 27일 주재한 첫 통일부 실·국장급 회의에서 “2045년까지 남북 시장·화폐·재정 통일로 내달리는 과정을 주도하자”며 “궁극적 목표는 남북통일이다”고 밝혔다.
이 장관의 행보는 문재인정부 대북정책 기조를 고스란히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동안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명분삼아 북한과 다양한 교류를 펼쳐왔다. 2018년 8월 개성·평양을 연결하는 경의선 도로 공동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같은해 12월 남북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을 개최했다. 착공식에서는 서울·평양이 표기된 표지판 제막식도 열려 정부가 어떤 형태의 통일이든 서울을 중심지로 염두에 두고 있음이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여당인 민주당을 중심으로 ‘행정수도 이전론’이 불거져 나오면서 사회 각계각층의 반발이 고조되고 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22일 SNS에서 “서해안으로 수도를 옮기자는 것은 통일을 포기하고 영원히 분단국가로 살아가자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 아닌가”라며 “웅대한 대륙을 향한 기상과 통일을 포기하고 또다시 남쪽으로 내려가자는 천도론은 한반도 미래 전략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진보 성향 온라인커뮤니티에서도 부정적 목소리가 크다. 해당 커뮤니티 내에는 “행정수도 이전 진지하게 추진하면 통일은 포기했다고 보면 되는 건가(tye****)”, “민주당은 왜 이렇게 행정수도 이전에 집착하나. 왜 계속 서울 수도를 부정하려 하나(앵그리**)”,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초딩도 그렇게는 생각 안 하겠다(불꽃**)”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靑 광화문 이전’ 불발도 새삼 회자…“불가능 알면서 큰 소리 떵떵, 충청민심 기만하나”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면서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내세웠던 청와대 광화문 이전 공약도 새삼 재거론 되고 있다. 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이 ‘오랜 숙원’이었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광화문 이전 공약이 결국 표심을 얻기 위한 하나의 쇼였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번 ‘행정수도 이전’ 역시 많은 청년층의 표심을 자극한 청와대 광화문 이전 공약과 다를 바 없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광화문 이전 공약처럼 행정수도 이전의 수혜자로 지목되는 충청권 민심을 잡기 위한 하나의 쇼나 다름없다며 또 다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광화문시대를 열겠다”며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또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대통령, 친구 같고 이웃 같은 서민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취임으로부터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은 작년 1월 이 공약을 파기했다.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 자문위원은 “영빈관과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의 주요기능을 대체할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임무를 수행하고 보니 이에 따르는 경호와 의전이라는 게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강조했다.
배준영 미래통합당(통합당) 대변인은 22일 논평에서 “2km도 이동 못하면서 150km는 어떻게 이동한다는 건가”라며 “부동산 헛발질로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니 혹세무민해 표를 얻겠다는 선동인가”라고 꼬집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이날 SNS에서 “이 나라는 대통령 지지율 관리를 위해 수도를 이전하는 나라다.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다”며 “그냥 혼자 떠들게 내버려두시라.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는 것도 못한 주제에”라고 비판했다.
행정수도 이전이 집값 안정을 주장하면서 다주택 매각 등을 강요하는 정부 정책과도 배치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도권 집값도 못 잡고 도리어 세종시 땅값만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다. 배 대변인은 27일 논평을 통해 “행정수도 이전을 꺼내면 세종으로 투기가 몰린다. 시장이 어떻게 되든 우선 던지고 보겠다는 무책임의 연속이다”고 일갈했다.
국민 여론도 행정수도 이전에 회의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리얼미터가 24일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7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p)에서 응답자의 54.5%가 여권의 “행정수도 이전으로 인한 수도권 집값 안정”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세부적으로는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가 35.8%에 달했다.
야권에서는 행정수도 이전은 ‘광화문 이전’ 공약과 마찬가지로 향후 대선승패의 결정적 키를 쥐고 있는 충청민심을 잡기 위한 하나의 쇼에 불과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23일 의원총회에서 “이슈 국면 전환을 위해 느닷없이 행정수도 이전을 꺼내들었다”고 분석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같은 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수도권과 지방을 가르고 지역감정을 부추겨서 2002년과 같은 대선판을 다시 만들겠다는 것이다”고 했다.
미래통합당은 행정수도 이전이 표심 자극만을 위한 ‘표퓰리즘’이 아닌 진심이라면 민주당이 내년 재·보궐선거에서 이를 공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장은 27일 비대위 회의에서 “수도 이전 생각이 굳건하다면 내년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공약을 내걸고 서울시민 의사부터 확인해 달라”고 주문했다.
[오주한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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