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이 개천절을 맞아 북새통을 이루던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는 과거 군사독재를 방불케 하는 삼엄한 경계가 이뤄졌다. 경찰은 이른바 ‘재인산성’으로 불리는 차벽을 쌓은 채 1만이 넘는 병력을 풀어 지나가는 시민들을 검열했다. 코로나 방역확산의 주범인 불법 반정부집회를 막는다는 취지였다.
한글날인 9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모습이 연출됐다. 경찰의 불심검문을 당한 시민들은 불편함을 토로했지만 정부는 코로나 방역과 교통체증 등의 이유를 들어 검열을 정당화했다. 비슷한 시기 외교부의 해외여행 자제권고에도 장관 남편이 해외로 훌쩍 떠나고 여당 의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한 채 술판을 벌인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방역을 앞세운 정부의 집회차단 행보는 진정성을 의심받는 사태에 이르렀다.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이번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본 외신의 평가 역시 국민 여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소 수위 높은 발언으로 집회·시위 통제의 현상을 비판했다. ‘2020년 10월 대한민국은 북한보다도 더 한 통제국가(state control)로 전락했다’는 게 국제사회의 공통된 시선이었다.
광화문은 3중 검문, 서울대공원은 인산인해…진정성 의심 받는 文정부 방역대책
개천절인 3일 서울 도심은 완전봉쇄됐다. 경찰병력 1만1000여명은 도심 일대에서 불심검문을 벌이는 한편 경찰버스 300여대를 동원해 총연장 4㎞의 차벽을 세우고 도로와 인도 사이를 차단했다. 서울시내 진입로 90곳의 검문소에서 3중 검문이 실시됐고 태극기를 실은 차량은 통행이 금지됐다. 인근 회사 직장인이라 해도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면 이동을 저지당하기 일쑤였다.
앞서 대법원은 2007년 농민집회 당시 차벽설치 등은 위법이라고 판결했지만 이 같은 판례는 철저히 무시됐다. 경찰 직무집행법 3조(불심검문)는 불심검문에 있어서 흉기 소지여부 조사 때만 허용하고 태극기 소지여부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친여단체로 평가받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지난달 29일 “차량집회 자체를 범죄로 간주하는 건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상당하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정부집회 주최 측은 코로나 확산을 막겠다는 정부 취지에 발맞춰 타협안으로 참가자 전원이 각자의 차량에 탑승하는 드라이빙스루 형태 집회를 제안했지만 정부는 교통체증이나 차량돌진 등을 이유로 끝내 불허했다. 약 3달 전 차량 2500대가 동원된 드라이빙스루 형태의 이석기 석방 시위를 허가한 것과 대치되는 모습이었다.
9일 한글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다. 이 날에도 세종로에는 차벽이 설치됐다. 경찰은 도로변에 버스 500여대로 차벽을 치는 한편 인도는 철제펜스 1만여 개로 틀어막고 미로식 통행로를 만들어 집회와 전혀 무관한 것임이 확인된 사람만 통과시켰다. 인근 직장인이라 할지라도 사원증이 없을 경우 이동에 큰 제약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코로나 확산 방치 차원에서 인파가 몰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던 것과 같은 시기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대공원은 추석연휴인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문을 열고 하루 평균 2만명의 손님을 받았다. 정부가 차량 혼잡을 이유로 드라브스루 집회도 허용하지 않았지만 이날 서울대공원 주차장 진입로는 몰리는 차량 행렬로 마치 주차장이 확장된 것과 같은 진풍경이 연출됐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술자리 소식은 정부의 집회차단 명분을 더욱 약하게 만들었다. 정치권에 따르면 박모 의원 등은 지난달 17일 동료 의원들과 공부모임을 마친 뒤 여의도의 한 식당에 모여 뒷풀이 술자리를 가졌다. 박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술자리 사진에는 술병을 들고 있거나 술잔을 앞에 놓고 앉은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광화문 통제에 외신이 언급한 단어 인세인(insane), ‘정신이상자’ 뜻도 담고 있어
방역을 앞세운 정부의 강력한 집회차단 조치에 외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대부분 비판 어린 논조로 우리나라의 상황을 평가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 운영자로 평양에서 열린 북한 열병식에 두 차례 참석한 바 있는 채드 오캐롤 코리아리스크그룹 대표는 9일 SNS를 통해 “점심 먹으러 빵집에 가는데 검문을 4번 받았다. 평양 군사퍼레이드를 두 번 가봤는데 이런 건 처음 본다”며 “지금 서울은 완전히 우스꽝스럽다. 미쳤다(insane)”고 지적했다. ‘인세인(insane)’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단어로 ‘정신이상자’라는 뜻도 담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우리나라가 외신들로부터 ‘이상한 나라’로 평가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 대표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8월 ‘한국의 진보통치자들이 내면의 권위를 발산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전 정부보다 반대 의견에 관대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의도가 시들어가고 있다”며 “(타인에 대해) 비판을 뿜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유엔도 비판에 가세했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최근 문재인정부에 “기밀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북한군에 사살당한 공무원 유가족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정부가 정보를 통제 중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어 야권에서는 “국제적 망신이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1일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고 했다.
야권에서는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언급한 ‘신독재(new autocrats)’가 한국에서 현실화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베네수엘라 독재자인) 차베스 집권과 절대권력화도 민주주의 제도 위에서 이뤄졌다. 정권을 비판하면 적폐로 몰아가고 대통령이 앞장서서 여론의 분노를 자극한다”며 “독재는 스스로 독재임을 인지하지 못 한다. 야당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주한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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