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발돋움시킨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타계하면서 장남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선친을 대신해 6년 동안 실질적인 그룹 총수로서의 입지를 다지면서 성공적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신뢰를 쌓아온 덕에 ‘뉴삼성’에 대한 기대감도 남다른 상황이다.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가 도래하면서 국민적 기대감이 들끓고 있긴 하지만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가로막는 과제가 산적해 있어서다. 사법리스크, 지배구조 개편, 상속세 재원 마련 딜레마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상속세 논란은 아직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뜨거운 감자’로 지목되고 있다. 삼성뿐 아니라 경제·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국민밥솥 위협하는 상속세법 완화 목소리 확산…글로벌 트렌드 속 한국만 역주행
국내 주요 기업들은 창업 1·2세대가 별세하면서 젊은 총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오랜 기간 동안 논란을 빚어왔던 상속세 논란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사회·경제적 파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상속세 납부 문제로 기업·오너의 역량의 분산되면서 그 여파가 일자리, 신규투자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 2018년 구본무 회장 별세 이후 매년 연부연납 방식으로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다. 구 회장이 납부해야하는 금액은 자그마치 9000억원에 달하며 매년 1500억원씩 5년 간 6차례 나눠서 분납하기로 했다. 롯데그룹도 상속세 폭탄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1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부친인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별세로 4000억원 가량의 상속세를 떠안게 됐다.
지난해 4월 총수로 등극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7월 한진칼 주식 80만주를 담보로 400억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그룹 안팎에서는 상속세 재원 마련 목적으로 보는 시각이 주를 이뤘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작고로 유족이 2700억원 가량의 상속세 납부 의무를 짊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상속 문제가 가시화 된 이후 과도한 상속세 논란은 더욱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일가가 이건희 회장의 삼성그룹사 지분만 물려받는다고 하더라도 상속세 규모는 10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월 1차 추경예산안(11조7000억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이 부회장 같은 경우 세계 초일류 기업의 위상과 초격차 기술 개발 등 굵직한 과제를 떠안은 상태라 상속세 부담은 특히 남다를 것으로 평가된다.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글로벌 경영활동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이에 국가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는 기업을 송두리째 흔들만한 상속세에 여론 안팎에서는 ‘과연 국내 상속세율이 적합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 주요 나라들의 경우들을 살펴보면 상속세법 완화로 기업들의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OECD 36개 회원국 중 캐나다 호주 등 13개국은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미시행 중에 있다. 포르투갈·슬로바키아(2004년)를 기점으로 해서 스웨덴(2005년), 러시아(2006년), 오스트리아(2008년), 체코(2014년) 등이 잇따라 ‘상속세 없는 국가’를 선언하기도 했다.
특히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승계취득가액 과세)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자본이득세란 상속 시 과세하지 않고, 상속받은 자산을 추후 유상으로 처분할 때 사망자와 상속인 보유기간 동안의 자본이득을 합산해 양도소득으로 과세하는 방식을 말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이유는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과도한 상속세 부과로 경영 활동에 제동이 걸릴 경우 자칫 실업대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실업대란은 재정과 복지에 영향을 미쳐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50%)은 OECD 평균의 두 배 수준이다.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최대주주 지분율에 따라 상속자산 가치를 10~30% 높게 반영해 계산하는데 이를 적용하면 상속세율은 공제를 감안하더라도 최대 65%까지 높아져 사실상 OECD 최고 수준이다.
기업경영 영속성 저해 및 경쟁력 악화…시대착오적 행보에 청년·중소기업 한숨 커진다
법인세를 포함한 많은 세금을 납부하는 데도 불구하고 상속세까지 부과한다는 것은 ‘기업 옥죄기’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기업행보에도 악영향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OECD 국가들 중 최고수준에 달하는 상속세 후폭풍으로 기업 경영권 및 근간이 흔들리는 것은 몰론 최악의 상황에는 기업을 매각하거나 국부가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목되는 사실은 과도한 상속세로 인한 피해가 단순히 기업과 오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도한 상속세로 인한 기업활동 위축으로 사회적 손실도 커지고 있다. 기업의 역량이 상속세에 집중되다보면 자연스레 고용과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청년 구직자로 전가되기 마련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승계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손톱깎이 세계 1위 업체였던 ‘쓰리세븐’은 2008년 150억원의 상속세 부담을 못 이겨 지분을 전량 중외홀딩스에 매각했다. 과거 세계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1위를 차지했던 콘돔 제조사 ‘유니더스’ 역시 상속세로 인해 2017년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겼다. 밀폐용기 제조업체인 ‘락앤락’도 상속세 부담 때문에 2017년 홍콩계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상속세 폐지 및 완화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고 하루빨리 정부가 개선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동시에 상속세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가 막대한 만큼 문제를 공론화 시켜 사회적 동의를 통한 자연스러운 상속세 개편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의 과도한 상속세 부과는 기업과 오너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상황이다”며 “지난해 상속세 세수가 3조원 가량에 불과할 정도로 세수기여 효과는 크지 않지만 경영활동 위축으로 고용·투자가 줄어 청년들의 실업률은 더욱 높아지는 등 피해는 막대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건실한 기업 한 곳이 아쉬워 전 세계적으로도 상속세를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세계적 트렌드에 반하는 쪽으로 흘러가면 종국엔 더욱 큰 국민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고 경고했다.
[이창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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