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의 특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혐오’와 ‘광기’의 언어를 전복할 거예요. ‘혐오를 이기는 광기’라는 슬로건으로 정신장애인 당사자 창작문화예술로 지역사회에 있는 일반시민들에게 예술로 다가가고 다양한 소수자와 연대해 낙인을 줄여보고자 하죠. 정신장애인과 함께 정신질환의 본 모습을 보여줘 세상에 자신감 있게 한 걸음 내딛길 바라요.”
정신장애 당사자를 향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함께 살아갈 시민으로 보지 않고 격리해야 할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편견에 찬 시선으로 이유 없이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존재를 지우려 한다. 이러한 차별 속에 당사자들은 상처 받으며 병을 키워간다. 지역사회에서 비당사자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져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존재함을 외치는 정신장애 당사자 시민단체가 있다. 바로 창작문화예술단체 ‘안티카’다. 2018년 설립된 안티카는 정신질환과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항하기 위해 연극, 미술, 문학, 팟캐스트, 유튜브 등 창작활동을 이어가며 정신장애인과 지지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대중운동이자 축제인 ‘매드프라이드(Mad Pride)’ 행사를 매년 주최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안티카 사무실을 찾아 임대륜 창작팀장(32), 김영한 창작팀원(52), 최준호 창작팀원(37) 등 3명과 이들의 활동과 지향하는 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당사자들의 예술적 성장과 사회적 편견을 탈피하는 데 기여
임대륜 팀장과 김영한 씨, 최준호 씨 등은 안티카 창작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다. 이 중 김 씨는 원년멤버로 4년 가까이 안티카와 함께하고 있다. 임 팀장과 최 씨는 2019년부터 활동에 참여했다. 들어오게 된 이유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같았다. 최 씨는 당사자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마음이 편해졌고 증상도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단체에 들어올 당시 연기를 너무 하고 싶어 극단 여러 군데를 다니면서 오디션을 봤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정신장애 당사자라는 걸 알면 비(非)당사자들이 나를 어떻게 대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순간 멈칫했죠. 그때 마침 상담해주던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안티카를 소개했어요.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죠. 원래 정신병력이 많았는데 여기 들어오고 나서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공황장애 등 증상이 많이 줄었어요.”
임 팀장은 2018년 등록장애인이 되고 나서 정신장애인 복지혜택을 검색하다가 해외에서 열리는 ‘매드프라이드’ 행사에 관해 알게 됐다. 이후부터 언젠가 매드프라이드에 참석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에서도 매드프라이드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것을 주회·주관하는 단체가 바로 안티카였다. 그 뒤 페이스북에서 안티카 행사 소식을 듣고 여러 번 참가했다.
“여기서 강연할 때도 가고 2019년 9월 26일 ‘거리로 나온 하얀 방’ 연극 공연을 봤어요. 그런 식으로 계속 안티카와 인연을 쌓았죠. 매드프라이드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때 대표님이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요. 당시 일자리를 구하던 중이어서 흔쾌히 승낙했죠. 지금은 안티카에서 창작도 하고 실무도 하는 등 예술인이 됐어요.”
안티카의 활동은 다양하다. 2018년 당사자 창작 연극 ‘약 먹어도 괜찮아’를 시작으로 여러 편의 작품을 공연한데 이어 2019년부터는 매년 정신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당사자와 지지자의 축제인 ‘매드프라이드 서울’을 개최하고 있다. 당사자 자조(自助)·독서·미술 모임 등 다양한 예술 모임과 교육을 통해 예술적 성장과 사회적 편견을 탈피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제1회 매드연극제를 6월 말에, 온라인으로는 이달 13일에 했어요. 10월 8일과 9일에 매드영화제가 예정돼 있고 10일에는 매드프라이드를 열어요. 이 세 가지 행사가 제일 주요한 활동인 것 같아요. 유튜브는 상시적으로 하지만 매드연극제가 다가오면 연극제를 리뷰하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죠. 물론 매드프라이드를 할 때는 그걸 리뷰하고요.”
창작팀 당사자들은 연출보다는 연기에 힘을 쏟는다. 무대에 오르기 전 감정표현을 담은 연기 연습뿐만 아니라 놀이활동을 통해 상대배우들과 친밀한 관계를 쌓는다. 연출이나 조명, 음향 등은 정신장애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에게 맡긴다. 당사자들은 어떤 주제로 연극을 창작할지 논의하는 과정에 참여해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한다.
“매드연극제 공연작인 ‘복녕당 아기씨’ 같은 경우도 서로 감정을 주고받고 얘기하며 주제를 잡았어요. 작품의 주인공을 덕혜옹주로 결정한 뒤 그 사람의 생애를 조사하고 그 중에서 어떤 부분을 이야기로 다루고 싶은지 서로 얘기했죠. 그런 다음 해당 부분을 묶어서 대본으로 만들었고 함께 대사를 외우며 공연을 준비했어요.”
안티카는 2018년부터 ‘약 먹어도 괜찮아’ ‘하얀 방’ ‘거리로 나온 하얀 방’ ‘사라진 하얀 방’ ‘가족은 그때를 기억할까’ 등 여러 편의 당사자 창작 연극을 공연했다. 이 중 최 씨는 ‘거리로 나온 하얀 방’을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꼽았다. 이는 폐쇄병동에 들어온 환자들이 서로의 사연을 주고받으며 관객에게 병원에서 느꼈던 부조리함을 전하는 작품이다.
“군대에서 복무할 때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어요. 그때의 기억을 꺼내 이 작품을 소화해서 오히려 치료를 받았던 것 같아요.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요. 사실 그때 벌어진 일은 정말 끔찍했던 순간이거든요. 감기몸살로 연대의무실에 입실했는데 갑자기 저를 국군양주병원에 보냈고 정신 검사를 한 뒤 7층 폐쇄병동으로 갔죠. 거기서 3개월 있다가 곧바로 제대했어요. 가슴 아팠죠. 그런 아픔을 안고 살았는데 이 작품을 하고 나서 치유가 됐어요.”
김 씨는 안티카 첫 작품인 ‘약 먹어도 괜찮아’가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소극장 관객석을 가득 채웠고 언론사에서도 여러 곳에서 취재를 왔다. 반면 임 팀장은 즉흥연극이었던 ‘가족은 그때를 기억할까’를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그 작품을 하면서 즉흥연극을 처음 해봤어요. 굉장히 재밌고 가치도 있다는 걸 느꼈죠. 관객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순발력도 필요하고 뭔가 상담을 해주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주 좋았어요. 또 가족 얘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얘기잖아요. 그러다보니 공감의 폭을 키울 수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연극을 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우울증 회복하고 있어”
앞서 안티카는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대학로 이음아트홀과 소극장 플랫홈에서 ‘모두를 위한 자유: 2021 제1회 매드연극제’를 진행했다. 사회구조의 문제로 외면 받는 사회적 취약 당사자의 이야기와 다양한 정신적 장애 유발 요인을 논의한 예술 작품을 다뤘다. 이 자리에서 임 팀장과 최 씨는 ‘복녕당 아기씨’에서 함께 연기 호흡을 맞췄다. 부모의 독살, 강제 결혼, 강제입원, 이혼 등 비극적 삶을 정신장애 당사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복녕당 아기씨’에서 연기하며 연극제를 마친 소감은 역사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조선 마지막 공주인 덕혜옹주를 다룬 이야기여서였죠.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떠올랐죠. 일제에 맞서 싸운 이들의 고통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티카에서 수년간 활동하며 긍정적으로 변한 점도 많다. 우울증, 조울증 등 최 씨의 정신병력은 많았지만 어느 순간 마음이 놓아지고 편해지며 자가치료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팀원들이 저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회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임 팀장은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부분에서 변화를 느꼈다고 말했다.
“활동하면서 당사자 등 저랑 비슷한 점이 있는 사람들과 오프라인 관계를 쌓았어요. 또한 여기서 활동하면서 당사자들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는 점이 좋았죠. 일자리도 주어지고 연극 등 이것저것 해보고 행사에서 MC도 볼 수 있고요. 여러 가지 기회를 제공받으며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경험하는 게 굉장히 좋았어요.”
안티카는 올해 ‘매드프라이드’를 10월 10일 ‘세계 정신건강의 날’에 온라인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주목할 점은 이번 행사에서 메타버스(metaverser·현실에 기반을 둔 가상공간)를 도입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공연팀, 창작팀, 오브제 행진팀을 모집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메타버스를 구현할 예정이다. 또, 캐리커처를 그려줄 사람을 포함해 필요한 인력들을 대거 섭외하고 있는 중이다. 끝으로 임 팀장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예술 활동을 하는 이유는 학창시절 취약하다고 느껴졌을 때 예술이 저를 살아가도록 도와줬기 때문이에요. 당시 영화를 보며 살아갈 이유를 찾았죠. 예술은 절박하고 절실하면서도 뭔가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였죠. 연극마다 다양한 메시지를 가져갈 수 있긴 하지만 꼭 메시지를 특정하진 않아요. 예술 자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에도 희망을 품고 있다. 먼저 임 팀장은 글쓰기 활동에 집중할 생각이다. 최근 책을 출간하기도 한 그는 대학 시절 미처 다듬지 않은 글들을 발전시켜 창작활동을 이어나간다고 전했다. 또 스포츠를 좋아하는 최 씨는 비인기종목 스포츠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계획이다. 현재 유튜브 영상제작·편집 공부를 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원년멤버 김 씨는 안티카를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꾸준히 할 생각이다.
사회적 편견과 오해로 인해 상처받았던 이들이지만 긍정을 잃지 않았다. 스스로 강해졌다기보다는 당사자 등 다양한 소수자가 함께 모은 연대의 힘이었다.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함을 드러내며 예술을 펼치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에서 희망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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