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단원들을 만났다. 극단 목요일오후한시는 ‘플레이백 시어터’라는 즉흥 연극 형식을 기반으로 관객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상연하는 즉흥 연극 전문 창작집단이다.
극단 목요일오후한시는 ‘별 별 외로움’, ‘잠 못 드는 밤’, ‘노동과 마을을 잇는 드라마, 노마드 즉흥극장’, ‘즉흥극장<때>’ 등 다양한 주제와 레퍼토리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으며 다양한 일상적 대안 공간에서 대상 및 공간 맞춤형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권위 없는 수평적 관계…어떤 상황에서도 ‘제안과 수용’ 할 수 있어야 해요”
‘목요일오후한시’란 극단 이름은 2004년 어떤 예술학교에서 목요일 한시마다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있고 실험적인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것에서 유래됐다. 그때의 멤버들은 현재 극단에 있지 않지만 극단의 이름은 계속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저희가 하는 즉흥 연극 형식은 미국의 조나단 폭스라는 분이 ‘플레이백 시어터’라는 이름으로 만든 거예요. 관객을 인터뷰하고 그 자리에서 연극으로 보여주는 형식이죠. 처음에는 플레이백 시어터를 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발전시켰어요. 그 기간 동안 저희만의 메소드와 방식이 생겼기 때문에 ‘플레이백 시어터를 기반으로 하는 즉흥 연극’을 한다고 말해요.”
“원래는 돈 없이 하는 팀이었는데 공연을 하다 보니 사업자등록증이 하나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업자 등록을 하는 김에 돌아가면서 대표도 한번씩하고 이런 식으로 극단이 됐어요. 이러다 보니 보통 극단은 한 사람의 연출가가 이끄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에서 배우로 활동하면서 기획이나 연출 일은 돌아가면서 하는 편이에요.”
단원들의 나이는 제각각이지만 수평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모든 단원들은 이름 대신 닉네임을 사용한다. 서로가 자유롭게 의견을 내기 위해 그런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극단 목요일오후한시가 추구하는 즉흥극은 단순히 관객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배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유희적으로 해석하고 정서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연하는 시기나 장소 등도 연극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오늘은 카페에서 하는 공연이니까 장소에 어울리는 공연을 하려고 해요. 장면을 짧게 하고 카페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비중을 늘리는 거죠. 공간이나 대상 등에 맞춰 항상 다른 형식을 하려고 노력해요.”
공연은 요청이 들어오면 찾아가서 공연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공연은 무료다. 공연 요청이 많이 올 때도 있지만 공연 요청이 없을 때도 연극을 향한 배우들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일이 없을 때는 배우들이 쉬지 않기 위해 작은 서점을 빌려서 매달 한번씩 공연을 했어요. 최근 2~3년 동안은 자체적으로 큰 기획을 하기도 했죠. ‘노동과 마을을 잇는 삶의 드라마’라는 주제로 일하는 단체들을 찾아가거나 지역 사회의 작은 그룹들을 상대로 공연을 했어요.”
정해진 대본이 없기 때문에 공연 준비 또한 일반적인 연극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공연을 보는 사람들의 정서에 공감하기 위해 공연 대상과 주제에 맞춘 연구를 한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바로 연극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훈련을 한다.
“배우로서 서로 몸과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읽기 위한 과정들이 있어요. 쉽게 말하면 앙상블 훈련이죠. 척하면 척하고 나와야 하잖아요.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받아줄 수 있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너는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경지에 올라야 하죠. 그걸 ‘제안과 수용’이라고 해요. 충동이 오면 제안할 수 있고 제안이 오면 수용할 수 있어야 해요.”
극단 목요일오후한시는 계속해서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시도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에 맞춰 온라인으로 쌍방 소통하는 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제한이 있잖아요. 특히 쌍방 소통을 해야 하는데 관객들을 직접 보지 않으면 어려움이 많아요. 공연하기 전에 이야기가 쉽게 나오게 하기 위해 관객들과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데 온라인은 그게 어렵죠. 그래서 줌(화상 회의 소프트웨어)으로 먼저 관객들이랑 이야기를 하고 전화로 이야기를 전달받은 다음에 유튜브로 넘어가서 공연했어요.”
“지금 하고 있는 공연의 형식을 하나씩 깨는건 어떨까 생각해요. 지금 하고 있는 연극에서 더 다양한 변수를 주는거죠. 예를 들어 이제까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연극을 했는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동시에 듣고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이게 어떻게 보면 창의력 싸움이잖아요. 먼저 몸과 마음이 열려있어야 하고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유연한 생각을 할 필요가 있어요. 누가 주인공이 될지 상황을 누가 만들지도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단원이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하죠.”
“즉흥극의 매력은 순간순간의 에너지와 자유로움…현존한다는 기분 느껴”
즉흥극을 진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도 많이 생긴다. 무대로 올라온 관객이 자기는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거나 공연을 보고 나서 자기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할 때도 있다.
“초등학교를 찾아가서 공연한 적이 있는데 어떤 친구들은 인터뷰하기 쉽지 않아요. 언제나 예측 불허죠. 한번은 마이크를 주니까 ‘아, 아, 아’만 하더라고요. 연령에 따라 감각적으로 느끼는 재미나 공감할 수 있는 영역도 달라요. 그때 많이 고생했던 것 같아요.”
“무대에서 누가 대사를 했는데 이 사람이 뭘 하려고 하는지 도통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어요. 누가 갑자기 딱 튀어나왔는데 무슨 역할인지 모를 때도 있죠. 그러면 저희가 직접 누구세요? 하고 물어봐요.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다른 방향으로 장면을 전환하기도 해요. 다 같이 수습하는 거죠. 어제 단톡방에서 누가 ‘우리는 즉흥 깐부잖아’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모두가 ‘깐부’죠.”
목요일오후한시 단원들에게 즉흥 연극을 계속하게 하는 즉흥극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강경선 대표(33)는 공연할 때 느껴지는 자유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 있으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에요. 대본이 있으면 그 대본대로 수행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즉흥극은 누가 실수해도 그게 제안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되는 식이죠. 훨씬 더 자유롭고 관용적인 분위기에서 공연할 수 있어요.”
단원 배혜진(41) 씨는 즉흥극을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말한다. “연극을 하면 어떤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부분이 있잖아요. 저희는 연습 자체가 재밌어요. 연습 자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나 순간들이 매력적이고 무대에 서면 정말 현존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계획된 것들이 없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죠.”
“연습할 때 제 이야기를 하고 나서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나의 이야기가 거리를 두고 앞으로 펼쳐질 때 마법 같은 순간이 되더라고요. 좋았던 기억이든 나빴던 기억이든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고 나의 모든 감정이 존중받는 느낌이 있어요. 관객들도 그런 부분에서 감동을 하시더라고요.”
홍경아 단원(37)은 목요일오후한시 공연팀의 즉흥극을 보고 나서 느껴지는 감정이 좋아서 단원으로 들어왔다.
“제 친구들의 이야기가 연극이 되는 걸 봤는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마술같이 하지? 간단하게 이야기했는데 어떻게 저런 심리들을 찾아내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배우가 돼서 즉흥극을 같이 해서 관객들이 감동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 제가 정말 의미 있는 공연을 했다고 느끼죠.”
목요일오후한시 단원들에게 기억에 남는 공연을 하나 말해달라고 했다. 한 소극장에서 공연할 때 80대 할아버지가 주인공이 된 적이 있었다. 원래 공연을 보려고 온 사람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에 공연이 있다고 해서 공연장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때 주제가 ‘잠 못 드는 밤’이었어요. 잠 못드는 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했는데 많은 일을 겪어보신 분이잖아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전쟁도 겪고 하면서 늘 혼자 사셨다고 하더라고요. 후회되는 일도 많고 못다 한 이야기도 많아서 늘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고 하셨죠.”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슬로우모션으로 총알이 지나다니는 전쟁 장면을 묘사하고 다른 배우가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장면을 묘사했어요. 너는 혼자이지만 너는 잘 살아왔다는 내용을 연극으로 풀었어요. 어떻게 보셨냐고 했더니 눈물을 흘리시면서 자기가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자기 삶이 허투루 산 게 아니었다고 느끼셨다고 했어요. 공연을 보던 모든 사람이 숨죽이고 들으면서 공감하고 감동을 느꼈던 공연이었죠.”
마지막으로 목요일오후한시의 포부에 대해 물었다. 목요일오후한시 단원들은 연극이 우리의 삶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단원들은 연극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을 하다 보면 서로가 연결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돼요. 그런 역할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고요. 그런 믿음을 잃지 않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할 수 있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
“사실 연극 자체를 보려고 오는 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연극은 마이너한 장르고 저희는 그중에서도 마이너한 장르죠. 그런데도 연극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있고 연극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계속 연극을 할 수 있고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이런 행복을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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