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역사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문제와 갈등, 전쟁, 재해 같은 사건들은 스스로 절대자의 권위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에서 야기된 것들이죠. 저는 작품을 통해 이 욕망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길을 담고자 해요. 특히 저는 기독교 신자이기에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존재를 인정하고 모든 우주와 세상의 운영이 주권자 창조주에게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불안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믿어요. 또 이것이 삶을 살아가는 지혜의 근본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개인전과 아트페어 등을 통해 다양한 국내외 활동 펼치고 있는 김선혁 작가(37)는 한국 작가 최초로 상하이 에르메스 쇼윈도 전시를 통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해외 유명 호텔과 기관의 작품 소장, 두터운 해외 컬렉터 층으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지난 주 있었던 2021 대구아트페어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며 주목받는 젊은 조각가로 화제가 된 김선혁 작가의 작품들은 11월 12~27일까지 서울 삼청동 갤러리 아트비프로젝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인간 존재의 필연적인 불안에 대한 해답을 식물의 방식에서 찾아”
“많은 화가들이 그렇듯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집 앞에 예술고등학교가 있었는데 미술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그 학교로 진학했죠. 고등학교 1학년 때 동양화, 서양화, 조소, 디자인을 공부한 다음, 2학년부터는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데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너무 재밌었어요. 조소를 선택했고, 대학에서도 환경조각을 전공했죠.”
“작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대학교 3학년 때예요. 대부분 4학년 되기 전 진로를 선택을 하는데 저는 대학원에 가서 작업을 보다 심층적으로 연구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조소 전공이다 보니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어요. 조형물을 제작하는 일도 해보고 다양한 일들을 해봤는데 제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만드는 건 재밌지만 어디 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주문대로 제작하는 건 못하겠더라고요. 작가라는 직업은 잘 먹고 잘 사는건 포기해야 할 수 있다고 대부분 이야기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래도 해보기로 결심했죠.”
김 작가는 예전에는 작품을 잘 그리거나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공감을 얻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전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영감을 얻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사람들한테 단순히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영혼에 와 닿는 것을 중요시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는 쉽지 않지만 언젠간 사람들이 김 작가의 작품을 봤을 때 단순히 ‘잘 만들었다’ ‘예쁘다’가 아니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가슴에 와닿게 느껴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제 작품에는 식물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해요. 삶의 주권에 대해 가장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줄곧 인간의 존재를 식물의 모습으로 은유해 표현해오고 있죠. 식물의 시작과 끝 역시 인간과 다르지 않아요. 뿌리내린 곳이 스스로 원한 환경도 아니고 빛, 토양, 수분, 바람 등 삶을 위해 주어지는 조건들을 배제하면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살아갈 힘이 없는 불완전한 존재죠. 한 가지 인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교만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과 조건들을 수용하며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죽음 역시 겸허히 받아들이죠.”
“반면에 인간은 같은 상황에 놓인 존재로서의 모습을 부인하며 ‘나’ 자신이 주체가 되려는 끊임없는 욕망으로 인한 착오와 오류를 범하며 스스로를 불안과 두려움 속에 가둬요. 따라서 역으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식물의 방식처럼 불완전 존재로서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와 어떠한 상황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평안을 얻을 수 있어요.”
김 작가가 식물을 표현할 때 나뭇잎 보다는 빈 줄기를 표현한 이유는 겨울나무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풍성한 나뭇잎은 완벽해보이지만 그 나뭇잎도 지는 시기가 있다. 겨울나무는 잎이 다졌을 때 처량해 보이고 불완전해 보이지만 봄이 오면 새순이 돋아나며 따뜻한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준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이 작품에서 겸손함, 겸허함 이런 게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삶과 죽음에 대한 주권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을 알면 하루하루를 더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죠. 저는 이와 같은 인간 존재의 필연적인 불안의 원인과 해답을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찾아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과정에서부터 창조주를 외면하고 스스로가 창조주처럼 되길 욕망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창조주를 피해 숨으면서 불안은 시작됐죠.”
“어려운 주기 없이 앞으로도 꾸준히 작업하고파”
“작가를 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어요.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인데 진로를 결정할 때,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힘들죠. 작품이 팔려야 유지가 되기 마련이에요. 감사하게도 첫 개인전부터 작품이 팔렸고 그 다음에 개인전을 해주신다는 큐레이터 분이 나타났죠. 2011년에 첫 개인전을 해 어느 덧 10년이 돼 7번 정도 개인전을 했는데 매번 그런 게 아니고 잘 되는 주기가 있어요.”
김 작가는 잘 될 때도 있지만 전시회에 초대해도 사람들이 안 오고 작품을 찾는 사람도 없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시기가 길어지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이를 다 이해해주는 아내 덕분에 힘들어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까지 힘들만하면 작품이 어디선가 팔렸다는 소식이 들려와 감사하다고 전했다.
“미술 분야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저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AI가 나오면서 없어져야 하는 직업들이 나오고 있는데 작가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직업이에요. 특히 미술 작가는 그렇죠.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고 영혼이 담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AI는 영혼이 없어요.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사람들한테 전달하는 것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요즘 전시회나 아트페어를 가보면 어떤 작품이 잘 팔리는 지 이런 것들이 한눈에 들어와요. 그런 작품들을 보면 잘 팔리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죠. 그런데 미술 지망생들이나 젊은 작가들이 이를 보고 여기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팔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작업은 진짜 자기 작업이라고 하기가 어려워요. 작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고 작품에 어떤 가치관을 담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작가는 끝으로 어려운 주기가 없이 꾸준히 이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인 목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성이 깊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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