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긴축 등에 이어 루나(LUNC)·테라USD(UST) 폭락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코인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가격은 거의 반토막 이상 떨어졌고 ‘도박’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투자 상품으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규제 방안을 검토하는 재발 방지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디지털자산시장 관련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루나·테라 추락하자 가상자산 시총 폭락
1일 가상자산 정보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기준 루나의 가격은 0.0001024달러로 집계됐다. 5월11일 이후 거의 한 달 째 1달러 밑에서 맴도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 달 전인 4월29일(85.12달러)과 비교하면 무려 99.99%나 빠졌다. 1달러를 유지하던 테라USD도 지난달 4일 0달러대로 진입하더니 현재 0.02677달러까지 97.32% 떨어졌다.
루나와 테라USD는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가 발행하는 코인이다. 테라USD는 가치가 1달러로 고정(페깅, pegging)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법정통화에 연동하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루나와 1달러 가치로 교환된다. 테라USD의 가격이 1달러 밑으로 하락하면 루나의 수요·공급을 조절해 가격을 조정하는 구조다.
‘루나 사태’는 ‘디페깅(depegging, 코인 가치가 1달러 밑으로 하락)’ 현상으로 매도가 증가하고 루나 발행이 늘어나면서 루나 가격이 덩달아 폭락함에 따라 불거진 현상으로 해석된다. 디페깅 요인으로는 ‘앵커프로토콜(Anchor Protocol)’에서 발생한 대규모 인출이 주로 거론된다. 가상자산 시장이 약세로 전환하면서 투자자들이 앵커프로토콜에서 자금을 인출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금융정보분석원(FIU)도 루나·테라 가격 하락 원인으로 △실물경제 약화와 비트코인 하락세 △미국 스테이블코인 규제 시사 △테라 공격설 등을 지목했다. FIU는 “디페깅된 테라의 가격조정 알고리즘이 작동하지 않았고 테라를 예치하면 연 20% 고정 수익을 보장하는 서비스도 테라가 디페깅 되면서 예치 안정성에 대한 투자자 의심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피해 규모는 6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29일 루나의 시가총액은 6억6964만달러로 1개월 전(294억2085만달러) 대비 287억5122만달러(약 36조원) 빠졌다. 테라USD도 184억7886만달러에서 3억192만달러로 181억7695만달러(약 23조원) 증발했다. 국내로 한정했을 때 루나 시총은 3300억원(5월6일)에서 339억원(5월18일)으로 약 3000억원 감소했다. 루나를 보유한 국내 투자자는 사태 후 12일간(5월6~18일) 10만명에서 28만명으로 18만명 늘었다. 하락장에 해외유입물량 증가와 투기적 수요가 결합된 결과라는 평가다.
가상자산 시장 전체에도 충격을 줬다. 루나·테라 상장폐지 이후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대형 가상자산도 휘청거렸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비트코인 가격은 2만9445.96달러로 집계됐다. ‘루나 사태’ 직전인 5월6일(3만6040.92달러) 대비 18.3% 떨어진 수치다. 이더리움도 2694.98달러에서 1812.03달러로 32.8% 폭락했다. 1조6799억달러(약 2081조원)에 이르던 글로벌 가상자산 시총은 현재 1조2237억달러(약 1516조원)로 쪼그라든 상태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간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통화와 가치를 연동해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받았지만 ‘루나 사태’로 인해 ‘코인런(코인 보유자 대거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시총 규모로 스테이블코인 부문 1위인 테더(USDT)의 가격은 5월6일 이후 1달러 밑으로 추락했다. 지난달 29일 기준 0.9992달러다. ‘루나 사태’ 이후 약 3주 만에 108억달러(약 13조3758억원)가 빠져나갔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가상자산 시장의 영향력이 컸던 만큼 다른 자산시장으로의 전이 가능성도 면밀히 주시 중이며, 스테이블코인과 디파이(DeFi - Decentralized Finance 탈중앙화된 금융)의 규제 논의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라며 “스테이블코인과 경쟁관계를 보였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이고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으로의 쏠림 현상도 감지된다”고 진단했다.
“상장 및 투자자보호, 거래소 공동 기준 및 절차 마련해야”
금융당국은 루나사태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긴급점검에 나섰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지난달 24일 당정간담회에서 투자자 신뢰를 토대로 가상자산 시장이 책임 있게 성장하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다. 스테이블코인, 디파이(Defi) 등 금융시장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디지털자산 규율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국제금융기구, 미국 행정명령 등 각국 규제 논의 동향을 충분히 고려해 글로벌 규제 정합성도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번 테라·루나 사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최근 스테이블 코인과 디파이 등 새로운 가상자산의 등장으로 시장규모가 급증하면서 국제적으로 가상자산이 금융시스템 안정성, 소비자 보호, 통화·경제정책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검토가 활성화되고 있다”며 “이를 위해 투자자 보호 노력과 함께 국회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 논의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금감원)도 같은 날 가상자산시장 리스크 관리방안으로 국내 거래소에서 유통되는 가상자산의 위험도를 분석해 리스크 특성별로 분류하는 연구용역을 실시하기로 했다. 국내외 가상자산시장 전반에 대한 시장현황과 주요 변동사항, 해외 입법동향 등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이를 관계기관과 수시로 공유할 계획이다.
이찬우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해 그동안 주요국 감독당국들은 규제 필요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해왔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규제 필요성을 엄격히 검토하게 될 듯하다”며 “최근 유럽의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가상자산규제법안 MICA에서도 법정화폐 등 실질자산으로 담보되는 스테이블코인만을 규정하고 그 발행인을 금융기관에 준하는 수준으로 엄격히 감독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루나·테라의 폭락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규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신속히 제정해 코인 발행인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불공정거래를 제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가상자산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를 허용하기로 하면서 투자자 보호와 디지털자산시장 가치 창출에 대해 속도를 내야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24일 ‘디지털자산 시장의 현황과 주요 이슈’ 세미나에서 “루나·테라 사태는 탈중앙화된 가상자산의 경우에도 자금 조달의 이익을 누리면서 동시에 책임을 부담해야 할 법적 주체가 존재하고 이를 제도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스테이블코인의 전형적 투자위험과 테라의 고유한 투자위험에 대한 최소한의 공시가 있었다면 극단적 낙관론이 루나·테라 거래시장을 지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디지털자산시장 관련 입법을 통해 △공시주체로서의 발행인 정의 △백서(공시)의 국문화 △불공정거래의 유형화 △가상자산거래업자의 이해상충 구조 최소화 △상장기준 및 절차의 거래소 규정화 등 필수적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탈중앙화의 장막’ 뒤에서 가상자산시장 플레이어로서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익을 얻는 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분산원장 기술 기반의 탈중앙화된 유사금융행위에 대해서는 금융규제에 준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는 거래소별로 적용하고 있는 가상자산 상장 및 관리, 상장폐지, 투자자 보호 기준 및 절차에 대해 거래소 공동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적용할 수 있는 대안부터 모색해야 한다고 김 연구원은 강조했다. 그는 회원사 간 합의를 통해 6월 중순 정책포럼을 개최한 뒤 빠른 시일 내에 상장 및 상장 후 관리 등에 대한 공동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강성후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장은 “루나·테라 코인 대폭락 과정에서 각 거래소별 대응이 달라 투자자들에게 혼선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피해를 키웠다”며 “이용자들의 투자 여부 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상장 심사 기준, 상장 후 유의종목 지정, 거래지원 및 입출금 중단 등을 대상으로 공동 가이드라인 제정에 나서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강회장은 이어 “기존 회원사 중심으로 진행해 나가면서, 희망거래소들을 대상으로 참여거래소도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5개 원화 거래소들이 마련하려는 ‘상장 후 관리방안’인 유의 종목 지정, 거래지원 중단, 입출금 중단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함께 이용자들의 투자 결정에 핵심적 요인인 상장 가이드라인도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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