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자’는 다수당 폭력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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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세상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4-06 08:32:16

‘법대로 하겠다’는 말이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이 된 세상이 되었다. 힘으로 밀어붙여 법안을 만드는 일은 일상이 되었고, 앞뒤 안맞는 판결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법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분란과 갈등의 원인으로 둔갑하고 있다. 야만과 암흑의 시대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검수완박’ 법이 절차는 잘못되었지만 결과는 유효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지나가던 여자를 욕보이기는 했지만 성폭행은 아니다’고 우기는 것이나 다름없고 ‘집 안에 무단으로 들어온 괴한이 물건을 훔쳐 갔지만 도둑은 아니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형사법의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이나 검찰이 수색영장 없이 피의자의 집이나 사무실을 덮쳐 얻은 자료는 증거로 쓸 수 없다. 절차의 정당성을 지키지 않은 증거는 증거력이 없기 때문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해당 형사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도 그 혐의를 증명할 객관적인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그 증거를 법적으로 재판소에 제출할 수 없는 경우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다. 분명하면서도 정당하게 얻은 증거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형사사건을 넘어 시시비비를 다투는 일의 기본 조건이고, 일반인들이 믿고 있는 상식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최상위 법률 기관이다. 불편부당하며 오로지 법리에 맞는 판결만 하며 당연히 그렇게 할 거라고 국민은 믿는다. 보통 사람들조차 가슴답답한 일이 생기면 ‘법대로 하자’며 시시비비의 판단을 법에 맡길 정도이니, 그 법의 맞고 틀림을 가리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한 사람마다의 전문성과 권위는 비견할 데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단이 일반인의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오직 법리만을 따진 것이 아니라 정파의 이익을 계산에 둔 정치적 판단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권위와 명예를 뿌리째 흔들었다. 특정 기관의 잘못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법률의 신뢰와 권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서를 당시 검찰이 가짜로 만들어 제출한 것에 대해서도 담당 판사는 무죄 선고했다. 혐의만으로 부당하게 출국을 금지한 것은 재량범위를 벗어나지만 긴급한 상황이었으므로 구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이를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다. 절차는 잘못됐지만 결과는 정당하다는 궤변이다.

대장동 사건에 연루된 곽상도 전 의원 사건에서 아들이 받은 50억 원이 곽 의원의 대장동 관련 알선 행위의 대가나 뇌물이 아니란 판결이 내려졌다. 독립된 경제생활을 하는 아들이 받은 돈을 아버지의 뇌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석 수를 앞세워 도무지 사리에도 맞지 않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논란이 된 검수완박 법은 법리의 모순과 입법 과정에서의 변칙, 탈법 행위들로 이미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또 그 전의 선거법 개정,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를 바꾸는 방송법개정안, 쌀 초과 생산분을 정부가 의무 매입토록 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화물차 안전운임제의 일몰을 3년 연장하는 법안, 대통령의 사면권제한 법안,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을 제한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대통령의 국가 인권위원 지명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우리나라가 해외 국가와 맺는 조약 문안을 해당 국가와 교섭 전에 예고하고 공청회를 개최하도록 하며, 협상의 주요 진행 상황을 사전에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조약체결절차 법안, 대통령 윤석열의 배우자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비롯 한·일 정상회담 국정조사 등을 발의하거나 상임위 통과를 시도하고 있다.

제대로 된 여야 간 논의나 공청회도 없고, 정상적인 법안으로 공표될지도 알 수 없는 사안들이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밀어붙여 보자는 심산이거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박해받는 야당이라고 정치선전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당 대표의 각종 법률 시비를 덮기 위한 맞불 작전인지 속내를 가늠할 길이 없다.

국회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법을 존중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균형 잡힌 판단을 해야 하는 사법부가 자기 편으로 기우는 오늘의 현실은 나쁜 영화보다도 더 지독하다. 영화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촬영이라도 하지만 현실은 되돌릴 수 없다. 대한민국을 무법 국가로 만들려는 것일까. 그 정도로는 끄떡없다고 믿는 걸까?

조희문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