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서 만나는 이건희컬렉션 ‘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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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서양화단 시대별로 감상… 여성화가 따로 마련
경기도미술관 현장발권 입장… 8월20일까지 열려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7-12 09:08:43

▲ 관람객이 방혜자의 ‘우주의 춤’(2010, 부직포에 천연채색, 195x27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을 감상하고 있다. 임유이 기자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283점이 2021년 4월 국립 중앙박물관·국립 현대미술관·지역 미술관에 나눠 기증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전 세계의 진귀한 미술품을 국내에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진행했던 이건희컬렉션을 놓쳤다면 경기도 안산 공립 경기도미술관을 방문해보자. 경기도미술관은 국립 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11곳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을 통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했다.

국립 현대미술관 전시 때와 달리 이번 전시에는 온라인 예약 발권이 아닌 현장 발권으로 변경해 관람이 더욱 편리해졌다.

▲ 김기창 ‘소와 여인’(1960년대 초, 종이에 채색, 221x169.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사계’라는 제목은 이탈리아 비발디의 곡에서 따온 것으로 사계가 고전이 된 것처럼 이번 전시회의 참여 작가들도 한국 근현대미술에 고전이 될 만한 수작을 남겼다는 의미다.

사계는 시간성을 내포한 의미지만 이번 전시는 새롭게 해석한 계절 이야기를 중심으로 파트가 나뉘어진다. 첫 파트인 ‘새로운 계절’은 20세기 초 서양미술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은 조선 화단을 중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당시 해외 유학을 다녀온 화가들은 근대적 개념인 ‘미술’과 전통적 ‘서화’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서양의 기법을 체화하여 이를 동양적 전통과 조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1세대 서양화가인 이종우를 비롯해 김종태·구본웅·이인성·이쾌대는 서양화 기법으로 전통적 주제를 다뤘다. 특히 이인성은 선이 굵고 불투명한 수채화 기법을 선보여 조선의 고갱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 시기 김기창과 이응노는 전통 회화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백남준은 미디어와 동양적 성찰을 융합을 꾀했다.

▲ 오지호 ‘여수항 풍경’(1978, 캔버스에 유채, 90x64.7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연은 예술가의 사상을 반영하거나 심상을 표현하는 중요한 대상이다. 둘째 계절인 ‘자연으로부터’ 파트에서는 근대적 화법으로 한국의 산수를 그린 이상범·노수현·변관식과 정물을 고전주의 화풍으로 표현한 도상봉, 한국적 풍토에 맞는 인상주의 미술을 구현한 오지호와 만날 수 있다.

1926~1931년까지 도쿄 미술학교에서 인상주의 화풍을 체득한 오지호는 세상을 떠난 1982년까지 인상주의를 고수했다. 그의 ‘여수항 풍경’은 푸른 바다에 떠 있는 고깃배와 사람을 투박하게 표현함으로써 풍경이 아닌 삶의 현장으로서의 여수를 보여주고 있다.

▲ 관람객이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정숙의 ‘키스’와 ‘비상’을 감상하고 있다. 임유이 기자

‘또 하나의 계절’ 파트는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여성 작가의 작품을 모은 것이다. 남성 작가 중심으로 추동되어 왔던 한국 근현대 화단에서 나혜석은 국내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타이틀을 거머쥐며 고군분투했다. 국내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정숙 외에 여성만의 고유성을 구현한 박래현·천경자·방혜자의 작품과 만날 수 있다.

‘향수의 계절’은 국권 강탈과 전쟁이라는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은 ‘요철기법’으로 알려진 박수근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한국의 화강암과 우리네 여인의 강인한 생명력의 대비를 잘 보여주고 있다.

▲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1957, 캔버스에 유채, 130x97,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중섭의 ‘오줌싸개와 닭과 개구리’는 6·25전쟁 중 피란길에 제작한 작품으로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장욱진의 ‘까치’는 평생을 추구한 단순함의 가치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마지막 파트인 ‘봄·여름·가을·겨울·봄’은 아무리 계절이 바뀌어도 항상 시작과 끝은 봄인 것처럼 한국 회화의 낙관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김환기의 작품 중 화면을 네 개로 분할한 ‘Untitled’는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작품으로 팽창과 수렴을 반복하는 우주의 질서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