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잼버리보다 새만금 땅 넓히기... 전북도 ‘잿밥’만 눈독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행정·자치

2015년 日간척지 잼버리대회 비교하며 ‘새만금, 풍성한 숲 공간’ 약속
전북도 7년간 350억 원 ‘시설비 예산’ 쏟아부어… 나무 심기 실패
“염분 빠지려면 5년 걸려… 새만금 땅 확보에 잼버리 이용한 것”

장혜원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8-10 21:46:47

▲ 2019년 전북도의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최지 구상도(위)를 보면 모두 풀숲으로 돼 있으나 이달 1일 공개된 실제 야영지(아래)엔 나무 한 그루 없이 엉성한 '인공넝쿨'뿐이다. 애당초 농업용지로 조성된 곳이라 배수가 어렵고 벌레가 들끓는다. 사진=전북도·연합뉴스

“지난번 일본 야마구치현잼버리 장소도 간척지였다. 낮 기온이 35~40도, 습도도 80%까지 치솟았다. 벌레물림 역시 새만금보다 훨씬 심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온열질환자가 대량 발생하지 않았다. 나무 그늘이 충분해서 쉴 수 있었고 화장실 샤워시설 등이 잘 구비돼 위생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2023새만금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참가자 한 명이 8년 전(2015년 7월28일~8월8일) 일본 야마구치현 키라라하마에서 열린 제24회 잼버리대회와 비교하며 이렇게 평가했다. 이번 ‘새만금 사태’의 본질을 ‘나무 그늘’의 있고 없음으로 본 것이다. 매년 8월 초 열리는 잼버리대회에서 폭염은 '상수'다. 주최지 전라북도가 ‘풍성한 숲 공간’ 조성을 약속하며 예산까지 받아갔으면서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일 본지가 대회 파행의 시초가 된 ‘허허벌판, 발이 푹푹빠지는 야영지’의 이유를 찾고자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전북도는 2015년 일본 대회 사례를 들어 그늘 등 휴식 장소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잘 자라는 나무를 잼버리 야영장 곳곳에 심기로 했으며 토질 개선과 배수로 설비 확충을 다짐했다. 전북도가 2019년 공개한 2023새만금잼버리대회 장소 조감도에서 야영지는 ‘풍성한 숲 공간’으로 계획돼 있었다.

대회가 개막되면서 드러난 새만금 야영장은 당초의 조감도와 정반대 모습이었다. 일단 농업용지로 조성된 탓에 물 빠짐이 원활하지 않았다. 지면이 물러 텐트 설치조차 어려웠으며 침수 우려도 높았다. 추가 공사를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나무 대신 궁여지책으로 설치된 게 ‘인공 넝쿨’이었다. 태풍 소식에 8일 조기퇴영이 결정돼 대회 파행의 영향을 줄일 수 있어 차라리 다행이라고 보기도 한다. 애당초 야영에 부적절한 땅인데다 설비마저 부족했으니 예고된 인재(人災)나 다름없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 새만금 매립지(위)엔 이번 잼버리 야영지(사진 아래)와 달리 2010년 매립 후 염분이 빠져 나무가 자라고 물빠짐이 좋은 곳도 있다. 여의도 면적 140배에 달할 4만㏊ 이상의 농생명농업지대엔 밀과 귀리 등이 자라고 있다. 새만금 간척지를 늘리기 위해 잼버리대회를 이용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연합뉴스

나무 한 그루 없는 야영지에 대해 익명의 전북도 관계자가 ‘염분’을 탓했다. “1년에 2m씩 자라는 미루나무를 잼버리 부지에 심으려 했으나 염분농도가 높아 불가능했다”고 한다. 전북도와 운영위 측이 2020~2022년 행사장 주변에 나무심기를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대한 예산이 집행됐다. 조직위원회의 예산사용 내역을 보면 시설비 무려 130억 원, 활동장·배수시설·대집회장 조성에 약 100억 원을 썼다.

갯벌을 퍼 올려 조성한 새만금 간척지엔 육상식물이 자라기 힘들지만 영원히 그렇지는 않다. 바닷물 염도인 3%가 0.2% 이하로 낮아지면 된다. 조성된 지 5년 이후부터 염도가 점차 낮아지며 유기물 함량이 높아진다. 1991년 11월 착공된 새만금 간척은 19년 걸려 2010년 4월 준공돼 식물 재배가 가능해진 구역도 있다. 2020년 말 기준 3155ha(33%) 기준 농업특화단지(680ha) 대학시험포(170ha) 조사료재배지(2285ha) 등이 운영 중이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2008년 조사지역에서 염분농도가 0.2% 이하인 계화간척지는 10%에 불과했으나, 2020년 말 이래 90% 이상이 염분농도 0.2%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새만금간척지 인근에서 살아 온 한 주민은 본지에 이렇게 밝혔다. “새만금 간척지 일부가 이미 2010년 중반부터 농사짓기 좋을 만큼 염분이 빠져 밀·귀리 등을 재배하고 있다. 신포항 근처는 완전히 풀밭이다.” 다만 그 이외의 지역이 잼버리대회장으로 선정된 것이다.

새만금잼버리 장소에 나무를 심지 못한 진짜 이유는 이곳이 2020년 2월~2022년 12월 매립된 ‘신생 토지’였기 때문이다. 세계적 야영축제에 물 빠짐이 어려운 ‘농업용지’를 택한 것이다. 관련 사정에 밝은 한 취재원이 “전북도가 ‘잼버리’를 내세워 땅을 새로 매립했고 사실상 나무가 자랄 수 없는 토지에 야영장 조성을 강행한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만금 땅을 넓히기 위해 잼버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 취재원에 따르면 전북도는 새만금프로젝트를 2050년까지 4단계에 걸쳐 수조 원대 예산으로 추진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잼버리가 ‘새만금 홍보’에 활용됐을 뿐이다. 이미 풀숲을 이룬 ‘무주’가 있었지만 제외된 이유다. 이번 사태의 근본이 뿌리 깊은 ‘지역 이기주의’와 맞닿아 있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장혜원 기자 hyj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