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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을 끌어온 쌀개방 논란이 다시 점화됐다. 정부는 수입의무량 증가 등의 이유를 들어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농민단체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식량주권을 포기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사진은 벼를 수확하기 전 한 농가의 논 모습. ⓒ스카이데일리
20년을 끌어온 쌀개방 유예가 종료 6개월을 눈앞에 두고 쌀개방 논란이 재점화됐다.
정부는 유예기간이 길어질수록 의무수입물량이 늘어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입장이다. 반면 농민단체 등 시민단체는 식량주권을 잃는 결정이라며 정부의 쌀개방안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한국은 1994년, 2004년에 두 번에 걸쳐 10년씩 쌀개방을 유예해왔다. 2004년 결정된 유예는 2014년 12월31일 종료되며 2015년부터 대한민국 쌀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정부는 9월말까지 WTO에 쌀개방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대한민국은 쌀시장을 개방하느냐, 현행을 유지하느냐 하는 두 가지 기로에 서있다.
정부, “더 이상 유예 불가, 의무수입량이 농가피해 늘려”
정부의 입장은 쌀 관세화를 막는 대가로 의무수입량을 계속 늘리는 것보다 관세화를 받아들이고 수입쌀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정부는 쌀 관세화가 대한민국의 실익에 부합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의무수입물량을 더 이상 크게 늘릴 수 없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장관은 “더는 쌀 관세화를 유예할 수 없는 입장이다”며 “농민의 불안심리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서 해결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 자료: 농림축산식품부 ⓒ스카이데일리 <도표=최은숙>
농식품부는 수입쌀에 300~500%의 고관세를 적용하면 안정적으로 수입쌀을 관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유는 시장개방을 하면 관세가 유일한 국내 쌀 시장의 방어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400％ 대의 관세율 부과가 현실적이라고 전망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장의 일반적 예측수준에서 관세율이 매겨질 것이다”며 “협상을 통해 고율의 관세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미리 관세율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관세화는 수입하는 물품의 국내·외 가격 차이만큼 관세를 매겨 물량 제한 없이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는 시장개방을 의미한다. 쌀 관세화란 쌀에 관세를 붙여 전면 수입을 개방한다는 뜻이다.
관세율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정문이 명시한 내용으로 국내가격과 국제가격의 차이를 국제가격으로 나눠서 구한다. ‘(국내가격-국제수입가격)/국제수입가격×100%’를 통해 관세율을 결정하게 된다. 국제가격이 낮고 국내가격이 높으면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
▲ 자료: 농림축산식품부 ⓒ스카이데일리
한국은 지난 20년간 쌀 시장 개방을 연기해온 대가로 해마다 외국산 쌀수입을 의무적으로 늘리고 있다. 1995년에 5만톤이던 수입물량은 올해 40만톤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40만톤은 전체생산량의 9%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현재 연간 의무수입량은 40만톤이지만 개방을 미룰 경우 그 두 배인 80만톤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농가타격이 불가피하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는 “수입쌀은 도정 후 1년씩 걸려서 국내로 들어오다 보니 국내 쌀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며 “저품질로 인기가 없어 매년 재고 물량이 늘고 덩달아 관리비용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민단체, “식량주권 포기, 퍼주기 협상 비난 면치 못해”
정부의 논리와는 다르게 농민, 시민단체 등은 쌀개방 반대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반대의견은 지난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 ⓒ스카이데일리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정부방안이 식량주권 포기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정부의 쌀시장 개방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다”며 “쌀 시장 전면개방 추진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올해 말 관세화 유예가 종료된다해도 반드시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현행유지, 관세화 유예 등 여러 가능성을 두고 협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국내 쌀농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은 관세화 유예를 유지하면서 의무수입 물량도 더 늘리지 않는 것이다”며 “현상유지 선택은 WTO 회원국의 정당한 권리인데 정부가 그렇게 못한다면 퍼주기 협상이란 비난을 면치 못 할 것이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0일 열린 ‘WTO 쌀 관세화 유예종료 관련 공청회’에서는 쌀 개방을 놓고 정부, 농민, 전문가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며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회의원 사이에서도 쌀개방에 대한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 중 여당 의원들은 찬성, 야당 의원들은 반대성향을 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수입쌀에 적용할 관세율 등 개방의 구체적인 내용을 국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회총연맹 식량주권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식량주권 실현’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8일에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쌀 전면개방 저지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개최됐다.
행사에 참여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한국가톨릭농민회, 통합진보당, 대학생들은 “정부는 쌀 시장 개방 추진을 중단하고 쌀 보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참가자들이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강제 해산시켰다.
한편 정부는 지난달 30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쌀 관세화 유예종료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예정됐던 쌀 관세화 여부에 대한 정부 입장 발표는 국회 공청회를 거쳐 빠르면 다음 달에 발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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