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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의 작가노트] 죽은 새가 이어 준 인연
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22 06:30:30
 
▲ 임요희 시인·소설가
1965년 북한의 농부가 밭에서 일을 하다가 발목에 금속 가락지를 단 죽은 새를 발견했다. 사람도 아닌 새가 반지를 끼고 있는 게 신기했던 농부는 북한 조류연구소에 이 일을 알렸다. 농부가 전달한 새는 북방쇠찌르레기였다. 가락지에는 새의 고유번호 C7655가 새겨져 있었고 이 번호로 새의 출처가 일본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북방쇠찌르레기는 이름처럼 한강 이북의 북방 지역에서 서식하는 새였다. 북한의 조류학자 원홍구는 일본에 이 새가 산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즉시 모스크바를 통해 현지 연구소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연락이 오기를 가락지를 단 새의 출처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했다. 당시 한국은 자체 고유번호가 없어 일본 것을 같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 학자는 가락지를 달았던 원병오 박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원병오는 대번에 북한 노학자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직감했다. 그는 모스크바를 통해 아버지에게 편지를 전달했고 아버지는 생사가 끊겼던 아들이 남한의 조류학자가 된 것을 알고 뛸 듯이 기뻐했다. 죽은 새 한 마리가 전쟁으로 끊겼던 부자의 끈을 다시 이어 준 것이다.
 
1927년 개성에서 태어난 원병오는 김일성대학 농학부 축산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조선인민군에 징집되었다. 가까스로 탈영에 성공한 그는 월남하여 육군 포병장교로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 후에는 경희대학교 생물학과를 거쳐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원병오 박사는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1989년 국제조류보호회의 아시아 지역 회장을 지냈다. 분단으로 몸은 떨어져 있어도 아버지와 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조류학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병오는 폴란드 학자들을 통해 북에 있는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듣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원홍구 박사는 아들의 생사를 확인한 날로부터 5년 뒤 북한 땅에서 숨을 거두었다.
 
▲ 북방쇠찌르레기가 죽을힘을 다해 날아간 것은 아버지에게 아들의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두 사람의 기막힌 이야기는 1993년 북·일 합작영화 버드로 영화화되었다. 북한에서는 림종상 작가가 이 이야기를 소설로 썼으며 일본에서는 엔도 키미오가 아리랑의 파랑새라는 논픽션 책을 냈다.
 
새는 특별한 동물이다. 희망과 자유의 상징이며 어느 지역에서는 사람의 영혼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들의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북방쇠찌르레기는 죽을 힘을 다해 그 아버지에게 날아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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