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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의 스파이 세계] <19> 소련 최고 여성 스파이는 평범한 주부 ‘소냐’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14 06:30:50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영국 정보부(MI5)는 2차 세계대전 중 시작된 소련 암호통신 해독작전인 ‘베노나작전’팀으로부터 런던의 소련국 정보국(GRU)기지 본부에서 모스크바로 전송된 암호전문에서 매번 등장하는 암호명 ‘소냐(Sonia)’에 관한 자료를 제공받아 추적했다. 1959년에서야 15년간 GRU 스파이로 암약한 ‘우슬라 마리아 쿠친스키’(Ursula Maria Kuczynski)를 찾아냈다. 그리고 1959년에야 15년간 GRU 스파이로 암약한 ‘우르술라 마리아 쿠친스키’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녀가 1950년 동독으로 도주하기 전까지 영국 경찰은 여러 차례 간첩 신고를 받았으나 두 아이를 양육하느라 찌들어 있는 너무 평범한 가정주부의 모습을 보고는 현장 조사를 하고도 발길을 돌렸다. 또한 그녀에게 원자폭탄 정보를 제공했던 클라우스 푹스(본지 스파이세계 제7회 연재)와 또 다른 하부망인 알렉산더 푸트가 검거되어 1947년 그녀의 정체가 드러났는데도 MI5의 무능으로 그녀는 수사망에서 빠져나갔다.
 
▲ 암호명 ‘소냐(Sonia)’로 암약했던 우르술라 마리아 쿠친스키. 필자 제공
쿠친스키는 ‘루스’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는 그녀가 회고록(1977)과 어린이 동화를 집필했을 때 사용한 필명이다. 
 
그녀는 1907년 독일 베를린에서 유복한 폴란드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산주의자로 옥스퍼드대학 등에서 경제학을 강의한 저명한 교수였다. 그의 6명 자녀 중 5명이 공산당에 가입할 정도로 열혈 공산주의 집안이었다. 쿠친스키는 중학교 다닐 때 좌파 노동단체 활동을 했고 18세 되던 1926년 독일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쿠친스키는 뉴욕의 서점에서 일을 했다. 거기서 건축학을 전공한 첫 남편(루돌프 함부르크)을 만나 결혼했다. 이후 베를린에 돌아온 그녀는 마르크스주의 노동자 도서관을 설립하고 당 기관지인 ‘적기’(赤旗·Rote Fahne)에 글을 쓸 정도로 열성적인 공산주의자였다.
 
1930년에 남편이 상하이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중국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그녀는 소련의 전설적 스파이 조르게(Richard Sorge·본지 스파이 세계 제6회 연재)와 연결되어 GRU 요원으로 스파이 활동을 하게 된다. 1934년에는 아들을 시댁 부모에게 맡기고 3개월간 모스크바로 가서 GRU 스파이교육을 이수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녀의 암호명은 ‘소냐(Sonja)’였다. 그녀는 소련의 지령에 따라 중국 공산주의자들과의 비밀 회합을 주선하고 각종 무기를 지원하고 중국공산당원을 은닉시켜 주는 등의 활동을 했다. 또한 엄청난 분량의 각종 정보를 수집해 소련에 송신했다.
 
쿠친스키는 폴란드·스위스 및 영국으로 이동하며 스파이로 암약했다. 1939년 9월 독일군이 폴란드 단치히를 점령하자 그곳에 급파되어 스파이 활동을 전개했다. 그 공으로 소련이 붉은 깃발 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는 소련의 유럽 정보네트워크인 ‘레드 오케스트라’의 영국망과 ‘루시 스파이 링’의 스위스망을 구축했다.
 
쿠친스키는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경력의 공산주의자였던 영국인 비어튼과 재혼하며 영국 국적을 획득했다. 남편 비어튼은 영국 공군의 부사관이었다. 그녀는 옥스포드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영국 상류사회와 교류하고 있던 아버지로부터 고급 정보를 입수했고 또한 미국 OSS(전략정보국·CIA의 전신) 요원이 된 오빠 위르겐(항공분석가)으로부터 각종 정보를 빼내 소련에 보고했다. 또한 1941년경 독일계 영국 핵 과학자인 클라우스 푹스를 포섭해 원자폭탄 핵심 정보를 소련에 제공했다. 그녀의 정보는 로젠버그 부부가 제공한 정보보다 훨씬 가치있는 핵 정보였다고 평가된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소개받은 영국 공군장교·잠수함 레이더 전문가·OSS 요원·핵과학자들로 하부 정보망을 구축해 운영했다.
 
소련은 그녀의 정보를 기반으로 1945년 훈련된 스파이들을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 낙하산으로 침투시켜 전쟁 장비와 무기 체계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고 무선으로 작동되는 통신기를 통해 지상에서 공중으로 폭격 지점을 송출하도록 함으로써 공중 작전을 성공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다.
 
▲ 쿠친스키는 1977년 ‘소냐 보고서’라는 자서전을 발간했다. 필자 제공.
1946년 GRU는 쿠친스키의 정체가 드러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녀와의 연락을 단절했다. 쿠친스키는 1947년부터 MI5의 조사를 받았다. 그녀의 하부망인 클라우스 푹스와 알렉산더 푸트의 정체가 드러나 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사 당시 그녀는 일관되게 두 아이의 양육과 가사에 전념하느라 정신없는 주부 코스프레 연기를 해냈고, MI5는 그녀가 소련과  연계되어 있음을 파악했음에도 그녀의 역할에 회의를 품고 사법처리를 하지 않았다. 
 
1950년 3월 그녀는 드보크(간첩장비 비밀 매몰지)에서 GRU의 도피 암호 메시지를 발견하고 영국에서 도주했다. 그 후 서베를린을 통해 동베를린으로 넘어가 그곳에 안착했다.
 
그녀는 1931년부터 1946년까지 약 15년에 걸쳐 소련 GRU 요원으로 암약했다. 소련은 중국·폴란드·스위스·영국 등에서 첩보망을 구축·운영하며 성공적으로 첩보 업무를 수행해 온 쿠친스키를 GRU 역사상 가장 뛰어난 최고의 여성 스파이로 평가했다. 그 공으로 그녀는 소련 최고 군사훈장인 ‘붉은 깃발 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고, GRU 대령으로 추대되었다.
 
쿠친스키는 1977년 ‘소냐 보고서’라는 자서전을 발간했다. 이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를 저술해 작가로서 인기를 누렸다. 그녀는 2000년 7월7일 베를린에서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2002년 7월23일자에 그녀의 사망기사를 보도했을 정도로 유명한 스파이였다. 
 
한 정치평론가는 그녀를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공산주의에 일생을 바친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통상 여성 스파이하면 미인계 공작을 떠올리지만 쿠친스키는 키 작고 뚱뚱한 평범한 외모의 주부로 신념에 따라 충실히 스파이 업무를 해 온 세계 최고의 여성 스파이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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