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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이 기자의 책캉내캉] 재미교포 마이클 이의 美 CIA 40년 숨 막히는 증언 ‘CIA와 대한민국’
한국계 CIA 요원이 90평생 체험하고
기록한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
마이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15 19:47:36
 
▲ 한국계 CIA 요원이었던 마이클 이와 그가 펴낸 'CIA와 대한민국'. 도서출판 스카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40년 가까이 근무하며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 현장을 온몸으로 체험한 재미교포 요원 마이클 이(91·Michael P. Yi) 박사의 회고록이 출간됐다.
 
신간 ‘CIA와 대한민국: 연방정부 공무원 40년 마이클 이 박사 생생 증언’(도서출판 스카이)의 저자는 1933년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태생으로 고등학교 2학년이던 17세 때 6·25전쟁을 겪었다.
 
3개월간 인민군 치하에 있는 동안 그는 그들이 자행한 끔찍한 일들을 직접 목도했다. 이 일은 그가 전 생애를 바쳐 공산주의에 맞서는 계기가 되었다.
 
통역관에서 502군사정보단 심문관으로
 
군 입대 후 저자는 대구 부관학교 군사영어반 1기 이수 후 육군 최초의 사병통역관이 되었다. 그리고 육군군사정보대를 거쳐 19589월 미8528군사정보대에 심문관(CMSCritical Military Specialist)으로 파견 배치됐다. 훗날 502군사정보단으로 개편되는 이곳에서 그는 158개월 동안 대공(對共) 업무를 담당했다.
 
502군사정보단은 ABC 3개 중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저자가 활동한 A중대는 한미 합동으로 북한 귀순병 귀순 민간인 자수 간첩 체포 간첩 송환 어부들을 상대로 심문(審問)작업을 했다. B중대는 미군 단독으로 방첩 활동을, C중대는 미군 단독으로 비밀리에 대북공작 활동을 했다.
 
당시 미군은 미양해각서에 따라 대공수사대공정보 활동을 주도적으로 진행할 권리가 있었다. 모든 비용은 미국 정부가 감당하되 한국 정부는 미군이 주도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거물 간첩 황태성 송추 무장공비 무장 공비 김신조 전향한 북한 조종사 박순국을 심문하는 등 분단 시대 대한민국 중요한 사건의 한복판에는 늘 그가 있었다. 영화로도 제작된 실미도 사건의 심문관이자 목격자로서 그의 기록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값진 증언이 아닐 수 없다.
 
1974502군사정보단의 부대 업무가 한국의 정보사령부(정보사)로 이관되면서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편지 한 통으로 정식 CIA 요원이 되다
 
미국 이민 후 그는 2년 동안 백화점 점원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조지 H. W. 부시 당시 CIA 국장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502군사정보단 출신의 자신을 백화점에 두는 것은 인적 자원 낭비이고, 미국 정부가 보석 세공을 채석장에 맡기는 것과 같은 처사라는 요지의 글이었다.
 
편지를 보낸 지 며칠이 지났을까? 그쪽에서 보자는 연락이 왔다. 약속 장소에 나가니 CIA 간부 세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조지 부시가 당신의 편지를 직접 읽었다. 동아시아 공작처장에게 서둘러서 만나보라고 지시했다. 당신이 충분한 자격을 구비하고 있다면 시민권이 없어도 채용할 계획인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며, 동아시아 공작처에서는 마침 당신과 같은 인재를 찾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마이클 이는 1976년 정식 CIA 요원으로 채용됐다. CIA에서 그가 맡은 임무는 502군사정보단 근무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국을 포함해 24개국에서 파견 근무를 했다. 특히 신상옥최은희 부부 KAL기 폭파범 김현희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황장엽 씨와 같은 주요 인물을 직접 만나 조사한 일은 두고두고 기억할 만했다.
 
그는 2000년 은퇴할 때까지 약 40년을 CIA 등 미국 연방공무원으로 일하며 대한민국 관련 사건과 인물을 다루었다. 무엇보다 9년간 한국 근무는 본의든 타의든 그를 대한민국사의 산증인으로 만들었다.
 
그의 여러 증언 중에서도 더욱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것은 광주 5·18 사건에 관한 것이다. 그는 40년이 훨씬 지난 현 시점에도 논란이 분분한 5·18에 대해서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CIA 정보를 근거로 검증된 역사적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5·18에 대해 논하는 건 일종의 금기다. 그저 무조건 찬양하고 무조건 빌어야만 하는, 국민을 향해 떼쓰고 요구하고 쉽게 토라지는 미숙한 존재와도 같은 사건이다.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민의힘 대구 공천을 받았던 도태우 변호사가 도중 하차해야 했던 것도, 단순히 그가 5·18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조차 5·18 앞에서는 한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전 국민이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 이 박사는 책에서 5·18이 실제로 어떤 사건이었는지, 왜 우리가 무조건 무릎 꿇고 찬양하고 빌기만 해선 안 되는지를 사실에 근거해 용감하게 밝히고 있다. 그 점 하나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힐 가치가 있고 널리 읽혀야 할 당위성을 갖는다.
 
그의 회고록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과 차이가 나는 대한민국의 산 역사·참 역사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무덤까지 가져가야 하는 비밀의 일부를 공개한다
 
마이클 이는 1995~2000년 워싱턴의 CIA 본부로 돌아가 근무하는 동안 국무성과 국방성국가안보국(NSA)연방수사국(FBI)과 북한 관계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그는 CIA 근무 26년째가 되던 20002월 정년퇴직했다. 마이클 이는 자신의 회고록을 출간하게 된 계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40년에 가까운 미국 연방정부 재직기간 동서냉전 시대에 은밀히 지구를 누비고 다니면서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해치는 많은 역사적 대형 사건에 직접 개입해 목숨을 걸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내가 어디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그 비밀을 절대로 다 공개할 수는 없다. 그 비밀은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그러나 이미 공개된 사건이나 기밀 제한에 속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 일부를 회고한다.”
 
CIA 간부들은 그를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며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칭찬했다. 오랜 여정 속에서 그는 대한민국사를 구성하는 역사적 대형 사건에 직접 개입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삶은 그 자체가 대한민국 역사와 은밀히 그리고 끈끈히 엮여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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