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본질에서 벗어난 ‘역사저널’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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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선정·출연진 등 공정성 기준에 크게 어긋나
언론노조의 공영방송에 대한 전면전 시작일 수도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23 06:31:30

올해 2월에 중지되었다가 재개하기로 한 KBS ‘역사저널 그날’을 둘러싼 갈등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진행자 교체 문제에서 시작된 갈등이 급기야 프로그램 폐지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자 언론노조에서는 진행자 선정과 관련된 외압 의혹을 제기했고, 일부 야당까지 개입하면서 정치적 갈등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있다.

현 KBS 사장과 집행부에 대한 공격거리를 찾고 있던 언론노조에게 좋은 빌미를 안겨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동안 ‘역사저널 그날’은 일부 출연자들의 편향된 역사관과 발언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적지 않게 받아 왔다. 아무리 오락성과 정보성이 결합된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 프로그램이라고 하지만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을 지나치게 희화화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심지어 최근에는 전직 대통령들을 주제로 시리즈를 제작해 집중적으로 다루는 등 정치적 의도성을 노골적으로 보여 주었다. 좋은 소재와 포맷이었음에도 내용이나 주제 선정·방송 내용이 공영성을 크게 벗어났던 것이다. 아마 정상적인 공영방송이라면 당연히 폐지했어야 할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KBS 경영진은 잠시 중단했다가 진행자만 교체해서 재개하는, 어찌 보면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혹시 교양프로그램으로는 비교적 양호하다고 할 수 있는 3% 내외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 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프로그램 내용 자체가 문제인데 진행자 교체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 그 자체다. 혹시 제작진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언론노조의 저항과 반격이 두려워 본질을 못 건드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정권 시절 공영방송 KBS를 황폐화시키고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언론노조에 대해 현 KBS 집행부가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결국 ‘역사저널 오늘’은 본질을 벗어나 진행자 자격 시비와 교체 외압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집행부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의 존폐 여부와 진행자 결정에 대한 경영진의 판단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님에도 진행자 교체 과정에서의 외압과 절차상의 문제로 역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집행부 스스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공영방송 프로그램의 공영성은 ‘소재의 적합성’ ‘제작의 자율성’ ‘출연자의 공정성’ 같은 요소들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저널 그날’은 소재 선정과 제작진·출연자의 공정성 등에서 이 기준에 크게 어긋났던 것이 사실이다. KBS 사장과 집행부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행자 교체만으로 이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개선할 수 없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과감하게 폐지하는 것이 모범 답안일 수 있다. 제작 과정에서부터 경영진과 제작진 간의 갈등이 내재된 프로그램에 공익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행자를 교체하고 일부 방송 내용을 수정해 프로그램을 유지한다 해도 정치 지형이 바뀌면 원상 복귀 아니 더 편향적인 프로그램으로 부활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게 되면 ‘역사저널 오늘’은 공영방송 KBS가 ‘정치적 황무지’라는 것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 물론 KBS 제작진의 절대다수가 언론노조 소속으로 집행부가 파격적인 개혁 조치를 하기 힘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심지어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중간 간부들조차 회사 방침에 따르지 않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KBS 개혁이 지지부진한 근본 원인은 사장과 집행부의 강력한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는 다는 데에 있다.

‘역사저널 오늘’을 둘러싼 경영진과 언론노조 간 갈등은 절대 개별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움츠리고 소극적 진지전만 벌여 왔던 언론노조가 공영방송 전반에 대한 전면전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석수 190개를 장악한 야당의 의회 권력과 함께 본격화될 공영방송 영구 장악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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