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다이닝(fine dining)을 그대로 풀이하면 고급의 식사란 뜻이다. 럭셔리라는 말이 있음에도 굳이 파인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아무래도 ‘파인’이 지닌 다양한 함의 때문인 듯하다. 단순히 고급이라는 단어에 가두기 어려운 대상이 있는 법이다.
파인 다이닝 가운데는 미슐랭 별을 받은 곳이 꽤 된다. 미슐랭 셰프들은 자기 직업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고유의 요리관이 있다. 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온 인생을 바친 만큼 그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시간과 재화를 쏟아부어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 그것은 작품이다. 음식의 특성상 ‘감상 후 바로 소멸’이라는 절차가 따르기에 파인 다이닝은 그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킨다. 보통 한 시간에 걸쳐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한 그릇으로 끝나 버리면 감상이고 뭐고가 없지 않겠는가.
정결한 테이블보로 치장된 자리에 앉으면 먼저 빵과 와인이 제공된다. 와인은 반드시 웨이터가 따라 주게 되어 있다. 이후 시큼한 소스를 뿌린 새우 같은 게 스타터로 제공된다. 예외 없이 딱 한 마리만 준다.
이걸 먹고 나면 바야흐로 메인 요리로 접어드는데 그 전에 ‘전 메인요리’가 나오고 또 그 전에 ‘전전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한다. 길게는 이 순서가 10회 넘게 이어진다. 셰프들은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이 가진 모든 기량을 쏟아부어 음식을 만든다. 맛과 모양은 기본이요 스토리텔링까지 더해진다.
파인 다이닝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속이 터질 일이다. 10분이면 다 먹을 양의 음식을 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나눠 먹어야 하니 말이다.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대체 이마트 맛보기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이삼십만 원씩 내야 하는 이유가 뭐냐?”
식사 후 따로 국밥을 사 먹는 이도 있다. 사실 아무리 조금씩 준다고 해도 한 시간에 걸쳐 먹는 만큼 충분히 배는 부르다. 만약 손님이 배가 부르지 않다면 셰프는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보여 주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양적인 계량으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인 허기라는 게 있다. 결국 이 호사스럽고 고생스러운 작업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이 과정을 ‘식사’가 아닌 감상의 시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가 어렵게 만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이 정도 수고는 기본 아닌가.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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