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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럽군요.”
하운이 말했다.
“이혼 조정 기간이 지나고 한 달쯤 후 법원에 참석해야 할 날짜가 정해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변호사가 서류를 챙겨 넣고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상대 변호사가 아닌, 인간적 관심에서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면회실을 나가려던 변호사가 뒤돌아섰다.
“차동우 씨 변호사로서 규정 위반이 아니라면.”
하운이 손에 쥐고 있던 변호사 유지오의 명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왜 병원 검진을 거부하는 겁니까? 정당방위를 주장하면 이렇게 다 뺏기지 않아도 됩니다.”
하운과 유지오의 눈이 마주쳤다. 동우와 함께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지만 하운은 끝내 검진받기를 거부했다. 구타의 증거를 남겨야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 있다고, 유치장으로 들어갈 때까지 경찰관이 설득했지만 완강히 거부했다.
“법으로 이기고 싶지 않은 인생도 있는 거예요.”
하운이 말했다. 유지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젓고 밖으로 나갔다. 하운도 일어났다. 경찰관이 문을 열어 주었다. 유치장에 들어갈 때 맡겼던 물품을 돌려받는 서류에 사인했다. 언제 주머니에 넣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휴대전화도 돌려받았다.
경찰서를 빠져나가려던 유지오의 차가 하운 앞에 멈춰 섰다. 슬리퍼를 신고 있는 그녀의 맨발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유지오가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호의를 말없이 거절하며 하운은 가볍게 목례하고 돌아섰다.
경찰서를 빠져나와 길을 걷고 있던 하운은 건널목 앞에 멈춰 섰다. 주머니 안에서 꼭 쥐고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전원을 켜자 날짜와 시간과 요일이 떴다. 통화기록에는 카드사나 스팸 전화번호로 의심되는 번호 몇 개와 직원 몇 명의 안부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유치장에 들어오기 전 회사에 전화를 걸어 몸살을 핑계로 병가를 냈었다. 그리고 메일함을 열자 새로운 편지 한 통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잃었습니까?’
하운은 걸음을 멈추고 메일 제목을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누가 보냈는지, 궁금해 할 여유도 없이 눈앞이 흐려지고 목이 멨다. 나는, 하고 생각하는 순간 하운은 떨리는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주먹을 쥔 다른 손으로는 가슴팍을 쿵쿵, 때렸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더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한껏 찌푸렸던 하늘에서 하나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록색 보행신호등이 켜졌다. 자동차들은 멈추고 경계선에 멈춰 서 있던 사람들은 길을 건넜다. 신호등이 깜박거리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언제까지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이틀 전 하운을 붙잡고 있던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병원 검진을 거부하고 발악하듯 그녀의 몸에 아무도 손댈 수 없게 한 이유, 확인할 수 없는 불안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과 반항이었다.
‘당신은 무엇을 잃었습니까?’
하운이 휴대폰을 손에 꼭 쥐었다. 이제는 무엇을 잃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하운은 양팔로 카디건을 단단히 여미듯 가슴을 끌어안았다. 카디건 속 흰색 원피스에는 검게 바랜 동우의 핏자국이 얼룩져 남아 있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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