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수익률로 ‘끌탕’ 중인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제도(사전지정운용제도)가 시행 1년만에 수술대에 오른다. 수익률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정부가 칼을 들이 댄 것이다.
22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퇴직연금의 가입부터 운용, 수령까지 단계별 개선대책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기대와 달리 수익률 개선에 고전 중인 디폴트옵션의 문제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디폴트옵션은 기본값·초깃값(default)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가입자가 적립금을 운용할 상품을 지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지정해둔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으로 굴러가게 하는 제도다.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7월12일부터 전면 시행됐지만 퇴직연금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촌극을 빚고 있다.
이 제도는 자산운용 지식이 부족한 가입자들을 대신해 운용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근로자 개인이 운용책임을 지는 확정기여(DC)형 혹은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 투자 상품의 만기가 도래했는데도 운용 방법을 지시하지 않으면, 가입자가 사전에 정해둔 방법으로 민간 금융회사(퇴직연금사업자)가 적립금을 자동으로 운용한다.
하지만 제도 도입에 따른 기대효과와 달리 1년간 수익률은 저조했다. 디폴트옵션 시행 초기였기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 방식을 고르는 가입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디폴트옵션 가입자는 약 479만 명. 이중 원리금 보장형 100%인 초저위험 상품을 택한 사람은 422만명(88.1%)이었다. 이어 저위험 24만명, 중위험 20만명, 고위험 13만 명 등으로 위험도가 높을수록 가입자 수는 낮아졌다.
초저위험 상품의 수익률은 6개월 기준 1.77%, 1년 기준 4.56%로 연간 3% 안팎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수익률 제로에 가깝다. 실적 배당형 상품의 최근 1년 수익률이 대개 10% 이상, 최고 22%에 달하는 점과 대비된다.
미국‧영국‧호주 등 퇴직연금이 발달한 주요 선진국의 디폴트옵션 제도는 원리금보장 상품을 제외한 실적 배당형이다. 연평균 6~8%의 안정적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반면 국내 디폴트옵션에는 원리금 보장형이 들어 있다. 디폴트옵션을 통해 유입된 퇴직연금 적립금의 대부분이 수익성이 낮은 원리금 보장형 금융상품에 그대로 재예치되다 보니 수익률 개선이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 상품을 포함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근로자가 상품을 직접 선택하게 돼 있는 부분도 주요국과 다른 점이다. 근로자가 ‘초저위험-저위험-중위험-고위험’의 등급별 상품을 직접 살펴보고 골라야 하기 때문에 원금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한마디로 수익률 개선이 어려운 구조다. 장기적으로 안정적 수익률을 제공해 근로자들의 노후 소득 증대에 기여한다는 디폴트옵션의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디폴트옵션의 근본적인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유호선·김성일·유현경 연구원은 ‘퇴직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 강화 방안’ 보고서에서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상품이 들어가는 것을 제한하거나 하나의 상품만으로 100% 구성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면서 “디폴트로 운용될 상품은 가입자가 직접 고르는 것이 아니라 퇴직연금 사업자(민간 금융기관)와 사용자(회사), 근로자 대표 등의 협의 후 결정하는 쪽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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